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서성 남창현의 옛 이름이 홍주인데 홍주의 염사(지방관, 관찰사와 비슷)가 마조 스님에게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야 옳습니까, 먹지 않아야 옳습니까?"
"먹는 것은 그대의 국록(國祿)이며, 먹지 않는 것은 그대의 불복(佛福)입니다.“
<마조록>에 실린 일화다.

당나라 시기의 염사라는 자리는 세도가 당당한 관직이다. 지방 행정의 총 책임을 맡은 자리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각종 연회와 국가 제사 등등의 공적 자리가 적지 않았다. 술과 고기가 빠지지 않았다. 하여 불자인 염사는 마조도일 스님을 뵌 김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계를 수지한 불자로써 술과 고기를 어찌할까요. 질문을 보면 염사는 정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몰래 먹지 않고 그릇에 깔아 먹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숨기려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으니까.
마조 스님의 대답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다. 먹는다면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았을 뿐이요 먹지 않는다면 복을 짓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선택은 개인의 몫이 되겠다. 마조 스님은 술과 고기를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염사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국가의 녹을 받는 일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달랜다.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는 어쩔 것이냐고.

불자들도 염사처럼 고민한다. 술 한 잔, 고기 한 점도 죄스럽다. 부처님 법을 배운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만나는 고민의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갈등한다. 상식이 있는,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갈등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성찰과 고민이 바른 불교인을 만든다고 믿는다.

나 혼자만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쉽다. 참고 안 먹으면 된다. 조금 손해를 보거나 돌아가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직분을 맡은 사람의 결정은 어렵다. 제주도 도지사가 자신의 종교적 입장 때문에 한라신 산신제의 제관 자리를 맡을 수 없다며 불참하는 것처럼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공적인 자리에 당연히 따르는 책무를 짊어질 수 없는 사람은 공적인 자리를 사양하여야 마땅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불자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상식이다.

지금 불교가 어려울 때 대한불교조계종의 지도부에게 요구되는 공적인 책무는 무엇일까.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과연 그 책무를 짊어질 자세가 되어 있는가. 일반 불자들보다 더 무겁게 그 자리의 무게를 감당하여야 할 이들이 오히려 속인들보다도 못한 행보를 보이며 종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은처자와 숨긴 자식, 학력위조, 성추행, 도박과 폭력, 유흥주점 출입 등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일들이 공중파 방송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종단 지도부는 온갖 국민적 의혹과 합리적 의심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기는커녕 해종과 훼불이라는 덮어씌우기로 피해가려고 한다. 종단 기구와 원로와 신도 대표들까지 방패막이로 동원한다.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란다.

개인을 지키려고 공동체가 망신창이가 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pd수첩 보도 이후로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뜰 때마다 한 시간에 수천 개씩 달리는 댓글들이 불교를 비난하는 이 참상이 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보다.

염사의 경우와 비교할 것도 없다. 지금 조계종의 지도부는 직위와 권세가 부여하는 이권에만 눈이 먼 듯 보인다. 확보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애처롭기까지하다. 발버둥이 길어질수록 상처받는 것은 한국불교다.

이 시점에서는 녹을 생각하기보다 불복(佛福)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당장은 손해인 듯 하여도 인과의 이치에서는 반드시 보답이 있다고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공심을 강조하던 평생의 말빚을 이제라도 갚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불자들의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빨리 사라질 수 있다. 마지막 남은 불자들까지 외면하고 떠나가기전에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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