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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셰이프 오브 워터
인간을 망가뜨리는 분별심 여실히 보여줘
2018년 04월 06일 (금) 13:22:50 김은주 cshchn2004@naver.com
   

《삼국유사》에는 원효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다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했다는 소문을 듣고 원효 스님은 자신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낙산사를 향해 갔습니다. 가는 길에 원효 스님은 흰 옷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장난삼아 그 여인에게 벼를 달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흉년이 들어 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좀 더 가다가 원효 스님은 냇가에서 옷을 빨고 있는 아낙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낙은 당황스럽게도 빨래 빨던 더러운 물을 주었습니다. 원효 스님은 그 물을 쏟아버리고 스스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나무 위의 파랑새가 “스님은 그냥 돌아가세요!” 하고는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여인과 파랑새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효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원효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의 분별심 때문이었습니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이 건넨 물을 마시지 않았던 이유는,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분별의식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결코 보살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랑새가 원효 스님에게 돌아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보살을 만날 준비가 안됐으니 공연한 헛수고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는 관세음보살의 충고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보살을 만날 수 있을까요? 원효 스님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분별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201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함께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올해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미국, 2017)는 외피는 언어장애를 가진 여자와 물고기인간의 다소 특별한 러브스토리지만 이면에는 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분별의식이 인간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타인과 공감하는 마음을 통해 인간의 숭고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감을 불교적 용어로 쓴다면, 이심전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신을 만나는 부류와 결코 신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앞의 유형은 분별의식이 없기 때문에 신을 만났을 때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반면에 신을 만나지 못하는 부류는, 신에 대한 관념 때문에 낯선 신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모습으로써는 결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은 물의 모양처럼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형태로 가늠된다면 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습으로써 신을 보았으며, 그래서 결코 신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미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연구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앨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어느 날 물고기인간을 만납니다. 남미에서 잡혀온 괴생명체는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아가미가 있는 반인반어입니다. 수조에 갇힌 채 괴성을 질러대는 그에게 앨라이자는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괴생명체를 편견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괴상하다고도, 두렵다고도, 피하고 싶다고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두려울까? 그녀가 그에 대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그런 감정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살 때 고아원 앞에 버려졌고, 목에는 알 수 없는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거기다 말을 못하고, 화장실이나 청소하고 있으며, 물고기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는 처지인 것입니다. 무시당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외로운 처지기에 그녀야말로 물고기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의 손가락을 물어뜯을 정도로 포악해 보이는 괴생명체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계란을 건네고, 또 그 옆에서 도시락을 먹고, 나중에는 집에서 전축을 가져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녀는 오직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에 위로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앨라이자에게 물고기인간은 괴생명체가 아니라 자신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분별의식은 없었습니다. 무한한 공감이 있을 뿐입니다. 앨리이자의 공감에서 시작된 감정은 나중에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앨라이자와 물고기인간의 사랑은, 다른 존재를 만나 공감을 이루고 자신을 확장해가는 완벽한 사랑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괴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신이었습니다. 남미 아마존 부족에게 신으로 숭배 받았지만 지금은 잡혀와 수조에 갇힌 채 사람들에게 전기 봉으로 학대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보안 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목적에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전리품 정도로 여겼습니다. 괴생명체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은 것에 대한 복수심인지 이 생명체를 어떻게든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우주개발에 이용하자며 해부를 주장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괴생명체가 총에 맞았는데도 곧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이었어. 미개한 아마존 부족이 말했던 것처럼 신이었어.”
스트릭랜드는 죽어가면서 이 생명체가 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그런데 앨라이자는 처음부터 그를 신으로 대했습니다. 공감과 존중을 보여주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냐면, 앨라이자는 괴생명체를 자신과 동일시했고,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두고 괴생명체를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혐오감을 가졌습니다. 분별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은 것입니다. 앨라이자는 물고기인간과 함께 바다로 갔습니다. 사랑을 이루었으니 해피 앤딩입니다. 반면에 물고기인간을 분별하고 무시했던 스트릭랜드는 물고기인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불행한 결과입니다. 공감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분별의식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스트릭랜드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여성과 흑인, 성소수자 등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과 대립되는 주류 백인남성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가 영화에서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신앙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트릭랜드는 영화에서 물고기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 우월의식을 기반으로 한 분별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앨라이자나 젤다를 대할 때 스트릭랜드는 온갖 비아냥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들과 대화하고 나가면서 “대화 즐거웠습니다, 숙녀분들!” 하였습니다. 그런데 ‘숙녀분들’이라는 말이 그의 비아냥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납니다. 괴생명체가 사라지고 청소부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줌이나 닦고 똥이나 닦는 것들하고 뭘 하겠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그에게 앨라이자와 같은 청소하는 사람들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오줌이나 닦고 똥이나 닦는 하등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을 결코 인격체로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흑인을 대할 때도 그의 편견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괴생명체가 아마존 사람들한테 신으로 섬겨진다는 얘기를 하면서 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아마존 부족을 미개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흑인인 젤다를 바라보면서 신은 흑인 여성인 젤다 보다는 백인 남성인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스트릭랜드는 어떤 종류의 신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신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고, 이는 흑인 여성에 대해 자신이 우월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사고인 것입니다. 스트릭랜드는 이런 식으로 백인 남성 모습의 신을 상상해왔기 때문에 괴생명체를 절대로 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관념이 신을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스트릭랜드 캐릭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손가락에 대한 집착입니다. 스트릭랜드는 괴생명체에게 손가락 두 개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앨라이자가 청소를 하다가 손가락을 찾아줬고, 그는 그것을 다시 자신의 손가락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손가락은 제대로 접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손가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검은 색으로 썩어 들어갔고 옆 사람까지 느낄 정도로 고약한 냄새를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그는 그 손가락을 붙이고 살아갔습니다. 썩어가는 손가락을 자신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은 늙고 병들어가는 육신에 집착하느라 이기심만 키워가는 인간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봅니다. 스트릭랜드 캐릭터는 자칫 현대판 <인어공주>가 될 수 있었던 영화에 깊이와 질감을 더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습니다.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텔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올해 최고의 영화입니다. 괴물과 인간의 러브스토리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인간의 관념과 그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이고 사랑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냄으로써,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놀라운 영화입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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