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 뽀얗게 돋아난 새싹이 어느새 연푸른 잎으로 자라나더니 온 산이 푸른 잎으로 갈아입었다. 희고 붉은 원색의 꽃들이 봄을 물들인다. 햇살조차 눈부시다. 그 찬란한 오월의 한 가운데 부처님오신날이 있다. 오월 이십이일, 불기이천오백육십이년의 부처님오신날이다.

거리마다 연등이 달려 축제 분위기가 달아오르니 평소 절에 잘 가지 않던 사람도 이 때 만큼은 절을 찾아 가족의 안녕과 개인의 소망을 담아 연등을 달지 않을까. 이날만큼은 불교인구 3백만 감소도, 종단을 둘러싼 온갖 흉흉한 언론 보도도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 같다.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했을 때, 이 세상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중생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배고픈 이는 먹을 것을 얻고 목마른 이는 마실 것을 얻어 모자람이 없었다......부처님께서 처음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한 바로 그 때, 일찍이 없었던 한량없고 끝없는 희귀한 일이 일어났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서는 부처님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온 우주가 함께 기뻐하는 날, 일체 중생이 행복한 날이라고 경전에서는 말한다.

그렇지만 부처님오신날은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을까? 불전작가들의 온갖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기록 그 자체만을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싯달타를 낳은 어머니 마야부인은 일주일만에 돌아가셨다. 부처님 시대가 아닌 불과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어머니 마야부인의 나이가 많았으니 노산이었다.

싯달타는 행복했을까? 강대국이 군소국가들을 삼키던 전쟁의 시대.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바투는 부처님 재세시에 멸망하고 말았다. 결국 멸망할 약소국의 왕자,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태어난 날이다.

그렇지만 태어난 날은 축제의 날이 되었다. 삶의 고뇌에 절망하지 않고 운명을 극복함으로써 위대한 부처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열어주신 깨달음의 길, 자비의 길로 숱한 이들이 함께했다. 이천오백 년의 시간과 동서 몇 만 리의 공간을 넘어서 세계의 불교인들이 함께 기뻐한다.

부처님오신날이 기쁨의 날이 될 수 있음은 역대조사스님들과 사부대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정진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오늘의 삶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숨막히게 돌아가고 있다. 남북한 화해무드 속에 한반도 비핵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불과 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핵실험을 하고 탄도탄을 쏘아 올리던 북한과 북한 폭격을 주장하던 미국이 서로를 칭찬하느라 바쁘다. 개성공단을 폐쇄했던 남한의 정부가 바뀌었을 뿐이다. 나라도 국민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한반도 전쟁위기는 어느새 평화기조로 바뀌었다. 이 일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국민과 지도자를 보면서, 지금 불교의 위기 또한 위대한 불자들이 헤쳐 나가야 할 역할임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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