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기업, 종교단체등에서는 신년하례식을 가진다. 매년 열리는 신년하례는 그 기관이나 단체 구성원들이 서로 한자리에 모여 새해 인사를 나누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해를 성찰하고 새해에는 어떤 각오로 정진을 할 것인가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한불교조계종이 1월 8일 대구 동화사에서 신년하례법회를 열었다.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는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자비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갈등과 대립, 분쟁과 전쟁이 소멸하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이루기 위해 참선수행으로 정진하자”고 강조하였다. 또한 설정 총무원장은 “나라가 환희청정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하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널리 퍼져나가는 공덕이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참선수행으로 정진하자”거나,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널리 퍼져나가길 기원한다”는 이야기는 신년하례가 의례적인 덕담을 나누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볼 때는 가장 무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한국불교와 조계종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신년하례에서 그러한 의례적인 덕담을 한 설정원장도, 불과 두 달여 전인 2017년 11월 1일 취임사에서 조계종단과 한국불교는 많은 과제를 앞에 두고 있고, 종도와 불교인들이 종도로서 불제자로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으므로, 수행과 승풍진작을 통해 불교를 불교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설정원장이 총무원장에 취임한 지 두 달 남짓한 사이에 수행과 승풍진작이 되고, 그 결과로 한국불교의 많은 난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 터인데, 신년하례에서 그러한 상황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널리 퍼지길 기원한다는 의례적인 수사만을 언급한 것은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에 불과하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언급해도 여전히 많은 종도와 불교인들이, 종단 지도부의 비위와 파계 행위로 인해 종도로서 불제자로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임제선사는 “깊은 산중의 암자에서 홀로 지내며 오전에 한끼의 식사만 하면서 계율을 잘 지키고, 언제나 좌선하며 옆으로 누워 쉬지도 않고, 매일 여섯 번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는 여법한 수행을 할지라도 모두 다 죄업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행이라는 형식에 집착하고, 나는 출가한 사람이라는 자만에 갇혀 있는 분별의식을 경계한 말이다.

그런데 비록 죄업을 짓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수행정진을 하지는 못할망정 공개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본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깔끔하게 소명하겠다”고 공언을 한 수행자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운운하는 것은 진정한 출가인라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임제선사는 “삿된 마음으로 불문에 들어 와 곳곳에서 시끄럽게 하니, 이들을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바로 이런 자들이야말로 정말 세속인”이라고 단언하셨다.

진제종정예하는 신년하례에서 정법안장을 잡아야 천하총림에 불조가풍을 떨친다고 하셨다. 천하총림이라고 하면 우선은 우리가 현실을 살고 있는 지구촌을 이야기할 것이다. 즉 이 사바세계에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풍을 널리 알리는 길은 정법안장을 잡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 정법안장은 수행에 집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향한 보살행과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는 것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신년하례의 뜻이며 천하총림에 불조가풍을 떨치는 길인 것이다. 그 시작은 설정원장 본인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참慙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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