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황복사지 출토 금동불입상 및 보살상.

신라 왕실 사원으로 추정돼온 경주 황복사(皇福寺) 옛터에서 사격을 보여주는 유물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1월 31일 보도자료를 내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이 지난해 8월부터 발굴조사하고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 경작지에서 신라 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와 대석단(大石壇) 기단 건물지, 부속 건물지,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대규모 유구와 금동불입상, 금동보살입상 등 10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복사는 진덕여왕 8년(654) 의상 스님이 출가한 사찰이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금동사리함(舍利函) 명문에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라는 표현이 있어 그동안 신라 왕실의 종묘 기능을 한 왕실사원일 것으로 추정돼 왔다.

발굴조사 결과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황복사의 사격을 잘 보여주는 건물지로 평가됐다. 동·남쪽 면에는 돌을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구축한 후 전면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설치했다.

▲ 경주 황복사지 대석단 건물지 중앙계단. <사진=문화재청>

이 건물지는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 회랑을 돌린 독특한 구조다. 이런 구조는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이 건물지가 신라 왕실의 종묘 기능을 담당한 특수 용도의 건물이거나 황복사지의 중심 전각일 것으로 판단했다.

토끼(卯), 뱀(巳), 말(午), 양(未) 등 십이지신상 4구를 새긴 석재를 불규칙한 간격으로 배치한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도 주목할 만하다. 이 건물지는 그동안 황복사 금당지로 추정돼 왔다.

이번에 발견된 십이지신상 4구는 1928년 노세 우시조(能勢丑三)가 처음 확인했으나 발굴조사 후 다시 묻은 것이다. 이후 1968년 신라삼산오악조사단이 시굴 조사 때 돼지(亥), 쥐(子), 소(丑), 토끼, 뱀, 말, 양 등 7점과 상반신이 파손된 1점 등 8점이 확인했으며, 1982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조사할 때 6점을 재확인한 바 있다.

▲ 경주 황복사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십이지신상 중 토끼. <사진=문화재청>

세 번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십이지신상의 성격을 온전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탑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처럼 불교건축물 기단 축조용으로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해 왔으나 이번 발굴조사에서 십이지신상 앞면 형태가 평면이 아니라 완만한 호형(弧形)임이 밝혀져 왕릉에서 사용한 탱석을 재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당초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 130m 가량 떨어지는 추정 왕릉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짐작했지만 황복사지 십이지신상이 왕릉지 것보다 높아 다른 왕릉에서 옮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추정 왕릉지는 그동안 황복사 초기 목탑지라거나 신문왕릉, 또는 성덕왕비 소덕왕후, 효성왕비 해명부인 김씨, 민애왕릉 등으로 비정돼 왔다. 이번 발굴조사를 담당한 성림문화재연구원은 효소왕의 가릉으로 추정했다.

낭산 서편에 있는 능지탑 쥐상도 황복사지 십이지신상과 조각 수법이나 복장이 닮아 추정 왕릉지에서 옮겨간 호랑이(寅)상으로 추정한다. 개(戌)상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밖에 용(辰), 원숭이(申), 닭(酉) 등 3구는 아직 미확인 상태다.

황복사지 십이지신상은 평복을 한 모습이다. S자형 허리, 왼손을 옷 속에 넣어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은 점, 부정형의 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 등이 특징이다. 황복사지 십이지신상은 조각미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김유신묘 십이지신상에 견줄만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도상으로 미루어 볼 때 김유신묘와 헌덕왕릉 십이지신상보다 앞선 8세기 중·후반 작품으로 추정한다.

황복사지의 가람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발굴조사 결과 황복사지는 산지 지형에 맞게 계단식 동서향으로 조영됐다. 또 삼층석탑을 가장 윗부분 중심에 배치하고, 동편 아래쪽에 추정 금당지를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식 당탑 가람배치와는 다른 형태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3차 발굴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사역과 건물 배치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탑의 위치가 금당보다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탑이 별도의 공간을 점유한 것으로 보아 동당서탑 배치형식의 탑원식 가람”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람배치는 경주 나원리 사지와 창림사지에서도 확인된다.

방형 연못지도 주목할 만하다. 구품연지로 추정되는 연못은 이후에 조성된 불국사의 조형을 추정해 볼 수 있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와 방형 연못지 등에서 발굴된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7점은 황복사가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신라 왕실사원으로 유지됐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황복사지에서는 1942년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이 발견된 바 있다.

이밖에 출토 유물 1000여 점은 대부분 7~9세기 토기와 기와이다. 장식이 화려한 금동 반구형 장식, 신장상 화상석, 치미, 당초문 장식 비편, 장식 기와 등은 황복사지 전각의 품격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또 황복사지가 있는 낭산 동쪽지역(지금의 보문동)이 계획도시였음을 확인했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확인된 건물 배치나 도로 등을 볼 때, 낭산의 동쪽은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하는 방리제(坊里制)에 따라 건설된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황복사지의 실체를 규명하고 유적을 보존·정비하기 위해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일대 과수원과 경작지 4628㎡를 대상으로 1차 발굴을 진행했다. 그 결과 효성왕(재위 737~742)을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완성 왕릉과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담장, 배수로, 도로 등의 유구를 확인하고, 막새, 기와, 전돌, 등잔 등 약 4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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