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사 회화나무. <사진=불교닷컴>

회화나무는 잠을 자고 싶다. 회화나무 친구인 소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밤새 켜진 등불, 야간조명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조계사 나무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언제인지 조계사에는 갖가지 조명들이 설치됐다. 일주문과 대웅전은 물론 조계사 경내에 큰 나무 밑에는 조명이 설치돼 밤에 불을 밝힌다.

회화나무는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수백 년간 자리를 지켰다. 보호수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수령이 450년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에는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비롯해 주요 행사 때마다 등이 걸린다. 등을 걸면서 전깃줄과 철사가 함께 사용된다. 예전에는 부처님오신날이 지나면 등은 철거돼 회화나무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요즘은 회화나무를 온전히 보기 어렵다. 자주 등이 걸리고, 밤에는 등불이 켜져 회화나무보다 등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른 나무에도 조명이 설치돼 늦은 밤 조계사 경내는 붉고 푸른, 보랏빛 등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장엄’한다. 조명으로 경내를 밝히는 것은 어찌 보면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전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불빛에 취하는 사람들도 많다. 외국인도 좋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회화나무도 잠들게 놔둬라”

그런데 조계사 일부 신도들은 마뜩치 않다. 밤새 켜진 불빛이 450년이 넘은 회화나무를 해친다고 여긴다. 전깃줄과 철사로 매단 등 때문에 회화나무가 상할까 염려하기도 한다. 붙박이 신도였던 한 조계사 신도회 전 임원 A보살은 “예전에는 초파일 전후에만 회화나무에 등을 달았다. 요즘엔 거의 일년 내내 달려 있는 것 같다”며 더 이상 회화나무에게 불빛을 쏘아 잠들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A보살은 “나무도 생명인데, 생명을 보호해야 할 사찰에서 나무가 쉴 수 없도록 하면 안 된다”며 "오늘(28일) 새벽 4시가 안 돼 기도하러 갔다. 그 시간에도 회화나무에 달린 수백 개의 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불편했다. 많은 신도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전했다. A보살의 뜻은 한 마디로 “나무도 잠을 자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실제 27일 늦은 저녁 조계사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회화나무를 비롯해 경내 곳곳에 서 있는 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회화나무에는 수많은 등이 불을 뿜어내며 가지마다 걸려 있었다. 나무는 겨울철 휴면상태에 빠진다. 잠자는 나무에 밤새 조명을 쏘아대면 어떻게 될까.

국림산림과학원 “늦어도 2월엔 조명 철거해야”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은 몇 해 전 장식용 전구를 이용한 야간 조명이 가로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발표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이 연구를 한 원인은 장식용 전구를 설치해 도심 야간 경관을 아름답게 장식하여 국민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있지만 전구 설치와 전구에서의 나오는 열과 빛이 나무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은 “겨울철의 삭막한 도시를 밝게 해주는 가로수 야간 조명은 설치시기, 철거시기 등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나무의 생육이나 생리적으로 특별한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발표했다.

야간조명 전구에서 발열되는 온도는 28℃전후였지만 영하의 겨울날씨에서 그대로 상쇄되었고, 전구의 밝기는 26~300룩스(lx)로서 일반가로등의 1,000룩스(lx)의 1/3~1/40 수준으로 피해가 없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야간조명 시설이 개화시기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하지만 국립산림과학원은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되는 3월 초순부터는 전나무 잎에서 일부분이 피해를 받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건에 따라 나무가 전구장식 불빛과 야간조명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립산림과학원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야간조명 전구의 설치시기는 나무들이 완전히 휴면상태가 되는 12월부터 설치하고 철거 시기는 2월말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하며, 조명시설을 제거할 때는 나무에 매어놓은 전깃줄이나 철사줄 등을 완전히 제거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처럼 나무도 밤에는 잠을 잔다”

최근 해외 연구사례로 “나무도 밤에 잠을 잔다”는 결과도 있다. 사람이 잠을 잘 때와 비슷한 신체 변화가 나무에 규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

<연합뉴스>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 공대의 노르베르트 파이퍼, 핀란드 공간정보 연구소의 에투 푸토넨, 헝가리 생태학 연구센터의 안드라스 즐린스키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국제 학술지 '식물과학 프런티어'를 통해 2016년 5월 20일 발표했다.

이들 과학자는 레이저 스캐너로 나무 두 그루를 스캔하고서 나무 표면 곳곳을 면밀히 조사해 나무가 밤에 움직인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나무는 해가 지면 조금씩 아래로 축 늘어지기 시작해 해 뜨기 몇 시간 전에 가장 많이 늘어졌고 오전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날씨와 위치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바람이 불지 않고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환경으로 조건을 맞춰 나무 한 그루를 핀란드에서, 다른 한 그루를 오스트리아에서 연구했다.

푸토넨은 “나무 전체가 밤에 아래로 처지며 이는 잎과 가지의 이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화 폭은 5m 나무 기준 10㎝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변화가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또 즐린스키는 "이른바 팽압으로 불리는 나무 세포 내 수압 손실 때문에 나무가 처질 수 있다"며 "가지와 잎줄기는 덜 단단하고 스스로 무게를 버티지 못해 늘어지는 데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팽압은 광합성 영향을 받으며 해가 지면 멈춘다.

야간조명은 마치 낮의 해처럼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위적으로 하루 종일 광합성이 일어날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불교는 나무와 매우 가까운 종교이다. 붓다 석가모니는 나무(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성취했고, 두 그루의 샬라 나무(사라쌍수) 밑에서 열반했다.

<잡아함경>에는 붓다 석가모니가 열반하는 자리에서 있던 두 그루의 샬라 나무는 때 아닌 꽃을 활짝 피우고 꽃비를 흩날려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하다! 너희들 견고(샬라) 나무여, 가지 드리워 부처님께 예경하네. 큰 스승님의 반열반을 아름다운 꽃으로 공양하는구나.” (善好堅固樹, 枝條垂禮佛, 妙花以供養, 大師般涅槃.) 두 그루의 샬라 나무는 붓다의 높은 ‘법’을 찬탄한 것이다.

사찰 수익 때문에 수백 년된 회화나무 괴롭히나

최근 회화나무에 걸린 등은 ‘사천왕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조계사는 오는 3월 2일 오전 6시 무술년새해 맞이 길상성취 사천왕재를 봉행한다. 교계언론에 따르면 조계사 사천왕재는 가내길상을 위한 것으로, <금강명최승왕경>에 의하면, 사천왕은 호법신에게 명해 중생계의 시찰을 명해 부모에게 효도하는지, 수행자들을 잘 시봉하는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잘 보살피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매달 15일에는 사천왕은 직접 인간계에 내려와 인간의 행위를 확인하고 도리천 제석천왕에게 상세히 보고한다“고 말한다. 조계사는 원래 사천왕문이 없었다. 2013년 일주문에 현대식 조형물로 사천왕상을 조성해 봉안했다.

그런데 A보살은 “생전 듣지도 못한 사천왕재를 조계사가 처음한다”며 “사찰이 너무 수익만 보는 것 아니냐”며 “사찰 수익 때문에 수백 년된 회화나무를 괴롭힌다. 회화나무에게 입이 있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A보살은 회화나무와 경내 나무에 걸린 등과 야간조명이 새벽기도를 하는 신도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새벽 일찍 정갈하게 사찰에 와서 기도를 하려는 데 번쩍이는 조명들이 기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계사가 너무 변했다. 기본(기도 예불 수행)에 충실하기 보다 너무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고, 수익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며 “불자 300만 감소가 남의 일이냐, 젊은 청년들을 절로 불러오지 못하는 불교가 있는 노보살들까지 무시하면 700만 불자는 500만 불자로 더 줄지 않겠냐”고 질타한다.

또 “한 번은 사찰운영과 관련해 사업계획을 신도회와 논의하기 보다 ‘보고’만 하는 식이어서 ‘회의’라는 명칭을 ‘보고회’로 바꾸라고 했었다”며 “주지 스님에게도 신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니 ‘스님들 일은 스님들에게 맡기라’고 하더라. 스님들에게는 신도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만약 사찰 수익 때문에 수백 년된 회화나무를 힘들게 한다면 부처님이 뭐라 하실까. 오래 전 한 스님이 기자에게 “절은 주지가 직접 목탁 잡고 신도들과 열심히 기도하면 불사가 저절로 된다.”고 강조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기획’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꾸쉬나가르에는 샬라 나무 두 그루가 아직도 붓다의 법을 좇는 불자들을 반갑게 맞는다. 그 나무에는 조명도 전깃줄도 없지만 불자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경배하며, 대열반당에 보시한다.

이제 나무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펼 때다. 조계사 회화나무도 이제 오색불빛 치장을 벗고 싹을 띄울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회화나무에게 잠잘 시간을 주자는 한 신도의 제안에 귀 기울일 때다.

불교닷컴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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