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이 각각의 병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전체를 뭉뚱그려 간(揀)하는 것과는 달리 혜심의 《간병론(揀病論)》에는 각각의 병에 대한 간이 구체적으로 딸려있다.1) 혜심이 《간병론》에서 표방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간화선에 대한 이론적인 토대이며, 나머지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론이다. 혜심의 선적 태도는 《간병론》 전반부에서 선사들의 게송을 인용함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다음 《간병론》 후반부에서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그의 선적 태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2)

혜심에 의하면 10종의 병통은 간략하게 말하면 유심(有心)․무심(無心)․언어(言語)․적묵(寂黙)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유심으로도 구할 수 없고 무심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언어를 통해 다가갈 수도 없고, 침묵만 지킨다고 해서 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혜심에 의하면 이 4종병은 다시 사의(思義)․부사의(不思義)의 2종병으로 줄여서도 설명된다. 즉 평상시에 자신의 의식을 지배했던 것들을 제거하여 결코 허용하지 않아서, 사고와 논리로 따져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는 경계, 마음으로 헤아릴 길이 아주 끊어진 경계, 전혀 맛을 느낄 수 없는 경계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3)

혜심에 의하면 불성의 유와 무에 천착하는 자들은 조주의 구자무불성, 더 나아가서 간화선의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조주가 유와 무라는 언어를 사용함은 본분의 작용을 어떤 상황에서나 열어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혜심이 표방하는 바의 10종병은 사실상 하나로 귀일된다. 그것은 의심하라는 것이다. 물론 혜심의 경우 유와 무와 언어와 경론은 그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본래면목이 하나의 정해진 해답으로 굳혀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에 불과하며, 본래면목을 현전(現前)시키는 도구이다. 다시 말해서 유와 무와 언어와 경론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도구적 기능을 다함으로서 그것들의 시효는 끝이 난다. 결국 혜심 선의 요체는 10종병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10종병 하나하나에 대하여, 또 다시 화두를 의심하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혜심의 간화선사로서의 특징은, 그가 《간병론》 후반부에서 10종병에 대해서 지눌보다 상세하게 간한 부분에서, 십종병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해 주는 분별적인 친절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4)

혜심의 의단(疑團)을 주요한 방법으로 하는 간화선적인 견해에 의하면, 비록 선지식의 언구라 할지라도 그것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태도는 사마외도가 된다. 사실 한국 선불교에서 의단을 혜심만큼 선의 중요한 방법으로 간주했던 이가 이전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의심을 무자화두와 연계해서 화두의 중요한 핵심으로 파악하고, 이후 공부법으로 정착되게 만든 것은 혜심의 공이 아주 크다. 즉 그가 《간병론》에서 간화십종병에 대해서 친절하게 주각(註脚)을 달아 주었기 때문에 간화선사인 것이 아니라, 의단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준 데에 간화선사로서의 특징이 있는 것이다.5)

지금까지 논구했듯이 혜심의 선법은 지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혜심은 지눌의 간화선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고도 본격적인 간화선풍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양했다. 당연하게도 혜심의 선풍은 지눌의 선법이 조사선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것에 비하여 조사선의 정신에 아주 부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간화선의 맥락은 지눌보다는 오히려 혜심에게로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 진원지가 표방하는 바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우리나라 간화선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혜심이 된다.

필자의 첫 번째 문제 제기는 ‘지눌’과 ‘간화선’의 관계에 대하여서였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구하였다. 즉 지눌은 한국에 간화선을 도입하고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간화선을 돈오점수와 선교일치로 대표되는 그의 선법을 보강하는 좋은 재료로 여겼을 뿐, 말년의 저작들을 통하여, 초년의 오류들을 반성하고 수정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간화선을 도입한 이후에도 지눌은 자기 선법의 독창적이고도 본질적인 내용을 고수했다. 지눌은 간화선 일변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상가가 아니며, 보다 더 종합적이며 독창적이어서, 한국불교 사상사에서 중국의 영향을 벗어난 독자적인 선사상을 일으킨 거의 유일한 존재이다.

필자의 두 번째 문제 제기는 ‘지눌’과 ‘혜심’의 관계에 대하여서였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구하였다. 혜심은 지눌의 간화선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고도 본격적인, 중국의 조사선이나 간화선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의 간화선풍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양했다. 따라서 간화선 진원지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한국 간화선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혜심이다.

필자의 세 번째 문제 제기는 ‘한국적’과 ‘간화선’ 사이의 함수 관계에 대해서였다. 앞에서 이미 논구했듯이 구산의 모든 산문은 남종선, 즉 조사선을 그 원류로 한다. 그렇지만 구산선문은 중국과는 달리 조사선을 화엄불교에 바탕을 두고 수용하고 전개하는 가풍을 가지고 있었다. 조사선을 중심으로 선과 교를 아우르는, 심지어는 선의 여러 가지 다른 가풍들마저도 수용하는 융화의 특징은 이후 간화선이 도입된 후 고려나 조선, 그리고 현대 한국불교에도 계속 이어져 가는 한국불교만의 독특한 선풍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국불교의 가풍을 전제로 한 ‘간화선의 한국적 현장성’을 주장한다면, 지눌은 한국불교사상사에서 독창적인 해석을 통하여 ‘한국적 간화선’을 일으킨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반면 혜심의 보다 중국적인 간화선정신에 접근하고 있는 선적 사유체계는 독보적이고 종합적인 지눌 선법의 물길을 간화선 일변으로만 협애하게 돌린 선사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6)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 ‘간화선의 본래적 정체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보다 정통의 자리에 매김할 수 있는 선사는 지눌이 아니라 혜심이다. 혜심은 정확한 안목으로 본래의 정신에 걸 맞는 간화선풍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고양한 선사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지눌의 선은 겉으로는 마조, 황벽, 임제, 대혜의 ‘돈오돈수적 공안선’을 잇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돈오점수적 화엄선’을 신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7) 물론 이 문제에 대하여서 지눌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저간의 의도는 복잡하지만, 뒤에 공부하는 이들이, 한편으로는 지눌을 오해하여서 그의 선법을 간화선 안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간화선을 오해하여서 지눌의 선법을 간화선으로 이해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가지 점에서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첫째, 간화선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해결책이 있다. 하나는 간화선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즉 일부에서 보이고 있는 간화선에 대한 지나친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지눌과 혜심의 선적 사유체계를 모두 간화선으로 인정한다. 이를 통하여 ‘한국적 간화선’에 대한 이해를 보다 폭넓게 가짐과 동시에 간화선의 정체성에 대하여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현장성을 가미하고 새로운 정의를 하는 것이다. 이때 물론 하나의 간화선에 두 개의 선맥이 있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간화선과 지눌 선법 각각의 독자성을 인정하여 보조선과 간화선을 상호 분리시키는 것이다. 두 선법이 서로 독립하여 선적 사유체계를 연구하고 수행하며 정립하게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보조선’과 ‘간화선’을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선법으로 정립하게 하면 된다.

둘째, 정직성과 투명성을 담보한다는 전제 아래 한국선에 대하여 자의적이고 종파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눌의 선이 보조선이라는 독립적인 용어로 불릴 만큼 종합적이고 독창적이라 하더라도, 본래적인 의미의 간화선 정신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교계는 고려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관하여 지나칠 만큼 자의적이거나 종파적으로 해석해왔다. 따라서 미래의 한국선은, 위에서 제시된 두 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그 저변에 흐르는 두 개의 선맥을 모두 인정하고, 그 선맥의 독자성을 상호 존중함과 동시에 투명하고 정직한 입장에서 서로 비판하고 경쟁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장이 거침없이 오고가며 어울리는 가운데 한국 선의 가풍이 완성될 것이다.

셋째, 상호보완적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지눌과 혜심에서 시작되어 전개되어 온 각각의 선법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유체계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경지론(境地論)이나 법통론(法統論)에로의 치달음을 지양하고, 두 선법 사이의 생산적인 논쟁 등을 거치면서 독립적이고도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질 수만 있다면, 두 선사의 사유체계는 가장 이상적인 수증방법론으로서 상호보완적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운영의 묘를 제대로만 살린다면 현대 한국불교의 사상적 수준을 여러 단계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주) -----
1) 《간병론》에 대한 구체적인 논구는 지면의 부족으로 생략한다. 자세한 논증은 다음을 참고. 졸고(拙稿), <간화선의 ‘구자무불성’에 대한 일고찰>
2) 위의 논문, p.214
3) 위의 논문, p.225
4) 위의 논문, p.226
5) 위의 논문, p.227
6) 위의 논문, p.229
7) 박성배,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하여>, 《한국사상과 불교》(서울: 혜안, 2009), p.334

이덕진 |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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