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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초기불교의 수행론
일 학자 주장 무비판적 수용 탓, ‘붓다는 수정주의 버려’ 인식
2018년 02월 27일 (화) 17:57:48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부처님은 선정을 버렸는가

석가모니 붓다는 성도 전 출가 초기에 선정주의자 밑에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뒤 그들의 수행이 열반을 성취하는 길이 아님을 알고 선정주의를 버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버리고 난 후에 성도하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수정(修定)이란 선정을 닦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수정주의란 선정을 닦는 수행을 높이 여기는 입장이다.

놀랍게도 국내 불교학 관련 책 여기저기에서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다’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불교학 연구의 중심인 동국대가 발행한 여러 불교 개론서에서도 이는 명백한 사실처럼 기술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2차적으로 여러 주장을 확대 재생산했고, 나아가 최근 불교학계 일각에서는 “불교는 본래 선정을 부정했다”며 선정 수행 무용론까지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을까? ‘버렸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와 일상적인 함의는 ‘쓰지 못할 것을 없애거나 처치한 것’, 또는 ‘어떤 성격이나 나쁜 버릇 따위를 떼어 없앤 것’이다. 말 그대로 ‘붓다가 수정주의를 버렸다’라고 한다면 ‘더 이상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선정수행은 불교 수행의 중심이 되는 실천법으로 강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석가모니 붓다는 선정 수행을 통해 열반 해탈을 성취했다고 분명히 밝혔으며, 초기 경전은 물론 이후 불교 전통에 이르기까지 선정 수행을 강조하는 맥락은 변함이 없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불교학계 일각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입장에서 불교 교리를 해석하는 경향까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경향은 심각한 왜곡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같은 이해는 선정 수행 없이 반야지혜가 가능하다는 주장의 근거로도 활용된다. 심지어 반야지혜를 성취하는 것은 낮은 단계의 선정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선정 수준이 높아지면 지혜 발현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선정과 반야를 각각 별개의 독립된 영역으로 보는 주장도 대두되기도 한다. 더 극단적인 형태는 최근 한국불교학계에서 선정과 반야를 서로 배타적인 관계로 보는 주장이다.

국내 불교학계의 수정주의 부정

먼저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는가’에 대해 국내 불교학계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동국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불교학개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개론서이다. 이 책에는 수정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이 표명되어 있다.

그는 당시 가장 명망이 높은 대표적인 철인(수도자)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 사사하였다. 한 사람은 알라라 칼라마(Āḷāla Kālāma)이며, 또 하나는 웃다카 라마풋타(Uddhaka Ramaputta)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선정법(禪定法)에 의하여 수행하는 수행주의자였다. 이들은 선정 즉 정신통일에 의하여 정신적 작용이 전연 정지되어 적정한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해탈에 이른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그 경지도 일단 정신통일의 상태가 끝나버리면 다시 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오게 되므로 수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만 했다. … 그래서 영원히 사는 법을 찾기 위하여 다시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버리고 말았다. - 교양교재편찬위원회, 《불교학개론》(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p. 27.

다음은 동국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불교문화사》에 기술된 내용이다.

태자는 계속해서 두 선인(仙人)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푸타에 사사(師事)하였다. 그들은 수정주의자(修定主義者)의 대표자이며 정신통일에 의하여 해탈(解脫)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야나(禪定)·사마디(三昧)·요가(瑜伽)와 같은 말은 이와 같은 정신통일의 행법에 의하여 이름한 것이며, 이들의 종교적 실천은 인도의 종교에서는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이다. 태자는 그들이 체득한 선정의 깊은 뜻을 수득(修得)하였으나 그들이 인생 도피의 경향이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없어 그들이 있는 곳을 떠났다. - 교양교재편찬위원회, 《불교문화사》(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p. 26.

다음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이 발간한 《불교사상의 이해》이다. 이 책은 《불교학개론》이나 《불교문화사》보다는 최근에 출간한 개론서이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입장이 반복되는데 한 구절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집중을 위한 수정(修定)에 이어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苦行)까지 버림으로써, 싯다르타는 이제 전통적인 수행방법을 모두 떠난 셈이 되었다.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사상의 이해》(불교시대사, 2012), p. 57.

이와 같이 붓다가 수정주의를 버렸다는 이해는 이후 국내 여러 불교 책자나 매체에 다양한 형태로 재포장되고 재생산되어 나타난다. 심지어는 선정이나 삼매 등을 단순한 ‘정신 집중’이나 ‘정신 통일’의 행법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선정을 일종의 정신 집중 테크닉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앞에서 인용한 세 책에서 모두 선정을 정신 통일이나 정신 집중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부분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 통일이나 정신 집중을 선정의 중심 개념처럼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부처님의 선정에 대한 입장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바라문 계층의 수정주의자인 아라라 선인과 웃다카 선인에게 가서 공부하여 그들이 체험한 궁극을 증득했으나 실지의 해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전변설을 주장하는 수정주의를 버리고 다음에 적취설을 주장하는 고행주의자로 가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육년 동안 갖은 고행을 다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어서 고행을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공부하여 새벽별을 보고 정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 퇴옹 성철, 《백일법문》 상, (장경각, 1987), pp. 72~73.

다음은 전문 학술연구논문에서 이러한 맥락이 어떻게 서술되고 있는지를 인용해 본다.

모든 선정의 경지를 완성한 연후에라야 깨달음이 가능한 수행법이라면 그것은 다분히 수정주의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불교 내에서 수정주의는 고행주의와 마찬가지로 극복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임승택, <첫 번째 선정(初禪)의 의의와 위상에 대한 고찰>, 《불교학 연구》제6호 p. 196.

이외에도 여러 연구자들이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다’는 맥락으로 다양한 형태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서 선정의 오해

동아시아 불교전통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과 분위기에서 선정 수행을 경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육조단경》의 ‘오직 견성만을 말하고 선정 해탈은 말하지 않는다〔唯論見性 不論禪定解脫〕’란 문구를 들어 혜능 대사도 선정을 부정하는 양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선정 수행 없이 오직 견성만 설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공자들이 북종을 수정주의, 그리고 남종을 반야주의로 규정하는 것도 그것이다. 즉 단도직입의 견성을 말하는 혜능계 남종 선법이 점차차제를 닦는 북종의 선법을 수정주의라고 했으며, 그러한 일반의 선정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논리의 비약이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선정주의나 수정주의를 버렸다’는 입장의 전거로 곧잘 인용되는 것 중 하나가 《전등록(傳燈錄)》 <남악회양> 장의 마조 도일 선사 일화다.

젊은 마조가 매일 좌선을 열심히 하자 남악이 그 앞에서 기와 한 장을 손에 쥐고 돌에 갈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마조가 “무엇을 목적으로 기와를 가느냐?”고 묻자 남악이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다시 마조가 “기와를 갈아서 어찌 거울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하자 남악이 다시 “좌선해서 어찌 부처를 이루겠느냐?”라고 답했다.

여기서 선정 수행은 기와를 가는 것에 비유된다. 기와는 아무리 갈아봐야 기와이지 무엇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남악과 마조의 일화를 마치 선정 수행으로는 성불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처럼 받아들여, 수정주의를 부정하는 맥락으로 인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확실히 잘못된 연결일 것이다.

과연 석가모니 붓다, 또는 불교는 선정이나 수정 자체를 경시하거나 부정하는 입장인가? 그런 입장이라면 붓다는 왜 다시 사선(四禪)과 사무색정(四無色定)의 구차제정 등을 반복적으로 설했는가? 초기불교 경전에 사마타, 위빠사나 등 선정 수행을 닦는 수정주의 가르침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필자의 초기불교 이해에 따르면 붓다는 너무나도 철저한 수정주의자였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의 핵심은 선정의 가르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불교계에서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다’는 식의 주장과 이해가 있게 되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운을 떼자면 필자는 한국불교계에서 일본 불교학자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 호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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