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답하는 사람의 숫자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숫자보다 적어진 시기는 2015년 전후이다. 그보다 10년 전 조사에 비해 비율이 역전된 것이고, 이제 우리도 탈종교화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상의 자연주의화 경향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탈종교화 흐름은 사실 꽤 오래된 것이다. 1874년 영국에서 출판된 존 스튜어트 일의 《종교에 대하여》는 그런 흐름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종교의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묻고 있는 책이다. 개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전라도 고부의 전봉준이 농민항쟁을 시작하는 해로부터 꼭 20년 전에 나온 이 책에서, 대표적인 공리주의 윤리학자인 밀은 종교의 의미는 그 사회적 유용성에 관한 당시의 의구심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종교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종교의 유용성 여부가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이 약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믿음도 증거에 대한 확신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소망에 더 좌우되고 있다. ...... 종교가 비록 과거처럼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의지할 대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기교육의 잔상을 통해 그 영향력을 어느 정도는 발휘하고 있다.”(《종교에 대하여》,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18, 190-191쪽)

무속을 포함한 불교가 중심에 있다가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의 그리스도교가 탄압 속에서도 조금씩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19세기 후반 조선은 당시 동학(東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교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구호를 중심으로 내 안에 있는 한울님은 모시는 일을 사회 모순을 극복하는 일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역동적인 종교로 자리잡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까지 이끌게 된다.

광복 후에는 미군 점령기와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기독교의 약진이 이루어지고, 불교 또한 대처승을 기반으로 하는 왜색불교의 잔재를 떨쳐내고자 하는 봉암사 결사와 정화운동을 거치며 청정비구승단을 표방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시대’를 맞는다. 그 배경에는 일제의 압력에 맞서 불교정신을 오롯이 지켜내고자 했던 ‘선학원’의 결정적인 역할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경허와 용성, 만해, 만공, 성철, 법정 같은 이름들이 주는 서늘한 깨침의 역사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밀이 주목했던 그 ‘종교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지속적인 성추행과 폭행 혐의로 문제가 되는 신부와 목사들, 학력 위조를 하고 은처자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지도층 승려 등 이른바 종교지도자들을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매체들을 통해 끝없이 확산되고 있는 이런 추문들은 종교가 과연 무엇인지, 또 그 역할은 어떤 것인지와 같은 근본적 회의와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며칠 전 한 방송의 조계종단 추문 보도를 계기로 모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참석자들은 ‘종교계 일은 그 내부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입장을 내놓았다. 원론적으로는 동의할 만한 주장이지만, 과연 우리 종교계가 그런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종교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역할을 통해 그 사회의 정신적인 흐름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물을 수밖에 없는 곤혹스런 상황과 지속적으로 마주하며 다시 종교의 의미와 역할을 묻는 마음이 참담해지는 오월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서 종교의 의미를 구현하고자 애쓰는 출가와 재가의 보살들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옳은 쪽에 서서 보잘 것 없는 힘이라도 보태면 선이 악에 맞서 진보를 촉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밀의 믿음(같은 책, 259쪽)에 마음을 보태고 싶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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