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취암 영삼(翠巖 令參, ?∼?)

명주 취암의 영삼 영명(永明) 선사는 길주 사람으로 보복 종전(保福 從展), 장경 혜릉(長慶 慧稜), 운문 문언(雲門 文偃)과 함께 설봉 의존의 법사(法嗣)이다. 취암 선사의 전기는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농책(籠冊)에 돌아와 입적했다는 사실만 전할 뿐이다. 그 외에는 다음의 학인접득 모습 이외는 달리 전하는 게 없다.

어느 날 한 중이 물었다. “세치〔三寸〕를 빌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는 “다당(茶堂)으로 폄박(貶剝)하고 가라.”했다. 중이 또 물었다.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부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취암 선사는 “사람을 억핍(抑逼)해서 무엇 하겠는가.”하고 대답했다. 중이 또 물었다. “대체로 언구가 있으면 남김없이 점오(点汚)하라 했는데 향상사(向上事, 불도의 궁극의 종지)란 어떤 것입니까?” 선사는 “대체로 언구가 있으면 남김없이 점오하라.”고 했다. 중이 또 묻기를 “성요(省要)란 어떤 것입니까?” 하니 “대중이 그대를 보고 비웃는다.”고 선사가 답했다.

중이 또 묻기를 “환단일립(還丹一粒, 신선이 비밀리 전하는 묘약)으로 쇠를 황금이 되게 한다고 합니다. 스님의 훌륭한 한마디가 범부를 성인이 되게 하므로 학인들이 몰려와 선사의 일점을 청하게 됩니까?” 선사가 이르시길 “그대가 범부가 될까 두렵다.”하니 “선사의 지덕을 바라겠습니다.”하고 중이 말했다. 선사는 곧 시자에게 “차를 점해 오라.”하였다.

취암미모(翠巖眉毛)

취암 선사가 하안거를 마치고 폐회하는 날 수도승들에게 “하안거가 시작된 이후로 여러분을 위해 설화를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이 취암의 눈썹이 남아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보복이 “도둑놈이 정직할리 없지”하고 받았다. 장경은 “자꾸 자라고 있군.”했다. 운문은 “문은 닫혔다.”하고 덧붙였다. - 《벽암록》 제8, 《종용록》 제71

▲ 삽화 : 강병호 화백

79. 흠산 문수(欽山 文邃, ?∼?, 曹洞宗)

예주의 흠산 문수 선사는 복주 사람이다. 어릴 적에 항주 대자산(大慈山)의 환중 선사(寰中 禪師)를 따라 출가 수계했다. 그때 암두와 설봉의 두 선사가 환중 선사의 문하에 있었다. 두 선사는 문하로 온 스님이 연소하면서도 능히 의론하는 것을 보고 그 법기 됨을 인정하여 스님을 데리고 여러 곳을 행각했다. 두 선사는 덕산 선감(德山 宣鑑) 선사 밑에서 법인을 받았으나 스님은 아직 풀리지 못하는 바가 있어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흠산이 덕산 선사를 보고 물었다. “천황 도오 선사도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용담 숭신 선사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선사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때 덕산 선사는 “천황과 용담이 말한 것을 거시(擧示)해 보라.”고 말했다. 이에 흠산이 진언하고자 하자 덕산 선사는 재빨리 스님에게 한 봉을 후려쳤다. 얼결에 맞은 흠산은 연수당으로 물러가 선사가 자신을 친 것에 대해 잘 한 것이라 생각했다. 뒤에 흠산은 덕산 선사의 곁을 떠나서 동산 양개(洞山 良介) 선사를 뵙고 일언지하에 발해(發解)하고 그 법사(法嗣)가 되었다. 이후 동산 선사에 사사하기를 27년에 이르렀다. 이윽고 동산 선사를 하직하고 흠산(欽山)에 머물면서 비로소 출세하여 법고를 치게 되었다.

흠산이 과거 암두 설봉 두 선사와 함께 행각하며 강서(江西)의 한 찻집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다. 찻집의 할머니가 세 선사 앞에 차를 가지고 왔다. 곧 상량이 시작되었다.

흠산 : 전신통기(轉身通氣)를 획득하지 못한 자는 차를 마실 수 없다.
암두 : 만약 그렇다면 나는 틀림없이 차를 마실 수 있다.
설봉 : 나도 또한 같다.
흠산 : 이 두 늙은이가 아직 화두도 모른다.
암두 : 어디로 가는가?
흠산 : 푸대 안의 늙은 까마귀 살았다 해도 죽은 것과 같다.
암두 : (뒤로 물러서면서) 보아라. 보아라.
흠산 : 설봉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설봉 :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흠산 : 묻지 않을 수 없다.
암두 : (껄걸 웃으면서) 태추생(太麤生, 거친 입을 말함)이로다.
흠산 : 입이 있어도 차를 마실 수 없는 자 많다.

흠산은 당시 한창 유행하던 도교의 무리들과 토론해서 굴복시킨 일이 있었다.

도사(道士) : 거친 말과 세세한 말이 모두 제1의에 귀착한다.
흠산 : 도사는 불가의 노예다.
도사 : 태추생
흠산 : 제일의는 어디에 있는가?
도사는 대답할 수 없어 물러갔다.
어느 때 한 중이 흠산의 진상(眞像)을 그려 내놓았다. 그때 흠산은 그것을 보고 “나를 닮았는가? 어떤가?”하고 물었다. 중이 잠자코 있자 흠산은 대신해서 “산승의 진상이란다. 대중들 실컷 봐두라.”고 말했다.

흠산일질파관(欽山一鏃破關)〔질파삼관(鏃破三關)〕

양선객(良禪客)이 흠산 화상에게 물었다. “화살 하나로 관문 셋을 뚫었는데 어떻습니까?” 흠산 화상이 “그 관문 속의 주인을 끌어내라. 어디 구경 좀 하자.”고 대답했다. 양선객은 즉시 “관문 속의 주인은 못 맞혔습니다. 다시 한 번 쏘도록 하겠습니다.”하고 말하자 흠산은 “그럼 딴 때를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당장 쏘아보라.”고 했다. 양선객도 지지 않고 “화살은 잘 쏘았건만 어디 가 꽂혔는지를 모르다니!”하고는 나가려 했다. 흠산이 “잠깐, 스님.”하고 부르니까 양선객이 돌아보았다. 순간 흠산은 그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화살 하나로 관문 셋을 뚫은 건 그렇다 치고 어디 나를 한번 쏘아보라.”고 다그쳤다. 양선객이 그만 머뭇거리자 흠산은 방망이로 딱딱 일곱 번을 후려치고는 말했다. “두고 봐라. 이 녀석, 한 삼십 년쯤 공부해야 알게 될게다.” - 《벽암록》 제56

송운 스님 | 선학원 총무이사·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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