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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원 문제
초기불교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
2018년 06월 12일 (화) 11:22:03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초기불교 전공이란?

국내에서 가끔 불교학 연구에 있어 전공 분류를 요구받을 때가 있다. 먼저 사상인가, 역사인가이다. 지금은 응용분야도 덧붙여진다. 불교사상, 불교역사 그리고 응용불교가 이야기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상과 역사에 있어서 초기불교인지, 아비달마 전적에 대한 연구인 부파불교인지, 아니면 대승불교인지가 다시 이야기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에 따라서 전공분야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경우도 보게 된다.

어떠한 불교학 분야가 자신의 연구 분야 또는 전공이라 할 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필자는 어느 분야의 전공자라 할 때는 최종적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기준으로 본다. 박사학위 주제와 범위는 용이하게 전공을 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더 나아가 학부는 예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석사부터 오랫동안 어느 분야를 전문적으로 집중하였는지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늘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초기불교 전공자인지를 생각해 본다. 특히 너나 나나 할 것이 없이 모두 자기를 어느 전공자라고 규정하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모습에서 자신의 전공분야 연구에 대한 의욕상실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몇 해 동안 초기경전도 봤다고 초기불교 전공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불교 전공자라도 대승경전을 어느 정도 보고 관련하여 글도 쓸 수 있기에 대승불교 전공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공이라는 말이 애당초 필요 없게 되어버린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초기불교 관련한 논문 한두 편 집필했다고 초기불교 전공자로 보아주기를 바라거나 주장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초기불교 전공자가 대승불교나 동아시아 불교 관련 논문 한두 편 썼다고 대승불교나 동아시아 불교 전공자로 자처하는 일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느 불교학의 전공자가 되려면 그 분야에 있어 정밀한 이해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 대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지식생산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늘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초기불교 전공자인지를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초기불교 전공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초기불교 전공자라 할 수 있는가는 자신이 없다. 학부에서부터 어언 35년을 초기불교 중심으로 공부를 해 왔지만 말이다.

초기불교 전공의 범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초기불교 전공의 범위는 무엇인가? 필자는 초기불교 전공이란 기본적으로 불교의 기원을 연구하는 범위와 분야라고 정의한다. 인도 유학 시 불교학과 인도철학과 관련한 연구는 언제나 불교의 기원 문제를 따져보는 것이었다. 전문용어에 대한 기원과 전개, 개념에 대한 기원과 전개, 수행덕목에 대한 기원과 전개 그리고 의례나 제도 등의 기원과 전개가 그것이다. 이러한 오랜 공부 습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불교의 어떠한 연구주제가 주어지면 기본적으로 ‘기원과 전개’를 중심으로 따져보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초기불교 연구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초기불교는 ‘불교의 기원’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양에 있어 불교의 기원과 관련한 많은 논문이나 단행본은 초기불교 연구에 해당한다.

초기불교는 불교의 기원에 대한 논의이다. 불교의 기원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고대 인도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적어도 니까야와 아함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빠알리나 산스끄리뜨와 관련한 불교 용어의 확장된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불교의 기원을 연구하려면 불교가 흥기한 자연 환경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2600여년 전이나 지금에 있어 기온 차 등이 어느 정도 있을지 모르나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추리할 수 있는 능력이 계발되어야 한다. 인도라고 하는 땅과 기온 등의 풍토와 관련한 이해를 통해 불교가 조명되어야 한다. 필자도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한 불교문화와 사상을 인도라는 자연환경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것에 놀라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다음으로는 불교 기원의 문제는 적어도 불교 흥기 이전에 있었던 종교와 사상 그리고 사회 제도 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석가모니 붓다가 조우하고 종교적 철학적 대론을 펼쳤던 종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당시 주류 흐름이었던 바라문교와 자이나교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바라문교와 자이나교에 대한 이해가 갖추어져 있어야 불교와의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 석가모니 붓다 시대는 두 가지 흐름으로 당시의 종교 문화를 구분해 왔다. 바라문교와 사문종교가 그것이다.

바라문종교도 다양한 흐름이 있었을 것이고 사문 종교 또한 불교나 자이나 경전에 나타나듯이 육사(六師) 이외의 수많은 흐름이 있었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초기불교 이해를 한결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기초학이 된다. 이들을 통해 초기불교의 성격이 분명하게 규정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거꾸로 초기불교로부터 파생한 여러 부파들의 사상도 초기불교 이해에 있어 중요하다. 대승불교 또한 초기불교 이해의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불교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기불교 연구는 언어, 자연환경, 종교의례와 제도, 바라문교, 사문종교 그리고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이해까지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불교 흥기 즈음한 바라문교와 사문종교에 대한 이해이다. 당시의 바라문교와 사문종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때 초기불교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불교의 기원과 우파니샤드

흔히 초기불교의 기원을 논하는데 있어 Upaniṣad 철학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초기불교의 기원은 후대의 대승불교 기원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하게 Veda 시대, Āraṇyaka 시대, Brahmaṇa 시대, Upaniṣad 시대 이후에 자이나교와 불교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하는 도식적인 연대기 이해는 문제가 있다.

현재까지 학계는 이러한 연대기에 맞추어 불교의 출현을 설명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초기불교 경전에 Veda는 Ṛg Veda, Sāma Veda 그리고 Yajur Veda를 지시하는 3 베다에 대한 언급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초기불교 문헌 성립과 함께 마지막 네 번째의 Atharva Veda가 Veda 경전에 편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 문헌에 Āraṇyaka, Brāhmaṇa 그리고 Upaniṣad와 같은 바라문 문헌을 지시하는 듯한 어떠한 표현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학자들은 불교가 바라문교 흐름에 있어 Upaniṣad 이후에 흥기한 것으로 불교의 기원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Upaniṣad는 Veda 전통의 마지막에 나타난 Vedānta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Vedānta는 말 그대로 Veda의 끝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교가 흥기할 시기에 Upaniṣad가 성립하여 유통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아가 내용상에 있어서도 불교가 흥기하고 있을 때 우파니샤드 철학과 교류하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도 또한 초기불교 경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Upaniṣad가 먼저 성립하여 불교 흥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서술이나 주장은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광범위한 인도를 하나로 보려는 전제와 고대 인도의 사상체계의 흐름을 애초 Veda 전통으로만 보려는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면을 간과한 채 유럽과 일본에서 출간되는 많은 불교 서적이나 인도 관련 글의 서론에서 불교의 기원을 Upaniṣad 철학과의 관련 속에서 그 설명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아무런 비판 없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갈수록 기존의 학자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불교가 흥기할 때 설령 Upaniṣad 철학이 먼저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석가모니 붓다와는 전혀 접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러한 문헌적 그리고 사상적 증거가 초기불교 경전 자체 내에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부터 구체적으로 불교의 기원과 우파니샤드 사상과 관련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다.

 기존의 학자들은 비판적 검토 없이 불교 기원의 우파니샤드 영향을 전제하고 있다. 과연 불교는 있는 그 출발에 있어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 속에 있었는가 하는 점을 검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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