모든 것은 나고 변하고 사라진다. 잠시 차를 마시느라 고개를 숙였다 들어서 쳐다보는 상대방의 얼굴이 똑같이 보이지만, 그 몇 초의 순간에도 수 만 개의 세포가 나고 변하고 사라진다. 생주이멸(生住異滅)은 138억 년 전에 우주가 창조되고 38억 년 전에 생명이 탄생하고, 600만 년 전에 인류가 침팬지에서 분리된 이후 물질계나 생태계, 인간 사회에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 흐름에서 보면 조계종단의 역사와 굳건한 듯 보이는 자승체제 또한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다.

박근혜 정권이 정점에 있을 때인 2013년 12월 11일에 “현 정권이 강력한 것 같지만 이는 겉모습뿐이다. … 정당성의 위기에 놓인 현 정권은 식물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의 지도력, 친위세력, 정권의 시스템 모두 정당성을 복구할 동력도 부족하거니와 능력도 많이 모자란다. 그날이 언제든, 이는 1979년에서 2013년으로 이어진 유신이 진정한 종언을 고하였음을 의미한다.”라며 “유신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라는 표제의 칼럼을 <한겨레신문>에 게재했다. 당시만 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유신의 망령과 인사도 함께 사라졌다. 자승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자승 전 총무원장이 종헌과 종법, 종단기구와 제도, 사람, 재정을 독점한 채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곧 박근혜의 전철을 밟으리라 확신한다.

이를 앞당기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향후’는 ‘설조 스님 단식 이후’와 ‘설정 원장 퇴진 이후’라는 두 가지 조건을 의미한다. ‘설조 스님 단식 이후’란 스님이 목숨을 걸고 행한 단식으로 이끌어온 동력과 운동의 구심점을 어떻게 유지, 또는 대체할 것인가를 제기한다. ‘설정 원장 퇴진 이후’란 설정 원장 퇴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운동의 목표와 전략을 어떻게 재정립하여 이 꼼수를 극복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운동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승을 정점으로 한 권승 카르텔의 해체다. 다른 하나는 적폐청산과 종단개혁이다. 자승 원장은 금권 선거로 총무원장에 오른 자이자 억대도박, 은처, 공금횡령 등의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8년 동안 조계종단을 부패와 비리, 범계, 폭력의 마구니 소굴로 만든 장본인이다. 여러 세력을 불교광장으로 통합한 채 측근은 어떤 범계와 비리를 범해도 중용하고 여법하게 올바른 비판을 하는 스님과 언론은 내친 당동벌이(黨同伐異)의 화신이자 이 카르텔의 핵심 고리다. 설정 원장은 꼬리자르기일뿐이다. 그의 퇴출이 없는 한 권승 카르텔의 유지와 이들에 의한 범계와 비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자승 체제 8년 동안 300만 명의 불자가 떠나고 스님들이 대중들의 조롱 대상이 되었다. 권승들은 넘치는 돈과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하여 향락업소를 출입하고 해외 원정도박까지 가는데, 대다수 스님들은 가사와 발우도 자신의 돈으로 마련해야 하고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 스님들이 수행은 뒷전이고 부처님보다 돈을 더 섬긴다. 그러기에 모든 것에 우선하여 행할 개혁은 수행과 재정의 분리다. 재정을 재가불자에게 맡기고 스님들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청정 승가는 공염불이다.

현 종단의 문제가 권력의 집중과 독점에 있고 321명에 의한 간선제가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으므로, 직선제 또한 관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선거관리위원회를 두어 선거공영제와 중앙관리제를 하면 직선제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사찰운영위원은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여 출/재가 동수로 선출하고, 참여민주제와 숙의민주제를 결합한 거버넌스(governance) 시스템을 확보하고 중앙의 종권도 사부대중에 고르게 분배한다. 모든 스님에게 기본소득 개념의 수행보조금을 지급하고 노후와 병을 대비한 복지책을 실시한다. 이번만큼은 이런 개혁책을 종헌과 종법에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그럼, 어떻게 이를 달성할 것인가. 승려대회와 재가불자 결집의 두 가지 길이 있다. 승려대회는 적폐의 온상인 종단에 맞서서 초법적으로, 전격적으로 개혁을 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대표성과 신뢰, 권위를 갖는 스님들로 봉행위원회를 조직하고 이것이 주체가 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승려들을 동원해야 하며 재가불자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스님들은 패배주의와 침묵의 카르텔에서 벗어나서 “이번에 개혁하지 않으면 승려의 미래는 없다”라는 마음으로 서로 권면하며 동참해야 한다. 승려대회는 단순히 승려들의 이해관계 반영에 머물러서는 헤게모니를 상실한다. 그동안의 적폐를 완전히 청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을 결의하되, ‘탈세속화시대와 인공지능 시대에 부합하는 청정승가 구현’이나 ‘지역공동체로서 승가의 정립’이라는 비전도 담는다. 권승 카르텔 해체의 핵심 고리로서 자승의 멸빈을, 종단개혁의 상징으로서 재정과 수행의 분리와 직선제를 확실하게 결의한다. 비상개혁기구를 구성하되, 여기에 자승 원장의 일당은 물론 도법 스님 등 이에 부역한 세력 또한 철저히 배제한다. 이는 승려대회와 비상개혁기구가 정당성과 힘을 갖고 사람과 제도의 개혁을 함께 이룰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아울러, 기득권을 제외한 스님들로 대안의 세력을 구성한다.

재가불자의 결집은 따로 이루어져야 한다. 승려대회 실패를 대비해야 하지만, 승려대회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재가불자들이 주체가 되어 종단개혁운동을 이끌어온 역사와 승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은 재가불자만의 새로운 운동을 요청한다. 설조 스님의 단식 중단으로 비워진 자리는 제도권에 있던 단체,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는 단체들의 ‘불교개혁행동’ 합류로 메워졌다. 제도권의 한 축이 무너졌고,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이용하여 승려대회를 견인하고 전국의 불자들을 네트워킹할 수 있게 되었다. 불교개혁행동 내부에 ‘이런 조직을 가지고 무엇을 못하랴’라는 자신감이 치솟고 있다. 승려대회가 성공하면 승려대회의 결의에 재가불자들의 가치와 염원을 담아야 하며, 비상개혁기구에도 참여한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재가불자들은 권승 카르텔이 해체되고 종단개혁이 이루어질 때까지, 더욱 조직을 정비하여 매주 촛불법회는 물론, 3보 일배, 포럼, 농성, 기자회견, 선전 운동, 담론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한다. 반 자승 종단개혁 전선을 구성하여 재가불자가 주도하는 범위에서 승려와 대중을 이 전선에 끌어들이고 개혁 의제를 담론화한다. 단기적으로는 약한 고리인 지홍 원장 등을 퇴진시켜 권승 카르텔에 균열을 내고, 중기적으로는 자승의 구속과 멸빈을 주장하고, 장기적으로는 대만의 거사불교운동처럼 종단 바깥에 청정한 불교를 만들고 종단에 대한 불복종운동과 시주 거부운동을 전개하여 종단의 헤게모니를 무력화한다. 절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극복한, 청정한 불자들이 주체가 되고 사부대중 모두가 평등하게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고 지역민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아파하고 연대하며 중생구제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운동을 한다.

스님이든 재가불자든, 지금 이 상황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 또한 적폐다. 이제라도 각자도생을 일소하고 승가 공동체를 복원하고 맑고 향기로운 종단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봉암사 결사와 1994년 종단 개혁의 초발심으로 승가 본연의 청정한 가풍을 일으켜 모든 적폐를 청산하고 이 땅을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보살의 향기로 물결치게 하자.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걸을 때 희망은 현실이 된다.

* 이 기사는 업무제휴에 의해 불교닷컴과 동시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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