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영화 <마션>(미국, 2015)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를 입증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랑이’에 해당하는 것이 화성에 혼자 고립된 상황입니다. 극한의 추위와 희박한 산소, 그리고 부족한 식량과 함께 화성이라는 행성에 홀로 던져진 현실은 분명 호랑이에게 물려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여기서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무기는 속담에서처럼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차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통해서 해석한다면, ‘현실에 집중한다’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을 현재에 붙잡아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 지혜도 생겨나고 스스로를 구할 방법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화성에 고립된 마크 와트니가 만약에 마음을 현재에 두지 않고 미래에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미래는 암담했습니다. 최소한으로 먹는다고 하더라도 남은 식량으로는 1년을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구조대가 화성에 도달하는 데는 빨라도 4년이 걸립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굶어죽을 처지였던 것입니다. 미래를 두고 본다면 그의 처지는 사형선고를 받아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미래로 마음이 가버렸다면 아마도 마크 와트니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됐을 테고, 절망감을 안은 채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크 와트니는 이렇게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현재에 두었습니다. 현재의 그에게는 먹을 게 있었습니다. 자기 취향은 아니지만 디스코음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성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그가 최초였습니다. 최초의 농부고, 최초의 식물학자고, 최초의 탐험가이고, 최초라는 영웅심리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마크 와트니는 암담한 미래를 선택하는 대신에 나름 즐길 수 있는 현재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조난영화라는 심각한 소재지만 밝고 낙관적인 정서가 관통했습니다. 좋은 에너지를 주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를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음을 유지한다면 결국 일을 좋은 쪽으로 해결하게 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보여주지만 그 울림은 의외로 강했습니다.

나사 아레스 3 탐사대는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폭풍을 만났습니다. 탐사대는 대원 중 한 사람인 마크 와트니가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화성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마크 와트니는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통증을 느끼면서 모래 속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화성에 고립됐다는 것을.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지구에 알릴 방법도 없지만 만약에 연락이 닿아 구조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4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지구와 화성은 먼 거리였습니다.

자신의 고립을 자각한 첫날 그는 뜬 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도대체 어떠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심리상태가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첫날밤을 보낼 때의 마음과 유사할 것 같습니다. 믿을 수가 없고, 부정하기에는 또 엄연한 사실이고, 당황스럽고 괴로운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마크 와트니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고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자 그에게는 당장 먹을 식량도 있고, 추위를 피하고 공기를 보충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도 있고, 자신의 수다를 들어줄 캠코더도 있고, 그리고 음악도 있었습니다.

마크 와트니는 먼저 남은 식량을 체크했습니다. 남은 음식으로 살 수 있는 날을 종이에 기록했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날이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절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는 미래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현재는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래는 어둡지만 현재는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관객이 경험하는 그의 상황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습니다.

마크 와트니가 남은 식량으로 자신이 얼마큼 버틸 수 있을까, 즉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날을 체크하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은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종이에 기록되는 숫자는 장차 그에게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며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위는 현재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죽음과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분명 현재와 삶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종이에 기록되는 숫자는 미래와 죽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삶과 현재가 가뿐하게 미래와 죽음을 물리쳤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현재가 우리 존재의 전부고, 현재는 생각보다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마크 와트니는 현재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고, 그래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굶어죽을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현재 배가 부르면 세상이 다 배부르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논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마크 마트니가 낙관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체리향기> 라는 이란영화에는 가정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체리나무에 목을 매려 했던 남자가 갑자기 자살하려던 마음을 고쳐먹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남자가 자살을 포기한 이유는 한 알의 체리 때문입니다.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먹은 체리 맛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맛있게 체리를 먹고 남자의 기분이 좋아진 것은 당연합니다.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결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자살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남자의 경우를 보면 과거에 마음이 사로잡혀있던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과거의 어떤 특정 기억을 중심으로 뭉쳐진 감정으로 그의 마음은 과거에 사로잡혀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체리를 한 알 먹던 순간 어두운 과거의 마음이 즐거운 현재의 마음으로 순식간에 전환됐고, 그가 죽음을 버리고 삶을 선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 어떤 기분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암담한 미래도 어두운 과거도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고, 지금 당장 배가 부르다면, 지금 당장 기분이 좋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입니다. <마션>은 현재의 이런 강한 힘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앤디 위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마션>은 놀라울 정도로 명랑한 주인공 마크 와트니로 인해 역대 가장 밝은 SF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구조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행됐습니다. 식량을 해결하고, 통신 문제를 풀고, 지구로의 귀환방법을 모색하고,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영화는 마크 와트니가 음식을 맛있게 먹은 장면 이후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재미있고 쉽게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매력은 낙관의 정서입니다. 두려움이나 절망감에 빠지는 대신 주인공은 여유를 갖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습니다. 화성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이런 심리상태가 도움이 되는데 우리가 처한 대부분의 현실적 어려움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삶에 많은 에너지를 주는 영화였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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