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 큰 바다가 여러 수중 생물들의 집이 되는 것처럼, 여러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 그리고 모든 선법의 의지처가 되느니라.  <제개장보살소문경(除蓋障所問經)>

439. 변정천자(遍淨天子)가 말하였다. “여래께서 큰 지혜의 힘으로 모든 마군을 모조리 무너뜨리시니 최상모니존(最上牟尼尊)께 귀의하면 군맹1)을 인도하여 피안에 오를 수 있으리라.”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

440. 차라리 무량겁 동안 여러 악도의 괴로움을 받을지언정, 부처님을 버리면서까지 출리(出離: 삼계윤회를 벗어남)를 구하지 아니하리라.2) 차라리 여러 중생을 대신해서 온갖 괴로움을 두루 받을지언정, 부처님을 버리면서까지 안락을 바라지 아니하리라. 차라리 여러 악취에 머물며 항상 부처님의 이름을 들을지언정, 선도(善道)에 태어나 잠시라도 부처님의 명호를 못 듣는 것을 원치 아니하리라. 차라리 여러 지옥에 태어나 낱낱이 무수겁을 지낼지언정, 부처님을 멀리 떠나면서까지 악취를 벗어남을 원하지 아니하리라. 어떤 까닭으로 여러 악취에 오래토록 머무르면서까지 여래를 뵙고자 하는 것인가? 부처님을 뵙는다면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애고 여러 여래의 대지혜 경계로 들어가게 되니, 모든 장애를 버리고 떠나 다함없는 복을 오랫동안 키울 수 있으며,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   <화엄경(華嚴經)>3)

불보에 귀의하지 않는 苦果

441. 만약 사람이 불보를 버린다면 귀신이 마음에 침입하여 음심과 탐욕과 화냄이 많아지고 기쁨은 적어지니4) 마음은 항상 어두워 남에게 혹란(惑亂)5)을 당하며 왕위를 잃기도 한다.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사람의 몸을 얻지도 하늘에 태어나지도 못하며 오랫동안 고통의 바다에 잠기게 되느니라.   <대교왕경(大敎王經)>

삼보에 귀의함

442. 모든 중생은 마땅히 무위법보(無爲法寶)에 귀의해야 할 것이니, 제법(諸法) 가운데 가장 귀하고도 수승하도다. 어찌하여 그러할까. 생사의 고해(苦海) 가운데서 배와 뗏목이 되며, 중생에게는 감로수와 좋은 약이 되며,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의 육도만행(六波羅密)6)으로 깨달은 바의 공덕이 원만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무위법보(無爲法寶)에 귀의해야만 하는 것이니라.   <육바라밀경(六波羅蜜經)>

443. 법보에 넷이 있으니 첫째는 교법(敎法)이요, 둘째는 이법(理法)이며, 셋째는 행법(行法)이고, 넷째는 과법(果法)이라. 모든 무루(無漏)가 무명·번뇌·업장을 깰 수 있기에, 성명구문(聲・名・句・文)7)은 교법이 되며, 계·정·혜·행(戒・定・慧・行) 등은 수행 방법이 되고, 유위(有爲)·무위(無爲) 등의 결과는 수행 결과가 되니라. 이 네 가지가 법보가 되는 것이니 중생을 인도하여 생사의 바다에서 떠나 피안에 도달케 하니라.
선남자여, 여러 부처님께서 스승으로 삼으신 바가 곧 이 법보이니, 어찌하여 그러할까. 삼세의 부처님들께서는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시어 모든 장애를 끊으시고, 깨달음을 완성하셔서 미래가 다하도록 중생을 이롭게 하시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삼세의 여래께서는 항상 여러 바라밀과 미묘(微妙)8)한 법보를 공양하시는데, 하물며 삼계(三界)의 일체중생이 해탈을 얻지 못하면서도 어찌 미묘한 법보에 대해서 공경치 않을 수 있겠는가? 법보는 생사의 감옥을 깰 수 있으니, 금강이 모든 사물을 깨뜨릴 수 있음과 같도다. 법보는 가난한 중생을 구할 수 있으니, 마니주가 온갖 보배를 쏟아 내는 것과도 같다. 법보는 중생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니, 하늘 북(天皷)9)이 모든 하늘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 법보는 모든 보배 사다리(寶階)10)가 될 수 있으니, 정법을 듣고 천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법보는 견고한 큰 배가 될 수 있으니, 생사의 대해를 건너 피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법보는 전륜성왕과도 같아서, 3독(貪瞋癡)이라는 번뇌의 적(賊)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보는 진귀한 옷이 될 수 있으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러 중생들을 덮어 주기 때문이다. 법보는 금강으로 지은 갑옷과 같아서, 여러 악마를 부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보는 날카로운 검과도 같아, 생사를 끊고 번뇌(繫縛)를 떠나기 때문이다. 법보는 바로 삼승의 보배 수레(寶車)이니, 중생을 실어 나르며 화택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법보는 모든 밝은 등불과도 같아서, 삼도(三塗, 지옥・아귀・축생)의 어두운 곳을 비치기 때문이다. 법보는 활이나 창과도 같으니, 능히 국토의 경계를 진정시키고 원적(怨賊)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보는 험한 길을 인도하는 스승과도 같아서, 중생을 잘 이끌어 보배로운 곳에 도달토록하기 때문이로다.
선남자여, 삼세 여래께서 설하신 묘법이 이렇듯이 부사의한 까닭에 이름을 법보라 하느니라.  <심지관경(心地觀經)>


주석

1) 윤회의 중생(衆生).
2) <화엄경>의 ‘寧~終不捨~’를 <불교대전>에서는 ‘寧~不求’로 언급.
3) <화엄경> 권 60(실차난타 역) 「입법계품」의 게송 중 한 대목.
4) <大教王經>(不空 역) 제 10권의 “多瞋少喜.” <불교대전>에서는 ‘多瞋多喜’. 편집 당시 식자상의 오류로 보이며 여기서는‘多瞋少喜’로 고쳐 번역.
5) 미혹하여 어지러움. 혹은 남을 미혹하게 하여 어지럽힘.
6) <불교대전>에서 ‘又是殑伽沙等’과 ‘之果如是妙法’ 등을 생략.(<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권 1)
7) 문자(文字)는 성명구문(聲名句文)을 포함하며 문자의 체성은 공(空). 소리(聲)는 음(音)이고 명(名)・구(句)・문(文)은 그 소리 위에 표시 됨. 제법의 체성은 바로 공.
8) 공교(工巧)로우며 심오하여 사의할 수 없음. 불가사의.
9) 도리천의 하늘 북, 天皷(=天鼓). 스스로 소리를 내며, 듣게 되는 이의 악심을 없애고 선심을 일으킴.
10)도리천에서 어머니 마야부인께 설법하고 사바세계로 세존께서 밟고 오신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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