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종심 선사가 남전보원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평소의 마음이 도이다.” 조주가 물었다. “향하여 다가갈 수 있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향하여 다가가려 하면 어긋난다.” 조주가 물었다. “향하여 다가가지 않으면, 어떻게 도를 압니까?” 남전이 말했다. “도는 앎에 속하지도 않고, 알지 못함에 속하지도 않는다. 앎은 망상하며 깨어 있는 것이고, 알지 못함은 캄캄한 어둠이다. 만약 의심할 수 없는 도에 참으로 통달한다면, 마치 커다란 허공과 같아서 막힘 없이 텅 비었는데, 어떻게 억지로 옳으니 그르니 할 수 있겠느냐?” 조주는 이 말을 듣고서 깨달았다.

뒷날 고불(古佛; 옛 부처님)이라 불릴 만큼 유명하게 된 조주가 스승인 남전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이다. 조주의 질문도 매우 핵심을 찌르고 있지만, 남전이 사람을 일깨우는 가르침은 더욱 훌륭하여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란 질문은, ‘어떤 것이 깨달음입니까?’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어떤 것이 불교의 진리입니까?’라는 질문과 같은 질문으로서 공부인이 흔히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하여 남전 선사는 “평소의 마음이 도이다.”라고 말했다. 평상심(平常心) 즉 평소의 마음이 도라면, 어떤 것이 평소의 마음일까?

평소에 우리는 보통 자기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을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이 알아 주지 않는 자기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물어 보면, 모두들 자기의 느낌이나 감정이나 기분이나 생각이나 욕망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곧 우리의 마음이라면, 우리는 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다시 깨달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의 마음이 도’라고 할 때의 마음은 이런 느낌․감정․기분․생각․욕망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러면 평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평소의 마음이 도라는 가르침에 대하여 조주는, “향하여 다가갈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다. 조주는 내가 나의 마음을 향하여 다가갈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남전은 “향하여 다가가려 하면 어긋난다.”고 하였다.

왜 그럴까? 내가 나의 마음을 향하여 다가간다는 것은 나와 나의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마음은 분리되어 있을까? 몸과 마음을 벗어나서 나가 따로 있을까? 몸도 없고 마음도 없다면 어디에 나가 있을까? 나는 나의 몸을 향하여 다가갈 수 없다. 나의 몸과 나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마음을 향하여 다가갈 수 없다. 나와 나의 마음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향하여 다가가려 한다면, 그것은 곧 진실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남전의 이 가르침에 대하여 조주는 다시 “향하여 다가가지 않으면, 어떻게 도를 압니까?”라고 물었다. 이것은 도가 평소의 마음이라면, 평소의 마음을 분별하여 알 수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남전은 “도는 앎에 속하지도 않고, 알지 못함에 속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앎은 망상하며 깨어 있는 것이고 알지 못함은 캄캄한 어둠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곧 아는 주관과 알려지는 객관이 분리된 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관은 ‘나’이고 객관은 ‘나의 마음’인데, 이미 ‘나’와 ‘나의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밝혔다. 내가 내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은, 마치 눈이 눈 스스로를 직접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내 마음을 안다고 하면, 그것은 진실이 아닌 헛된 생각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앎도 없다면, 그것은 깊은 잠을 자듯이 캄캄한 어둠이니 깨달음은 아니다. 이처럼 알아도 도가 아니고 알지 못해도 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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