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피디수첩> 1, 2탄으로 불교계가 시끄럽다. 현재 조계종이 권승들의 도박, 성폭행, 폭력, 공금횡령으로 만연한 마구니 소굴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웃종교인까지 “어찌 스님들이 조폭보다 더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불자라는 사실이 이토록 부끄럽고 참담한 적이 없었다.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는 매주 목요일에 조계사 건너 편 템플스테이관 앞에서 참회법회를 수행하고, 허정, 도정 스님에 이어서 설조 스님까지 설정 총무원장을 비롯한 관련자 사퇴와 종단의 개혁을 주장하는 단식정진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계종단은 요지부동을 넘어 적반하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연히 관련자를 징계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함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종단발전 혁신위원회’와 같은 어용 형식기구를 만들어 비리의 엄호와 은폐를 획책하고, 더 나아가 올바른 지적과 비판을 한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와 MBC를 고소·고발하였다. 아마, 종단의 권승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와 파계행위는 적반하장의 추임새로 넘어가고 비판과 저항은 뭉개는 것으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만물은 찰나의 순간에도 쉼없이 변화하지만, 그 자체의 형식과 구조를 바꿀 만한 큰 변화는 임계점까지는 그 외양을 유지한다. 대신, 만물은 이의 징후를 보여준다.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은 통계를 통해 이를 입증하였다. 보험사의 직원인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수많은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면서 사상자가 1명 나올 경우 그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이를 1: 29: 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를 조계종단에 대입해보면, 중앙과 지역, 본사와 말사, 이판과 사판을 가리지 않고 스님들의 범계와 파계 행위가 매년 최소한 수십 차례 이상 벌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청정하다고 소문이 났던 스님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탈종교화라는 요인도 있지만, 자승 체제 동안에 300만 명의 불자가 절을 떠났다. 신자가 많은 절이라 하더라도 청소년들은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한국 불교에 위험을 경보해주는 ‘잠수함의 토끼’가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웃 대중들조차 분노할 만한 큰 죄를 짓고도 참회하는 스님이 없고 이를 견제하는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제 한국 불교가 ‘문화재 관리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직 길은 있다. 인류는 참회와 성찰을 통하여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악업을 지은 자에게도 참회와 구제의 길을 열어 놓았다. 원효는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 “방일하여 뉘우침과 부끄러움도 없이 죄업의 실상을 능히 사유하지도 않는다면, 비록 죄업의 성품이 없다고 하여도 장차 지옥에 들어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선 파계의 중심에 있는 자이자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승 전 총무원장과 설정 총무원장은 참회하고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더 이상 악업을 짓지 않는 길이다. 맑고 공정한 스님과 재가불자들로 가칭 ‘조계종단 범계 진상 조사 및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 조사권과 징계권을 부여한다. 진상조사를 철저히 한 후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개인의 문제일 경우 사안별로 참회와 징계를 하고, 구조적인 요인은 과감히 개혁을 한다.

종단은 하인리히의 법칙의 대표적 사례, 곧 수십, 수백 번의 사고를 은폐하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고 연이은 국정농단과 비판을 무시하다가 박근혜 정권이 붕괴한 것을 상기하라.

맑은 스님들은 침묵과 방관에서 벗어나 승려대회를 열어 94년을 넘어서는 개혁을 단행하자. 재가불자들은 적폐청산운동을 올곧게 추진하면서 수행과 재정의 철저한 분리, 직선제, 사방승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건설, 민주적인 거버넌스 시스템 정립 등의 개혁을 계속 압박하자.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면서도 21세기의 한국 사회의 맥락에 부합하는 불교가 무엇인지 함께 상상하고 종단 바깥에서 이의 구축을 위한 작지만 웅대한 발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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