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평생 일관되게 강조하신 말씀은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이었다. 약 25년 간 시봉하며 누구보다도 옆에서 많은 날을 보낸 사촌동생이자 제자인 아난에게 부처님께서 석장과 바리를 손수 주시면서 당부하신 말씀도 “탐욕과 교만을 버리고 부처가 설한 법을 받아 정진(精進)으로 도행(道行)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염려되었던지 마지막 입멸에 드시면서 한 말씀 역시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그 값진 성취감을 맛볼 수 없고, 쉽게 이루어진 것은 또한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갖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우승한 사람들이나,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어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관람객은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직후의 이야기이다.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동행하던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대부분이 애통하여 통곡하는데, 한 스님이 기뻐하며 말했다고 한다.

“기쁘구나. 여래가 살아계실 때는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제 이런 준엄한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마하가섭은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부처님 다비가 끝나자 바로 경과 율을 정리하여 편찬하는 ‘결집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방종한 행동을 한 비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이 비구를 육군비구(六群比丘) 또는 악성비구로 분류한다. 이 비구는 정진과는 거리가 멀었는지 평소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해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방종한 행동이나 나태한 행동은 부지런히 정진함으로써 타파할 수 있다.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서는 부지런하지 못하여 게으름 피우는 자에게는 크게 다섯 가지 과보가 따른다고 설하고 있다.

첫째는 빈곤해져서 재물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둘째 나쁜 이름이 밖으로 널리 퍼지고, 셋째는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넷째는 사부중(四部衆)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섯째 모든 천인의 몸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보고 보시하고자 하는 선심(善心)을 일으켜야 적든 많든 보시하게 된다. 보시를 행하고 선근을 쌓아야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내세에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神文代)> 조에는 흥륜사 시주승이 읊은 게송이 있다. “시주가 보시하기를 좋아하니 천신이 항상 호지하고,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게 되고 안락장수 하게 된다.” 김대성은 이 게송을 듣고, 어렵게 얻은 소작의 밭을 시주하고, 부자집에 환생하여 훗날 불국사를 세우는 시주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진해야 하는가. 경에서는 우리의 생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念處〕를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가 있어서 사념처라고 한다.

첫째, 몸을 어떻게 닦아야 할까 이고, 둘째는 보고 듣고 느끼는 감수 작용을 관하는 것이다. 셋째는 마음의 문제를 관찰하는 것이고, 넷째는 세상에 존재하는 제법(諸法, 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몸에 대해서는 몸의 안쪽을 관찰하고 밖을 관찰하고 안팎을 관찰하여 무엇을 나라고 할 수 있는지, 무엇이 나의 것이지 알아보는 것이다. 나머지 감수 작용〔受〕, 마음〔心〕, 제법을 차례로 관찰하여, 무상하고 무아임을 알게 된다. 나아가 이런 법들이 자성이 없고, 얻을 만한 것이 없으며, 결국은 공함을 깨닫게 되며, 여기서 나아가면 마침내 실상을 보게 된다.

부지런히 정진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닦아야 한다. 지혜를 닦으면 우리의 생사고는 번뇌에서 생기는 것이요, 이러한 번뇌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르게 사유하고, 내지 바른 생각을 가져야만 소멸할 수 있다고 알게 된다. 곧 고제, 집제, 멸제, 도제의 도리를 바로 알게 된다.

또한 방일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부처님을 염해야 하고〔念佛〕, 법을 염해야 하며〔念法〕, 승가를 염해야 하고〔念僧〕, 계율을 염해야 하고〔念戒〕, 보시하여 버림을 염해야 하고〔念捨〕, 천상을 염해야〔念天〕 한다. 이러한 수행은 생각을 일심에 두어 그 대상을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상기하는 것이다. 여기에 입식출식(入息出息)의 숨을 염하고〔念出入息〕, 죽음에 대해서 염하는〔念死〕 것을 더해 팔념이라 한다.

항상 생각을 청정한 수행에 두고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야 하거니와 방일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13가지 과보가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 나태하고 방일해지면 세간의 잡다한 업 짓기를 좋아하고, 둘째, 쓸데없는 말하기 좋아하여 구업을 짓게 되고, 셋째, 잠자기 좋아하여 오래도록 잠자고, 넷째, 세상일을 말하기 좋아하여 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섯째, 항상 나쁜 친구들을 가까이하기를 좋아하고, 여섯째, 게으르고 느려서 일에 진척이 없고, 일곱째,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여덟째, 들은 이야기를 금방 잊어버리고, 아홉째, 항상 중심보다는 변두리에 있기를 좋아하고, 열째, 여러 근을〔諸根〕 조복하지 못하여 마음이 번거롭고, 열한째, 음식에 욕심이 그칠 줄 모르고, 열두째, 고요한 곳을 좋아하지 않고, 열셋째, 소견이 바르지 못하여 삿된 마음이 일어난다.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서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위신력으로 어렵지 않게 수행하고 정진하여 지혜를 계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되었으니 어떻게 우리가 방일하지 않도록 정진해 나아갈 것인가.

《대반열반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자 슬픔에 빠진 아난에게 천안제일 아나율 존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을 말씀이 아닌가 한다.

“부처님이 비록 열반하셨어도 사리(舍利)와 법보(法寶)가 세간에 있으므로 중생이 귀의할 곳이니, 우리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보(佛寶), 법보(法寶)로 중생을 제도하여 여래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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