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명, 계급, 법

한유(韓愈)의 도통설(道統說)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지었다고 하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옛날 복희(伏羲)씨가 왕이었을 때 매듭을 맺고 그물을 만들어 사냥을 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복희씨가 죽고 신농(神農)씨가 왕위를 이어서는 나무로 보습과 쟁기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고, 시장을 열어 백성들이 온갖 재화들을 사고팔 수 있게 하였다. 황제(黃帝)와 요ㆍ순(堯舜)은 나무를 파고 깎아 배와 노를 만들고 …… 소와 말을 길들여 무거운 것을 멀리 나를 수 있도록 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복희ㆍ신농ㆍ황제를 합쳐 삼황(三皇)이라고 한다. 요ㆍ순은 소호(少昊)ㆍ전욱(顓頊)ㆍ제곡(帝嚳)의 뒤를 이어 등극하였는데, 이들을 오제(五帝)라고 부른다. 이들 모두를 합쳐 중국인들은 삼황오제(三皇五帝)라고 부르며 인류를 문명사회로 이끈 성인으로 높이 추앙하였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은 이 삼황오제에 착안하여 자신을 황제(皇帝)라고 부르게 하였다. 자신의 공은 삼황오제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고 하면서 말이다.

삼황오제가 실존인물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에 이야기가 덧붙여져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은유이며 상징이다.

복희씨는 수렵·채집 시대를 상징한다. 그물을 만들어 새나 물고기를 잡아먹던 시절이니, 원시 구석기시대를 가리킨다. 보습과 쟁기를 만든 신농씨는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던 신석기 이후를 상징하고, 배와 수레를 만든 황제는 활발한 교역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문명시대를 나타낸다. 이런 역사적 성과를 한유는 오로지 성인의 공으로 돌리며, 유교적 지배질서를 정당화한다.

만약 옛날에 성인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왜 그런가? 인류는 깃털도, 비늘도, 단단한 껍질도 없이 차갑거나 뜨거운 곳에서 살아야만 했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이 먹이를 다투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란 명령을 내리는 자이고,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미치게 하는 자이다. 백성은 곡식과 옷감을 내고, 기물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윗사람을 섬기는 자이다.1)

명령을 내리는 자와 명령을 시행하는 자, 그리고 명령에 복종하는 자가 나뉜다. 계급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유에 의한다면 계급 질서는 성인이 인류를 위해 애쓴 노력의 결과이며 증거이다. 이렇게 문명을 성인의 공으로 돌려놓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주가 법령을 내지 않으면 그 군주됨을 잃게 되고, 신하가 군주의 명령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 신하됨을 잃게 되고, 백성이 곡식과 옷감을 내고 기물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그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곧 죽이는 것이다.2)

계급질서는 문명사회의 꽃이다. 한유에 의한다면 인류가 문명사회로 진입하며 나타나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다. 이로부터 노동에 대한 도덕적 당위성과 법률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노동하지 않거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백성은 죽일 수 있다. 당위이고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도덕적ㆍ법률적 근거가 허구이고 기망이라면 어떻게 되나?

2. 거대한 사기극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등, 고대의 거대한 조형물은 여전히 현대인을 압도한다. 아름답고, 신비롭고, 무한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대 유물들.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 마야, 잉카 등등……. 찬란한 고대 문명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찬탄을 보낸다. 그런데 이 모든 문화유산과 그것을 생산하고 유지해 온 질서가 사실상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한 젊은 학자가 있다. 그의 발칙한 말을 들어보자.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한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두뇌의 힘을 연료로 하는 진보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진화는 점점 더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해져서 자연의 비밀을 파악하고 양을 길들이며 밀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게 가능해지자마자 지겹고 위험하고 종종 스파르타처럼 가혹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농부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욱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수렵채집인은 농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동물과 채집하는 식물을 잘 알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는 대체로 수렵채집인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라는 이스라엘의 젊은 역사학자가 쓴 《사피엔스》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수렵채집인이란 사냥하고 열매를 주워 먹으며 살아가는 원시인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들이 농사지을 줄 몰라서 먹거리를 찾아 헤매며 고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유에 의한다면 원시인들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어 호랑이나 표범에게 먹히고, 털이나 깃이 없어 추위에 떨어야만 한다. 그나마 복희씨가 나타나 그물로 고기를 잡거나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주어 겨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존재들이다. 그런데 하라리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고, 오히려 농경생활을 하던 정착민이 훨씬 더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상식을 뒤엎는 젊은 학자의 천재성을 보는 것 같은데, 사실 아주 독창적인 것만은 아니다.

마침 유럽인이 이주해 들어가지 않았던 뉴홀랜드(New Holland) 지역 대부분에서는 지표면에서 담수가 항구적으로 제공되는 한 원주민들이 일 년 내내 풍부한 식량을 조달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사실상 그들의 식단은 계절에 따라 그리고 체류하는 지역의 동식물의 분포에 따라 변화한다. …… 대부분의 해안 지역과 내륙의 비교적 큰 강에는 어류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게 잡힌다. 빅토리아 호수에서는 600명의 원주민이 함께 야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당시 호수에서 잡히는 어류와 선인장, 국화잎 같은 것을 먹고 생활했다. 나는 그들이 캠프에 머무는 동안 부족함의 징후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 무른데(Moorunde)에서는 머래이 강이 연례적으로 범람할 때 약 400명의 원주민이 몇 주 동안이나 함께 먹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민물가재가 땅위로 올라왔는데 …… 12월 초순경이면 머래이 강에서 어류를 무한정으로 포획 가능하다. …… 대륙 동부 지역 원주민들이 선호하고 또 제철이면 앞의 어류만큼이나 풍부한 또 다른 식품 …… 양갓냉이의 우듬지, 잎, 줄기는 수많은 원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한정한 식량 공급원이다. 원주민에게는 내가 열거한 것만큼이나 풍부하고 가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식량도 많이 있다.

19세기 중반 호주에 잠시 체류했던 존 에드워드 아이어(J. E. Eyre)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이다.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의 《석기시대 경제학》에 나온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여러 기록을 살피고, 호주 원주민들의 생활을 실재로 관찰하며 쓴 이 책에서 살린스는 수렵채집인들이 문명인보다도 훨씬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여가를 즐기며 살았음을 밝힌다. 원주민 여자는 하루에 3일간의 식량을 채집하고는 집에서 자수를 놓거나 다른 집을 방문해서 놀며, 남자들은 1주일 동안 사냥한 뒤에 2~3주 동안 실컷 놀고먹는다는 것이다.

그 숲속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철저하게 향유하기 위해 마치 산책이나 소풍을 떠나듯 명랑하게 다른 장소를 향해 출발한다. 그들은 편리한 카누를 기술적으로 사용해서 여행을 하는데, …… 서둘러서 여행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거나 안달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3)

19세기 말 유럽인의 눈에 비친 호주 원주민의 생활모습이다. 수렵채집인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며 이리저리 떠도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산책이나 소풍을 가듯 먹을 곳을 찾아갔다. 바삐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유람하듯 천천히 갔다. 이들은 결코 서두르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연중 내내 바다가 모든 종류의 동물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그저 사냥하기만 하면 되고, 여성들은 그저 채집하기만 하면 된다. 폭풍이나 돌발 사고는 그중 일부를 단 며칠 동안만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도 굶주림에 처할 위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고, 모든 사람이 거의 모든 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한데 왜 미래의 식량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푸에고 주민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물자를 쌓아두지 않는다. 그들은 한 해 한 해 살아오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4)

호주의 원주민들은 언제 어디에 가면 물고기들이 많이 올라오고, 또 어디에는 달콤한 열매가 충분히 익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날 사냥하고 채집한 먹거리를 아낌없이 먹어치운다. 어쩌다가 큰 동물이라도 잡게 되면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초대하여 흥겨운 잔치를 벌인다.

원주민들은 우리가 겪은 기근 동안에도 두서너 마리의 해리를 포획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즉시 이웃 주민을 초청해서 향연을 베푼다. 그리고 접대를 받는 측에서도 무엇인가 포획했다면 그들도 동시에 잔치를 연다. 그래서 한 향연에서 또 다른 향연 장소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즐기는데, 어떤 때는 한꺼번에 서너 번의 향연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5)

하지만 어떻게 즐거운 일만 있겠는가. 이 글을 쓴 르준(LeJeune)의 말처럼 “성공적으로 사냥하는 경우보다 바람맞고 추위에 떨다 허탕만 치는 경우가 더 흔”했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길에 폭우를 만나 고생할 수도 있고, 비가 계속 내려 며칠을 굶을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저장이란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 수렵채집인들은 저장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내게 “식량이 부족해서 가끔은 2~3일간 굶어야 할 때도 있어요. 용기를 내세요! 괴로움과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당신의 영혼을 강하게 하고 슬퍼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날 겁니다. 먹을 게 거의 없는데도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우리를 보세요!”라고 말했다.6)

잔치를 그만 즐기고 내일을 위해 저장하라는 충고에 대해 그들은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라며 말한다. “내일 우리가 잡은 동물로 또 다시 잔치를 할 것”7)이라고. “오늘 아침의 즐거움을 만끽할 뿐, 내일 일은 내 알 바 아니지.”8)라고 노래했던 이는 도연명(陶淵明)이었던가. 도연명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여유와 풍요를 원시인들은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도연명은 애써 스스로를 상고시대 사람이라고 자처했으니 말이다.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부귀를 욕심내지 않는다. 한 잔 술에 시 한 수 지으며 그 마음 즐거워하니 먼 상고적 사람이리라.

도연명이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부르며 지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하는 말이다. 도연명은 욕심내지 않고 오늘을 즐거워하며 사는 모습을 상고시대 원시인들에게 빗대며 이상으로 삼았는데, 살린스와 하라리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약 1만 년 전까지 이 유인원(호모 사피엔스)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0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밀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밀은 다른 식물과 공간, 물, 영양분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온종일 잡초를 뽑는 노동을 했다. 밀은 병이 들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해충과 마름병을 조심해야 했다. 밀은 자신을 즐겨 먹는 토끼와 메뚜기 떼에 대한 방어책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이를 막아야 했다. 밀은 목이 말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샘가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댔다. 밀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밀이 자라는 땅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동물의 변을 모아야했다.

사피엔스의 신체는 이런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기어오르고 가젤을 뛰어서 뒤쫓는 데 적응했지, 바위를 제거하고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데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인간의 척추와 무릎, 목과 발바닥의 장심이 대가를 치렀다. 고대 유물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 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길들이다, 가축화하다’라는 뜻의 단어 ‘domesticate’는 ‘집’이란 뜻의 라틴어 ‘domus’가 어원이다. 집에서 사는 존재는 누구인가? 밀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다.
9)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며 인류는 힘든 노동과 새로운 질병을 감수하여야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곡식을 재배한 것인데, 사실은 인간이 밀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한다. 설마 진짜로 밀이 사람을 길들였을까만, 만약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여긴다면 분명히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요 임금이 재위에 올라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흘렀다. 정착하여 농사를 지은 지는 까마득하게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이미 문자와 화폐를 통용하고 있었다. 임금은 자신이 과연 정치를 잘 하는지 알고 싶어 평민 차림으로 민가에 내려갔다. 마침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노라.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는데, 임금의 힘이 어찌 내게 미치랴.

유명한 〈격양가(擊壤歌)〉이다. 밭에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고르기 위해 큼지막한 흙덩어리를 깨며 부르는 노래로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노래대로라면 노인은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와 쉰다. 중간에 잠깐의 휴식시간이야 있겠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일한다. 사는 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평생을 그 땅에 매여 살면서도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있다.

〈격양가〉는 위진시대(魏晉時代)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이 쓴 《제왕세기(帝王世紀)》란 책에 실려 있는데, 위작(僞作)으로 밝혀진 지 오래되었다.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이다. 물론 위작이라고 해서 역사성이나 철학적 의미마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황보밀로부터 500여 년의 세월이 지나 한유는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성군으로 요 임금을 도통연원의 수장(首長) 자리에 올려놓는다.

3. 진실, 피할 수 없는 덫

기원전 1만 3000년경, 사람들이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먹고살던 시기에 팔레스타인의 여리고 오아시스 주변이 지탱할 수 있는 인구는 기껏해야 100명 정도의 건강하고 영양 상태가 비교적 좋은 방랑자들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8500년 야생식물이 밀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이 오아시스에는 1000명이 사는 마을이 생겼다. 마을은 크지만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허덕였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 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은 그 DNA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된다. 만일 더 이상의 DNA 복사본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종은 멸종한 것이다. 돈이 없는 회사가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한 종이 많은 DNA 복사본을 뽐낸다면 그것은 성공이며 그 종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000벌의 복사본은 언제나 100벌의 복사본보다 좋다.

농업혁명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10)

농업혁명은 인구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생산력의 증대는 가용인구의 수를 늘렸고, 인구 증가는 다시 생산력을 늘리는 순환구조가 시작되었다. 늘어난 인구만큼 큰 도시가 세워지고, 쌓여지는 부만큼 막강한 힘을 지닌 권력자가 등장했다. 생산물은 개인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왕의 권력과 지배 계급의 권위를 뽐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제왕을 위한 거대한 무덤과 화려한 궁전이 지어지고, 귀족들은 호화스런 사치를 누렸다. 피라미드와 진시황릉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고대문명이 찬란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노동하고 일찍이 보지 못했던 질병에 시달렸다. 농업혁명 이전 수렵채집인들이 누렸던 풍요와 여유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구에는 많은 동·식물이 사라지고 불행한 인간이 바글대기 시작하였다. 비극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 -----
1) 한유(韓愈), 〈원도(原道)〉.
2) 위의 책.
3) 마셜 살린스, 《석기시대 경제학》.
4) 위의 책.
5) 위의 책.
6) 위의 책.
7) 위의 책.
8) 도잠(陶潛), 〈사천(斜川)에서 놀다〉.
9)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0) 위의 책.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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