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타 스님 부도탑과 탑비.

장성 고불총림 백양사와 벽산문도회는 벽산당 금타 대화상 열반 70주기를 맞아 3월 11일 오전 10시 30분 경내 부도전에서 부도탑 제막식을 봉행한다. 이어 오후 1시 30분부터 경내 교육관에서 ‘추모 세미나’를 개최한다.

조성된 부도는 높이 2.5m, 폭 1.5m 크기로 중국 서안 초당사에 있는 구마라집 법사 부도 형태를 본떠 조성했다. 함께 조성된 탑비는 높이 3.2m, 폭 1.3m 크기다. 탑비에 새겨진 행장은 고불총림 방장 지선 스님이 지었으며, 학정 이돈홍 선생이 새겼다.

백양사는 금타 스님의 부도와 함께 스님의 제자인 법련당 정수, 법능당 성기, 보화당 지죽 스님과 청화 스님의 상좌 무지당 월성 스님의 부도를 함께 부도전에 봉안한다.

추모 세미나에서는 법상 스님(중앙승가대 외래 교수)이 ‘벽산 금타의 회통사상과 수행 체계’를,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금타 선사 생애의 재검토’를, 안준영 미국 미시건대 교수가 ‘금타 대화상의 삶과 사상을 통한 현대 불교 연구의 재조명’을 각각 주제 발표하고, 진관 스님(불교인권위 위원장)과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구세웅 코리아엑스포제 대표가 토론한다.

백양사 주지 토진 스님은 “열반에 드신 지 70년이 다 되도록 어른 스님의 부도를 모시지 못해 항상 죄송스러웠는데 방장스님의 배려와 상정 임창욱 거사님의 정성어린 시주, 그리고 문도 스님들의 마음이 모여 불사가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다”며, “나란히 서 계신 큰스님들의 부도가 저희 백양사를 가호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금타 스님은?

▲ 금타 스님.
금타 스님은 염불선으로 유명한 청화 스님의 은사이다. 1898년 태어난 스님은 3·1운동 당시 고창 문수사에 피신해 있던 중 우연히 《금강경》을 보고 발심해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은계사로 수계 득도했다. 1936년 운문암에서 정진하던 중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감득(感得)하고 깨달았다. 이후 내장사 벽련암과 백양사 운문암에서 두문불출하며 십 수 년간 보림정진했다.

스님은 ‘보리방편문’으로 정혜균지(定慧均持)의 수행법과 불교 인생관을 확립했으며, 근본선정(根本禪定)인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재조명했다. 또 불교와 과학을 접목한 《우주의 본질과 형량》, 각 경론을 회통한 《수릉엄삼매도결》 등을 지었으며, 중생을 근기에 따라 제도할 방편으로 ‘관음문자’를 창제했다.

또한 지·수·화·풍·공 오대(五大)를 합작한 ‘금륜도’를 창작했으며, 종교 일원화를 제창하고, 수도위차(修道位次) 체계를 확립하는 등 독창적인 정법체계를 이룩했다. 1948년 세수 51세, 법랍 29세로 열반에 들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