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민 스님.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장에 세민 스님이 선출됐다.

조계종 원로회의는 11월 27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대회의실에서 ‘제57차 원로회의’를 열어 신임 원로의장에 세민 스님을 선출했다. 수석 부의장에는 대원 스님, 차석 부의장에는 원경 스님을 각각 선출했다.

이날 원로회의에는 종하(원로의장)·암도·세민(이상 부의장)·월파·월탄·정관·정련·지성·대원·성파·성우·원경·무산·성타·지하·보선·법타·철웅 스님 등 18명이 참석했다. 종산·월주·인환·근일 스님은 불참했다.

이날 원로회의는 비공개 회의로 진행됐다. 원로의장 선출의 건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한 결과 세민 스님 9표, 정련 스님 7표, 월탄 스님은 1표를 얻었다. 원로회의 참석 원로 18명 중 무산 오현 스님은 원로의장 선출 과정에서 중도 퇴장해 투표에는 17명이 참여했다. 신임 원로의원 선출은 차기 회의로 이월됐다.

세민 스님은 지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승가대학을 마치고 일본 교토불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8~10대 중앙종회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동국대 선학과 강사, 조계사·경국사·선암사·해인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원로의원에 선출됐고, 2014년 1월 8일 대종사 법계를 품서했다.

수석 부의장 대원 스님은 상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8년 고암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2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고봉, 성능, 호경, 혼해 스님 등 당대 강백에게 교학을 배웠다. 상원사, 망월사, 동화사, 김룡사, 범어사, 칠불암, 통도사 극락암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했다.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선지식들의 지도를 받았다. 1973년 조계종 종정 고암 스님에게 학산(鶴山)이란 법호와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현재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이다.

차석부의장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아들’로 유명하다. 정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용화사에서 전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3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0년 용화선원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26안거를 성만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수료했으며, 제10대 중앙종회의원과 흥왕사, 청룡사, 신륵사 주지, 경기도지방경찰청 경승을 역임했다. 현재 만기사 주지이다.

세민 스님의 원로의장 선출은 서의현, 자승 두 전 총무원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련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 인준에 부결표를 던진 원로의원 7명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설정 원장을 지지한 자승 전 총무원장이나 설정 총무원장 모두 정련 스님이 원로의장에 선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세민 스님이 원로의장에 선출됐지만, 향후 원로회의 운영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의현 전 총무원장과의 깊은 인연은 물론 ‘천도재’를 내세운 사찰 운영이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 원로의원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또 세민 스님을 지지할 것으로 분석됐던 몇몇 원로의원이 이날 회의에 불참했고, 정련 스님을 지지할 것으로 관측된 원로의원도 불참했다. 여기에 원로회의에 참석했던 무산 스님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민 스님에게 적극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원로회의가 설정 총무원장 당선자 인준과 원로의장 선출 과정에서 양분됐다는 분석이다. 세민 스님이 원로의장에 선출됐지만, 설정 총무원장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로회의에서 법랍이 비교적 낮은 세민 스님이 원로의장을 맡게 되면서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 이 기사는 제휴 매체인 <불교닷컴>이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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