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참된베풂, 선학원
   
> 뉴스 > 지난연재보기 | 철학 卍행
     
38. 사랑 Ⅰ, 그 순수와 광기 사이
사랑, 이성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힘
2017년 11월 07일 (화) 11:18:36 김문갑 meastree@naver.com

1. 사랑의 여신

전사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이 많은 신들의 축복 속에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을 때, 축하연 자리에 황금 사과 하나가 떨어진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과 함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것이었다.

헤라와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 이렇게 올림포스의 세 여신이 사과의 주임임을 주장하며 나섰다. 어느 누가 감히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신 중의 신 제우스도 어찌하지 못하고 트로이의 젊은 왕자 파리스에게 판결을 떠넘긴다. 파리스 앞에 나타난 여신들. 헤라는 최고의 권력을, 아테네는 명예로운 승리를,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내걸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차지한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고,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사라졌다. 헥토르, 아킬레우스…….

사랑이란 뭘까? 도대체 그게 뭐라고, 권력도, 승자의 미소도 마다할까? 파리스의 선택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헬레네란 여인을 향한 욕정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조차 되지 않아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리스는 헬레네를 사랑했다. 아무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중재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아프로디테란 여신도 특별하다. 그리스 신들은 대개 복수의 권능과 임무를 맡고 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이면서 음악과 의술, 그리고 예언 등등을 담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오직 하나 사랑만 주관한다. “사랑밖에 난 몰라〜”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다른 건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헤시오도스는 이 여신에겐 부모조차 주지 않았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바다에 버려진 우라노스의 성기가 수백 년 동안 바다를 떠돌다가 하얀 거품이 되고, 이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는 태어난다. 마치 사랑은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아프로디테는 타고난 바람둥이요 연애대장이다. 애당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여신의 사전에 없다. 그녀는 절제할 줄도, 통제할 줄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오직 그것만을 위해 그냥 나아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앞뒤를 재지도 않는다. 그녀의 아들 에로스의 화살은 이런 사랑의 맹목을 상징한다. 누구라도 에로스의 화살을 맞으면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체면도 모르고, 필연적으로 따라올 불행도 상관하지 않는다. 창피를 당하고 낭패를 보아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피우다가 모든 신들에게 그 불륜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이 여신은 개의치 않는다. 마치 사랑은 그런 것이라는 듯이. 이런 여신을 사람들은 제일 좋아한다. 아프로디테의 또 다른 이름인 미의 여신이란 말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신에게 보내는 찬사임에 분명하다.

2. 사랑밖에 난 몰라

내 이름은 퀴프리스, 인간들 사이에서나
하늘에서나 내 명성은 자자하노라.
폰토스와 아틀라스의 경계 안에 살면서
햇빛을 보는 자들 가운데 내 힘을 존중하는 자는
나도 명예를 높여주지만, 내게 오만한 생각을
가진 자는 내가 반드시 넘어뜨리노라.
1)

퀴프리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별칭이다. 과연 아프로디테 여신의 명성은 신들의 세계에서든 인간의 세계에서든 자자하다. 어느 누가 그 사랑의 힘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아들 힙폴뤼토스는 달랐다. 그는 테세우스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를 포로로 잡고 낳은 자식이다. 히폴리투스는 사냥과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여 사냥을 좋아하고 여자를 멀리 하였다. 그에게서 사랑은 경멸스런 이름일 뿐이었다. 결혼은 더욱더 생각하기 싫은 것이었다.

여자가 얼마나 큰 재앙인지는, 여자를 낳아 기른 아버지가
단지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참금을 주어 여자를
시집보내버리는 것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지요.
2)

이렇게 힙폴뤼토스는 여자를 재앙 덩어리 우환의 근원으로 여겼다. 그에게서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가장 사악한 여신이었다.

나는 밤에 경배해야 하는 신은 마음에 들지 않네. 3)

밤은 사랑을 나누기에 좋은 시간. 힙폴뤼토스는 밤에 이루어지는 일을 싫어했다. 이런 그를 파이드라는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나 테세우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그리고 데모폰과 아카마스를 낳았다. 영웅 테세우스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는 힙폴뤼토스를 보는 순간 사랑의 전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남편의 아들. 비록 전처소생이라 할지라도 아들은 아들이다.

불쌍한 내 신세!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으며,
이성의 길에서 벗어나 어디를 헤매었던가?
나는 실성했고, 어떤 신의 미망(迷妄)에 걸려
넘어진 거야. 아아, 가련한 내 신세!
4)

이성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다그쳐도 한번 붙은 불은 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훨훨 타올랐다. 모두를 불태울 기세로 무지막지하게 타올랐다. 이 사랑의 불길은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보다 라신의 《페드르(파이드라)》에 훨씬 더 강렬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난 그를 보면 얼굴이 붉어지고 그의 시선과 마주치기만 하면 창백해졌어. 어떤 알 길 없는 고통이 혼미한 나의 심령 속에 솟아올랐어. 내 두 눈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고 난 말할 수조차 없었어. 난 내 온몸이 때로는 얼어붙고 때로는 불타고 있는 것처럼 느꼈어. 난 이내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존재와 그녀의 가공스런 정념의 불길을 알아차렸어.5)

사랑을 하면 누구라도 이렇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 앞에 선 순간 전율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아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진다. 오직 사랑밖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불길이라고 하는데, 페드르는 ‘정념의 불길’이라고 한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 알렉상드르 카바넬, 〈파이드라〉
파이드라 :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유모 : 내 딸이여 그건 가장 달콤하고도 가장 쓰라린 거예요.
파이드라 : 그렇다면 나는 그 중 두 번째 것만 맛본 것 같아요
.6)

하지만 한 번 붙은 불길은 모두를 태워버리기 전까지 결코 수그러드는 법이 없다. 유모를 통해 파이드라의 사랑을 전해들은 힙폴뤼토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사악한 여인이여, 그대도 아버지의
결혼 침상을 범하도록 나를 설득하러 왔던 것이오.
나는 흐르는 물을 귀에 뿌려 그런 제의를 씻어내고 싶소
.7)

흐르는 물에 귀를 씻는다? 요(堯)임금이 허유(許由)라는 사람에게 천하를 양도하려 하자 허유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영수(潁水)에 가서 귀를 씻었다고 했던가. 하여튼 계모의 애정고백을 더러운 말로 여긴 힙폴뤼토스. 그런 힙폴뤼토스를 생각하며 고통을 참지 못하는 파이드라. 비극은 이렇게 전개되는 법이다.

나는 오늘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나를 죽이시려는
퀴프리스를 기쁘게 해드릴 거예요.
나는 쓰라린 사랑의 제물이 될래요
.8)

   
▲ 로렌스 알마타데마, 〈힙폴뤼토스의 죽음〉
파이드라는 자결했다. 수치심, 명예, 자존감 등등이 복합되어 죽음을 택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도 더 큰 것은 아프로디테를 상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감정도, 어떤 가치 있는 단어도 사랑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렇게 쓰라린 사랑의 제물이 되어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에게 편지를 남겼다. 그 편지엔 당신의 아들 힙폴뤼토스로부터 겁탈을 당하였고,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을 택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테세우는 분노했다. 그는 아들을 추방하고, 아들을 죽게 해 달라고 포세이돈에게 빌었다. 그리고 코린토스의 해안가를 지나던 힙폴뤼토스의 마차는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에 놀라 날뛰었다. 힙폴뤼토스는 날뛰는 마차에 끌려 다니며 온몸이 찢겨지는 고통을 겪으며 죽어갔다.

3. 순수와 광기의 변증법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는 정숙하지 못한 여인의 정념과 그 정념이 야기한 순결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대단원에선 이들 모두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마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정념과 음모의 화신과도 같은 파이드라마저 용서한다.

그대(힙폴뤼토스)를 향한 소녀들의 노래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대에 대한 파이드라의 사랑도 결코
이름 없이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으리라
.9)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는 제목처럼 힙폴뤼토스가 주인공이다. 순결하고 고결한 청년이 애욕에 사로잡힌 여인의 음모에 빠져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20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라신의 《페드르》는 페드르(파이드라)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아프로디테의 계략에 빠져 사랑해서는 안 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여인이 아니라, 본인의 열정으로 이폴리트(힙폴뤼토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남편 테제에 대한 죄의식과 사랑하는 남자를 향한 애욕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난 나의 죄에 대해 응분의 전율을 느끼고 있었어. 난 삶이 증오스러웠고, 내 정념의 불길이 혐오스러웠지. 나는 죽음으로써, 내 명예를 지키고 그토록 음흉한 정념의 불길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었지!10)

이렇게 강렬한 죄의식이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에는 없다. 《힙폴뤼토스》에 나오는 죄책감은 수치심, 실추된 명예, 애정 거부에 따른 미움 등등에 동반하는 감정일 뿐이다. 하지만 고대의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근대 계몽시대의 사람들은 죄의식에 끌려갔다. 페드르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하고 사랑의 열정에 몸부림치는 만큼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다시 아프로디테로 돌아가 보자. 이 사랑의 여신은 오직 사랑밖에 모른다. 그게 솔직한 거 아닌가. 희ㆍ노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喜怒哀樂愛惡欲). 이른바 칠정(七情) 중에 사랑만이 근본도 없고 대상도 없다. 사랑 이외의 나머지 감정은 원인이 있고, 대상이 있다. 기쁨은 기쁜 원인이 있고, 분노는 분노의 대상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나도 모르게 불쑥 생겼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오늘따라 유난히 그 눈빛이 너무 좋은 것이다. 그리고는 미치도록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 광기(狂氣)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페드르는 말한다. “사랑의 광기에 온통 사로잡혀 있다”고. 사랑의 광기는 굳이 근대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로마 시대의 세네카(4〜65)도 말한다.

“유모, 당신 말이 맞아. 나(파이드라)도 잘 알아. 한데 광기가 더 큰 악으로 이끌어가네. 이래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음은 한 순간 잡은 끈을 놓아 버리고, 뭔가 힘이 되는 조언을 전하고자 애썼지만 정신도 별 수 없는지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마네. 마치 짐으로 가득찬 배를 지키려 뱃사공이 몰아치는 파도에 맞서 분투하지만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고 마는 것처럼, 배는 끝내 항복하고 뱃꼬리를 (머리로 해서) 심연의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마는 것처럼 말이야. 도대체 이성이 무엇을 할 수 있지? 광기가 승리했고 완전히 지배해 버렸어.11)

하기야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의 입에서 사랑의 광기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이 철학자는 그 무엇보다도 정념에 동요하지 않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진작부터 광기로 이해되었던 것인가 보다. “미쳤나봐. 내가 왜 이러는 거지?”라고 하면 그는/그녀는 사랑의 광기에 빠진 것이다. 파이드라가 어떻게 변주되든, 고대 그리스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뤼토스》에서든, 로마 시대 세네카의 《파이드라》에서든, 근대 라신의 《페드르》에서든, 그리고 현대 줄스 다신 감독의 영화 《페드라》에서든 사랑은 광기이다. 이성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의 당당한 권능이다. 오로지 사랑밖에 모르는 순수함이다. 사랑 앞에서 광기는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함이다. 어쩌면 늙은 우리들이 다시 사랑의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결코 순수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가을에 더 슬픈 것도 이제는 영원히 사랑의 광풍이 불지 않을 것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 -----
1)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힙폴뤼토스》
2) 위의 책
3) 위의 책
4) 위의 책
5) 장 라신 저, 장성중 역, 《페드르》
6)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힙폴뤼토스》
7) 위의 책
8) 위의 책
9) 위의 책
10) 장 라신 저, 장성중 역, 《페드르》
11) 세네카 저, 《파이드라》, 《헤르메스의 빛으로》에서 인용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김문갑의 다른기사 보기  
ⓒ 불교저널(http://www.buddhism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과 광고성 글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0306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35-4 (안국동) 재단법인 선학원 내 | 전화 02)720-6630 | 전송 02)734-9622
등록번호 서울특별시 아00856 | 등록일자 2009년 5월 8일 | 발행일자 매주 목요일 | 발행인 최종진 | 편집인 박근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윤
Copyright 2009 불교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jn20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