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국제불교청소년교환캠프(IBYE KOREA 2018)를 주최한 세계 불교청년우의회(World Fellowship Buddhist Youth, WFBY)는 지난 16일 저녁 제주도 서귀포시 빠레브 호텔 소연회실에서 ‘집단학살에 대한 성찰과 공동체 복원’을 주제로 제주 4·3 7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세계불교청년들이 제주 4·3을 조명하고, 공동체 복원을 모색했다. 3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2018 국제 불교 청소년 교환 캠프〔International Buddhist Youth Exchange(IBYE) Korea 2018〕’를 주최한 세계불교청년우의회(World Fellowship Buddhist Youth, WFBY)는 16일 저녁 서귀포시 빠레브 호텔 소연회실에서 ‘집단학살에 대한 성찰과 공동체 복원’을 주제로 ‘제주 4·3 7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김보성 제주불교청년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이도흠 한양대 교수,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 일본 료쇼 쇼지 스님(WFB 수석 사무총장)이 각각 주제 발표하고 참가자들이 함께 토론했다.

이도흠 교수는 주제 발표 ‘제주 4·3 민중항쟁에서 폭력의 양상과 공동체 복원 방안’를 통해 집단학살의 원인을 분석하고 평화와 상생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 교수는 “제주 4·3 민중항쟁은 육지와 제주 사이의 타자성, 민족 모순과 일제 잔재, 냉전체제와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대립, 미군정의 연이은 실정, 좌익에 대한 배제와 폭력, 5·10 남한 단독정부 수립 선거 강행, 이승만 정권의 대미 종속과 우 편향, 서북청년단의 야만적 폭력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여 빚어낸 민중항쟁이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제주 4·3 집단학살을 물리적 폭력, 문화적 폭력, 구조적 폭력, 재현의 폭력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이 교수는 “4·3에 가해진 문화적 폭력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육지에서 온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제주도민에 대한 변방화와 타자화였다”며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민간인 학살을 ‘red hunt’로 규정하며 정당화하였으며, 제주도는 그 이후에도 ‘빨갱이 섬’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구조적 폭력으로 작용한 것은 미국에 종속적인 관계, 분단 모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주권 권력(Sovereign Power), 국가보안법 등의 제도, 학교와 언론과 같은 훈육 권력(Disciplinary Power)이었다”며 “이승만 정권부터 군사독재 정권까지 제주 4·3은 빨갱이들의 무장폭동의 담론으로 재현되는 것만이 허용되는 재현의 폭력(the violence of representation)이 행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장대에만 이 폭력을 가하다가 그 다음에는 중산간 마을 사람들로, 나중에는 제주도 사람 모두를 ‘죽여도 좋은 빨갱이’로 재현했다는 것.

최소한 1970년대 말까지 ‘4·3’이라는 낱말 자체는 거론되면 안 되는 금기어였는데, 김석범의 <화산도>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계기로 재현의 폭력에 맞서는 담론들이 서서히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직 진상 규명과 미국의 사과, 가해 책임자에 대한 처벌, 이를 통한 완전한 치유와 화해, 공동체 회복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완료형의 화해와 상생을 말하거나 제주 4·3 치유 모델을 세계화하자는 박명림 식의 주장은 진실을 은폐하며 거짓 화해로 고통의 상처와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요된 용서와 관용은 모순과 갈등을 심화하며, 가해자들이 위선의 탈을 쓰게 하고 피해자들에게는 더욱 큰 고통과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또 김상봉 식의 섣부른 양비론 또한 진실을 은폐하고 모순의 지양을 통한 화해를 방해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집단학살의 근본 원인을 한나 아렌트의 ‘평범한 악’이나 스탠리 밀그램이 말하는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 ‘동일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타자를 상정하고 이를 배제하고 폭력을 가하면서 동일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 교수는 “제주의 4·3 학살에서도 육지/섬, 우익/좌익, 알뜨르(해안 지역)/웃뜨르(중산간 지역)으로 나눈 채, 주로 전자로 동일화한 세력이 후자를 타자화하면서 학살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은 동일성을 해체하는 눈부처-차이로 패러다임과 태도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해야 제주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공동체 복원의 길이 열린다고 보았다.

또 불교적으로는 “자비명상을 통하여 폭력과 분노의 뿌리를 성찰하여 이를 버리고 자비심을 갖는 것이 대안이지만, 이로는 부족하기에 사회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제 너와 나 손 마주잡고 미쁜 마을을 만들려면, 하늘의 몫은 하늘에 맡기고 역사의 몫은 역사에 맡길 것이 아니라, ‘거짓 화해’와 ‘강요된 용서와 관용’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우리 모두 주체가 되어 철저한 진상 규명과 미국을 포함한 가해자들의 사과, 관련 법에서 대미(對美) 종속 관계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폭력의 제거, 가해자 법적 처벌과 피해자들의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통한 용서,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의 형성과 회복적 정의의 구현, 화해와 상생의 공동체 복원, 나아가 남북의 평화적 통일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무 교수는 자신이 제주 4·3 피해 가족이라고 고백하며 ‘제주 4·3 사건의 구조적 맥락과 역사 및 사회의 복원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제주 4·3사건을 사회적 맥락과 구조적 맥락으로 나눠 접근했다. 당시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밝혀 제주 4·3 사건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또 구조적 맥락에서 보아야 제주 4·3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의 정치사회적 위상과 특징이 드러난다고 보고 그 구조적 맥락을 밝히기 위해 국가폭력을 정치체계의 과잉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인 루만의 사회적 체계이론을 원용했다.

유 교수는 “그 발견의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일제, 소련)의 이해 관계와 군대의 작동코드, 이승만 정부의 체제/환경-차이 구조와 군대식 작동코드가 당시 제주도의 이념 갈등을 포함한 정치적 기능체계에 과잉 개입함으로써 제주 4·3 사건과 같은 집단학살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한국사회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는 원칙이자 ‘제주 4·3 특별법’에서조차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생각되는 원칙, 즉 책임자 처벌의 원칙, 재발 방지의 원칙, 그리고 지속적 기억의 원칙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 각각을 역사의 복원, 사회의 복원, 종교적 복원과 연관시켜 논의해야 한다”면서 “제주 4·3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은 생명의 시효나 법적 공소시효를 넘어서서 역사적·사회적·종교적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병기 교수는 ‘폭력의 극복과 평화를 위한 불교윤리적 지혜’를 통해 “21세기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국인에게 ‘4·3’은 폭력의 극복과 평화의 정착이라는 과제로 새롭게 새겨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유로든 타자를 악마화하며 휘두르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평화의 정착은 다른 어떤 목표보다도 앞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는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북·미 사이의 전쟁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노정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떤 이유로도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평화의 안정적인 정착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를 일깨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오늘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제주 4·3 항쟁’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 속에서 집단적으로 구조적인 폭력이 본격화되는 촉발점이 됐다”며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국동란과 독재정권에 의한 살인과 투옥, 더 나아가 돈과 권력에 기반한 상징 폭력의 제도화로 연결되면서 현재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4·3은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4·19와 5·18, 6월 항쟁, 촛불 항쟁으로 이어지는 폭력 극복의 불씨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평화의 불씨를 내 마음 속에서부터 살려내는 일”이라며 “그 과제는 당연히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 만연해 있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인식과 극복이라는 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박 교수는 불교를 통해 대안을 모색했다. 그는 “불교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에서 시작해서 그 마음이 맺고 있는 연기적 관계망의 직시를 기반으로 하는 자비의 실천으로 확장된다”며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연기적으로 얽혀 있는 타자의 평화를 위해 실천하는 일까지가 불교평화론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이 때의 평화는 폭력의 극복이고, 폭력의 극복은 다시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불인정과 무시 같은 상징 폭력의 극복을 의미한다”며 “나아가 개인적 차원의 폭력과 구조적 차원의 폭력을 동시에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에게 불교는 주로 전통에 기반한 제도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동시에 피터 싱어의 적절한 주목과 같이 인류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윤리적 무력감을 넘어설 수 있는 인식틀과 실천력을 포함하고 있는 윤리이자 철학”이라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런 불교를 일상 속에서 살아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나 자신에서 시작해서 학교, 사회, 지구촌으로 이어지는 연기적 관계망에 관한 직시를 바탕으로 삼은 일상적 실천이 따라와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한 전제 중 하나는 자신의 일상으로부터의 적절한 거리두기와 철학함”이라고 했다.

료쇼 쇼지 스님은 ‘다르마에 따른 현대 세계의 평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쇼지 스님은 자신이 새해에 후지산과 매, 가지 꿈을 꾸었는데, 이 세 가지가 모두 일본 역사에서 복수와 연관되었다고 말했다. 후지산은 소가노 유로 고로가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한 곳이며, 매는 아사노 타쿠키오가미의 가족 문장으로 그의 원수이자 영주인 키라 코즈켄노스케를 죽인 것을 뜻하며, 마지막으로 이가파쓰의 복수는 가지 생산으로 유명한 이가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쇼지 스님은 47명의 사무라이가 주인의 원수를 갚고 모두 할복한 추신구라(忠臣蔵)가 영화와 드라마로도 가장 자주 반복되는 서사인 데서 잘 나타나듯, 일본에서는 주인과 부모에 대한 복수 행위가 영웅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850년 전에 일본 정토종을 창종한 호넨(法然: 1153~1212)은 아버지인 토키쿠니가 복수하지 말고 스님이 되라는 유언에 따라 비증오(非憎惡)의 길을 열었다고 보았다. 비증오의 개념은 불교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불교도 모두가 공유하고 수용하여야 하는 전통이라는 것이다.

쇼지 스님은 “신라 태현(太賢) 스님이 7세기에 저술한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에서 부모의 복수를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해소하는 자비행이 효도 중의 효도라는 가르침을 일본에 전하였고 이런 가르침 덕분에 비증오의 미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쇼지 스님은 “증오는 증오로 결코 달랠 수 없으며, 증오가 아닌 것으로만 증오가 진정된다. 이것은 영원한 법”이라고 말했다.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 본지 업무 제휴 매체인 <불교닷컴>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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