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명 스님 역 《능엄경정맥소》.

“전승에 의존해 온 선 수행의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할 때, 드라마틱한 선법(禪法)의 심화 텍스트로 적합하다.”

명나라 말 교광 진감 스님이 《능엄경》을 주해해 만력 28년(1600)에 펴낸 《능엄경정맥소》(이하 정맥소) 완역본이 수좌 진명 스님의 1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불광출판사에서 발간됐다. 우리나라 첫 완역본이다.

진명 스님은 부산 개심사 보현선원에서 결제하던 중, 그전부터 읽어오던 진감 선사의 《정맥소》를 방선 시간에 틈틈이 번역하기 시작했다. 진명 스님은 “선방 수행 중 간경의 힘이 부쳐 자유를 갈망하던 9년 전부터 도해와 도표를 그려가며 꼼꼼히 해석했다”며, “《능엄경》에 대한 이전 주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물론, 천태교학의 지관법까지 포괄한 《정맥소》를 접하며, 번역 기간 내내 선사들의 밝은 눈을 가까이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능엄경》의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이다. 흔히 《수능엄경》, 《대불정수능엄경》이라 줄여 부른다. 경 이름을 풀이하면 ‘더없이 훌륭한〔大佛頂〕여래의 비밀방편으로〔如來密因〕 닦고 증득하는〔修證了義〕 가지가지 만행을 통해〔諸菩薩萬行〕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본래 모습인 여래장 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 곧 首楞嚴〕을 완전히 드러내게 하는 가르침〔經〕’이라는 의미이다. 간략히 ‘무한히 큰 절대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되기 위해 닦는 보살들의 완전무결하고 견고한 육도만행 수행법을 설한 경’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능엄경》은 8세기 초 한문으로 번역된 이래 가장 많은 주석이 나온 경전이다. 《정맥소》를 지은 진감 스님은 이전까지 나온 《능엄경》 주석서의 미진함을 통탄하고 새로운 소(疏)를 쓰고자 발심 출가했다. 진감 스님은 출가한 후 20여 년 동안 오로지 《능엄경》을 주석하는 일에만 매진해, 이 소 하나만을 저술로 남겼다. 다른 주석가들이 여러 교학의 틀로 《능엄경》을 해석했다면, 진감 스님은 오로지 경의 맥락에 의지하여 해석했다. 진감 스님이 소의 이름을 ‘정맥(正脈)’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 《능엄경정맥소》 완역자 진명 스님.

진명 스님은 “유학자였지만 《능엄경》 주석서를 쓰기 위해 출가한 진감 선사는 명나라 당시 가장 널리 유통되던 《능엄경》 주석서인 《십가회해(十家會解)》〔일명 구해(舊解)〕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정맥소》를 펴냈다”면서 “《정맥소》를 통해 유식과 중관, 여래장 사상 등 대승의 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문의 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관점을 세웠다”고 말했다.

경전의 경구를 논리적으로 놓치지 않고, 사마타수행부터 삼마제, 선나의 경지까지 해설한 진감 선사의 《정맥소》는 분량이 방대해 그간 일반인은 물론 스님들도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진명 스님이 번역한 《정맥소》는 국내 첫 완역본으로 그만큼 의의가 크다.

《정맥소》는 “어째서 화두선을 최상승선이라 이름 하는가”, “많은 불교 수행체계 중에서 왜 화두선만을 고집하는가”에 대해 대승요의(大乘了義)에 바탕해 화두선에 대한 철학적, 교학적 입지를 제시한다. 흔히 《정맥소》를 선 수행과 화두 참구에 대한 교학적인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책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맥소》 완역은 우리나라 선종의 수행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다.

《능엄경》은 신라 말기에 선법이 도입된 뒤 당에서 돌아온 유학승이 전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능엄경》은 불교의 철리(哲理)와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경전이므로 선가에서뿐만 아니라 교가에서도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한국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전 중 하나다.

수많은 선승과 교학승들이 《능엄경》을 연구했고, 후학들에게 전수했다. 한국불교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이 경은 《원각경》, 《금강경》, 《기신론》과 함께 불교 강원의 4교과로 쓰였다. 대교과를 마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경전이다.

근·현대에 들어 《능엄경》 강의와 해설서도 줄이었는데, 대부분 《정맥소》를 근간에 두고 있다. 대강백 운허 스님은 《능엄경 강화》에서 《정맥소》를 풀이해 설명했고, 각성 스님은 《능엄경정해》에서 《정맥소》를 바탕으로 《능엄경》을 강설했다. 탄허 스님은 《능엄경》을 번역하면서 《정맥소》를 일부 풀이했으며, 현진 스님은 《정맥소》 번역했지만 일부에 그쳤다.

《정맥소》가 4권으로 완역되면서 일반인들의 《능엄경》 이해도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옮긴이 진명 스님은 10여 년간 《정맥소》 번역에 매진하면서도 해운정사를 비롯해 봉암사, 대승사, 송광사 등 제방 선원과 봉암사 백운암, 미황사 토굴, 태백산 도솔암 등지에서 안거 수행을 병행했다.

불광출판사 | 4권 1세트 | 2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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