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천년이상 서로 싸우고 있지만 기실 그 교리에 있어서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다. 물론 유태교와도 그렇다. 구약이라는 성경을 두 종교가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진리는 하나일까 각각일까? 그러나 가장 올바른 진리가 ‘둘’일 수는 없다. 가장 올바른 진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어느 쪽이든 한쪽은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종교의 가르침의 내용은 그 표현법이나 세세한 이론이나 개념, 논리, 세계관은 다를 지라도, 결국 인간이 실천해야 할 길을 설명한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옳음과 그름”은 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 고등 종교간에 큰 차이가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종교란 것이 크게 봐서 별로 차이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종교 상호간의 이해,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용납에 관한 내용인데, 이런 태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 이른바 종교 다원주의(多元主義)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 유독 배타적이었기에 기독교 선각자들은 그런 배타성의 잘못을 일찍부터 심각하게 느꼈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런 배타성이 비교적 약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유불선(儒佛仙) 삼교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사상이 형성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동학이나, 천도교 등의 자생적 종교들에서도 그러하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였고 발달하였다. 물론 불교는 초기 브라마니즘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했기에 브라마니즘과의 차별성에 큰 역점을 두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브라마니즘, 혹은 그 변형인 힌두교가 그렇게 사악한 종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힌두교는 나름 인도의 토속신앙과 합치고 변형되어 와서 3천년 이상을 인도인들의 종교로 기능해 왔다.

종교란, 한사람의 성인이 나와서 만든 것이 아니고, 수백년 수천년동안,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의 믿음과 헌신을 통해서 자라온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상당 부분은 그것이 종교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인간을 서로 사랑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진리를 실천하고 구현하며, 인간 개개인이 하느님 만큼이나 존귀한 존재이고, 인간 개개인이 무한한 덕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진리들일 터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다르기로 따지면 천주교는 하느님이 하늘이 있다고 했고, 천도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다르기로 따지면 기독교 장로회와 예수교 장로회도 한참 다르다. 다르기로 따지면 집 앞에 수많은 교회를 두고 매일 다른 동네로 버스타고 다니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많다. 다르기로 따지면 한이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가 같은가 다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르지도 않지만, 달라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내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고, 내 종교가 다른 종교인으로보터 가치를 인정받는 길이기도 하다.

진리가 인간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사상, 그것은 세계 종교에서 공통되는 현상이다. 기독교나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그러하고, 브라마니즘의 아트만(atman) 사상이나, 진아(眞我-참나) 사상도 그러하다. 물론 불교의 여래장(如來藏)이나 불성(佛性) 사상도 그러하다. 아마도 그런 것들이 종교의 보편적인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것은 원래 불교 사상이 아닌가? 그것은 브라마니즘에서 흘러들어온 불순한 사상인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초기 불교에서 좀 덜 강조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기 불교에서 나중에 강조했을 수도 있다. 초기불전에 그런 얘기가 별로 없다고 불교가 아닌가? 그리고 불교란 초기불교만이 불교인가? 요즘 어떤 책들을 보면 그런 얘기가 좀 지나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사상은 변하고 발전한다. 불교사상도 발전되면서 형성되었다. 초기불교만이 불교는 아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존귀하고, 인간 속에 진리가 들어있다(佛卽是心)”는 사상을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불교가 다른 종교사상과 유사하다고 해서 불결한 것은 아니다. 종교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다른 종교도 우리 종교만큼이나 귀하고 옳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이건 불교고 이건 불교가 아니라고” 따지는 태도 자체가 비불교적이다.

3조 승찬스님 말대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간택심(揀擇心)만 버리면 되는 것이다.” 요즘 학자들은 논문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좀 지나친 내용도 많다. 학자들이 쓰는 논문이란 것이 늘 차별성(간택심)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의 문제를 논문으로 다룰수록 이상해지는 듯하다. 공통점을 찾을수록 진리에 가까워지고, 차이점을 찾을수록 진리에서 멀어진다는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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