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1일 열린 ‘범불교 결집대회’에 참석한 불자들이 조계종 총무원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조선의 문맹률은 99%, 일제 강점기에는 74%, 현대 한국은 4% 남짓이라는 보고가 있다. 조선 현종 때 한성(서울)의 인구가 약 20만 명, 전국 팔도 인구가 300만 명 정도라 한다. 그러므로 추측컨대 글을 알고 문자로 의사소통하는 이가 서울에 약 2000명, 전국적으로 3만 명 정도가 될 것이다. 아마도 3만 명 정도가 사회를 움직이고, 상소를 하거나 서원·향교를 통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유학을 종(宗)으로 삼는 양반, 그중에도 남성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조선과 비슷한 봉건국가이지만 땅이 넓고 사람도 비교할 수 없이 많으니 문맹률이 비슷했다 하더라도 인재풀은 더욱 많고 다양했을 것이다. 수와 양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조선이 개국 이래 500년 동안 중국을 사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이런 구조적으로 불리한 점을 극복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았을까?

적은 인구라도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신분제도를 느슨하게 하여 능력에 따라 사회 참여 기회를 늘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는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점점 엄격한 유교국가로 변화하면서 상하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선의 지배층은 개국 초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지속하지 못했다. 우수한 정신문화와 기록유산을 가졌음에도 무능하고 부패했던 유자(儒子)들은 결국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맥없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조선은 지배층 내에서도 사상통제가 심했는데, 그것을 위해 악용된 것이 바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것이다. ‘사문난적’은 ‘글을 어지럽히고 진리를 혼란케 하는 적과 같은 종자’라는 뜻이다. 종교에서는 이른바 이단(異端)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과 교조적 유교사회의 모순을 개혁하려고 노력하거나, 청나라를 통해 조금씩 들어온 외국문물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거나, 이미 교조화된 천 년 전 주자(朱熹)의 말씀에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표현한다면 바로 사문난적으로 매도되고, 사회적 매장이라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사문난적은 글을 아는 유자들 중에서도 소수 지배층의 권력을 견고히 하려고 사상을 통제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악용된 것이다.

한줌도 안 되는 소수의 지식인 집단이, 그것도 내 편 네 편 가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킨다면 그 사회가 어찌 발전하며 동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결과는 파멸뿐일 것이다. 결국 500년 동안 정신과 사회를 통제하던 거대한 유교는 개화와 함께 초라하게 사라질 것이라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돌이켜 보면 사문난적으로 내몰았던 그들이 옳지 않았으며, 사문난적이 되었던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구구절절 이런 과거의 예를 드는 것 우리 불교계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인구가 300만 명 줄었다고 한다. 나는 주위에 불자라고 할 수 있는 청·장년층을 보기 힘들 정도로 불교인구가 줄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지금 현재 불교를 이끌어 갈 스님과 불교지식인이 3만 명이 되겠는가. 현재 불교가 처한 모습이 과거 조선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에서도 조계종단 지도부는 잘못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뜻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해종언론, 해종단체, 이교도라는 해괴한 이름을 덮어씌워 배척하고 억압한다. 이들이 현대 불교의 사문난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조선의 소수 지배층이 비판·개혁세력을 사문난적으로 매도한 것에는 이론적 바탕이라도 있었지만 조계종단이 비판·개혁세력을 사문난적으로 덮어씌운 것에는 어떠한 합리적 근거나 배경도 찾기 힘들다. 그들이 사문난적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은 승가 그리고 조계종단이 아니던가.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조계종단을 비판하고 개혁을 부르짖겠는가.

불교계는 2년이 넘게 겨울이 지속되고 있다. 조계종단이 그 혼란과 비판의 원인을 개선하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자신을 비판하거나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배척한다면 앞으로 불교계에 무슨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현재 불교계의 진정한 사문난적은 누구인가? 정상적 사고를 가진 이라면 그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2018년 새해에는 모든 묵었던 갈등과 혼란을 종식하고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불교계가 되길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한다. 그리고 불교계의 사문난적으로 불리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와 존경의 마음을 올린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불보살님의 가피가 두루 하시길 기원한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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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 배종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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