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일여가 선(禪) 공부에서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은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종고가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대혜는 운문종, 조동종 등 여러 곳의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21세에 담당문준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이어나갔다. 담당은 자신의 죽음이 당도하자 대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설법도 잘하고 선시도 잘 짓고 선문답도 잘한다. 그러나 한 가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내가 방장에서 너에게 선을 말하면 선이 있지만 네가 방장을 나서면 선은 사라지고, 네가 깨어서 생각할 때에는 선이 있지만 잠이 들면 곧 없어져 버린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삶과 죽음을 극복하겠느냐?”

이에 대혜는 “제가 의심하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고 자신의 문제를 고백한다. 담당이 죽은 뒤에 대혜는 스승의 권유에 따라 원오극근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질문하였다.

“제가 아직 잠이 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칭찬하신 것에 의지하여 행하고 부처님이 비난하신 것은 범하지 않으며, 이전에 공부하여 얻은 것들을 깨어 있을 때에는 전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상에서 잠이 들려할 때에 벌써 주인 노릇하지 못하고, 꿈에 보물을 보면 기뻐함이 한이 없고 꿈에 사람이 몽둥이로 해치려 하면 두려워서 어쩔 줄 모릅니다. 꿈속에서 벌써 이렇게 주인 노릇하지 못하고 휘둘리는데, 죽음에 임하여 어떻게 경계에 휘둘리지 않겠습니까?”

원오는 이 말을 듣고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이런 여러 가지 망상들이 끊어질 때에, 너는 저절로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가 늘 하나인 곳에 도달할 것이다.”

대혜는 이 말을 듣고서 처음에는 믿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스스로 돌이켜보면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이 분명히 둘이다. 다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이 늘 하나라는 말이 헛된 말이라면 나의 이 병을 없앨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내 스스로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얼마 뒤 원오가 법당에 올라 설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운문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는 곳입니까?’라고 하자, 운문은 ‘동산이 물 위로 간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는 곳이냐?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시원하구나.”

대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앞뒤의 시간이 뚝 끊어지면서 가슴에 걸려 있었던 것이 쑥 내려갔는데, 마치 엉킨 실 뭉치를 칼로써 단번에 몽땅 잘라 버린 것과 같았다. 이렇게 가슴에 걸려 있던 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꿈꿀 때가 바로 깨어 있는 때이며 깨어 있는 때가 바로 꿈꾸는 때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저절로 알았다고 대혜는 고백하였다.

대혜가 비록 설법도 잘하고 선시도 잘 짓고 선문답도 잘하고 불교와 선에 대하여 잘 말할 수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전부 분별의식으로 배우고 생각하여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일 뿐, 분별의식을 벗어난 불가사의한 깨달음은 아직 얻지 못했음을 스승인 담당이 알고서 분별의식이 작동할 수 없는 잠잘 때를 가리켜 깨어 있을 때와 같은가 하는 질문을 하였던 것이다. 참된 선지식은 바로 이렇게 학인이 분별의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을 앞에 가로막아 주는 사람이다.

대혜는 이 질문을 잠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좌우하는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원오에게 질문하였는데, 원오는 대혜의 그러한 분별망상이 끊어지면 저절로 오매일여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분별의식 속에서 헤매던 대혜는 원오의 설법에서 한 마디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분별의식이 끊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분별의식이 끊어지고 나니 비로소 자나 깨나 한결같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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