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오온이 끊임없이 보고 듣고 맛보고 내지 의식하는 것을 우리 몸이 느끼고〔受〕, 생각하고〔想〕, 마음이 작용하고〔行〕, 인식하고〔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수행하면 불도를 성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에서 우리는 오온이 공하다고 하였으니 내가 공하여 없다고 하는데 누가 가르침을 받고 누가 도를 닦아 성취하느냐는 것이다. 《열반경》에서 사자후보살이 부처님께 드린 질문이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신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에게는 생각하는 마음, 지혜의 마음, 불도에 들겠다는 마음, 정진하는 마음, 믿는 마음, 선정의 마음이 있으니, 이런 법이 순간순간 멸하더라도 이런 법이 오히려 비슷하게 끊이지 않으므로〔相似相續〕 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우리가 도를 성취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인 교법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교법을 통해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의 마음이 있어야 하고, 지혜로 깨닫기 위해서는 발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발심하여 불도에 나가려면 정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정진하려면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깊은 믿음이 있어야 선정이 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수·상·행·식하는 내가 없고, 이런 마음이 순간순간 생겼다가 멸한다 하더라도, 이런 마음이 비슷하게 끊이지 않으면 멸했다가 다시 나오고, 멸했다가 다시 나오므로 계속해서 도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등불을 보면 불꽃이 순간순간 멸했다가 생기기를 계속하지만 불꽃이 비슷하게 계속 이어져 어둠을 깨트리듯이, 생각하는 마음이나 내지 선정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수도에서 이런 마음을 내면 순간순간 멸하지만 생멸하면서 비슷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음식물이 순간순간 멸하지만 굶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좋은 약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병을 다스리고, 해와 달의 광명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초목들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도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불도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에서는 우리가 수행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여섯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경을 읽는 비유이다. 경전을 보고 글을 읽을 때 처음 읽은 구절이나 글자가 한꺼번에 그대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 것이 중간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한다. 사람과 글자와 마음이 순간순간 멸하지만 계속해서 독송하므로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금세공업자의 비유이다. 금세공업자는 견습공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금을 단련하기를 순간순간 멸하여서 앞의 것이 뒤에 한꺼번에 이루지 않더라도 오래오래 익히고 단련하여 나중에는 교묘한 세공품을 생산하는 신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을 독송하는 것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셋째는 종자(種子)에 대한 비유이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너는 싹을 내라고 땅이 가르치지 않지만 법의 성품이 그러하므로 싹이 스스로 나와서 마침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중생들도 불종자를 심었으므로 수행 속에서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듯이 법의 성품 때문에 중생들이 도를 닦으면 불도를 이룰 수 있다.

넷째, 셈하는 법의 비유이다. 셈을 할 때 순간순간 멸하므로 하나가 한꺼번에 둘이 되지 않고 둘이 셋이 되지 않지만 결국 천만에 이르게 된다. 중생이 도를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초선을 닦아서 한꺼번에 이선이 되지 않고 삼선이 되지 않지만 계속 닦아 나아가면 사공정 사무색정을 이루게 된다.

다섯째 등불의 비유이다. 등불이 순간순간 멸하는데 처음 멸하는 불꽃이 뒤의 불꽃에게 내가 멸하거든 네가 나와서 어둠을 깨트리라고 하지 않지만 어둠을 밝히듯이 수도하는 마음도 이와 같다.

여섯째는 송아지의 비유이다. 송아지는 태어나 문득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는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으며 순간순간 멸하지만, 처음은 배고프지만 나중에는 배부르게 된다. 중생도 마찬가지여서 요인불성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처음에는 도가 증장하지 않지만 오래 닦으므로 도가 증장되어 모든 번뇌를 능히 깨트릴 수 있다.

우리는 오온이 공하여 순간순간 멸하지만 그 마음이 비슷하게 이어져서 불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도를 했을 때 수행력도 순간순간 멸하는데 어떻게 수도를 성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부처님은 수다원이 계율을 잘 지켜 살생과 도둑질, 음행등을 잘 지키다가 다른 나라에 태어나더라도 역시 똑같을 것인가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 수다원은 오온이 멸하고 수도도 끝났지만, 수행력 때문에 다음 생에서도 나쁜 업을 짓지 않는다고 답하신다.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비유를 들어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첫째는 향산의 사자왕 비유이다. 향산에 사자왕이 있으면 그 위엄으로 새와 짐승들이 종적을 감추는데, 어느 날 설산으로 떠나고 없어졌는데도 감히 짐승들이 나타나지 못하듯이 수다원이 도를 닦지 않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감로수 비유이다. 어떤 사람이 감로수를 먹으면 감로수는 비록 멸했지만, 그 세력으로 이 사람은 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수미산 양약의 비유이다. 이 산에 능가리라는 좋은 약이 있어서 사람이 먹으면 순간 멸하지만, 사람들이 그 효력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전륜성왕의 비유이다. 전륜성왕이 앉는 자리에는 비록 잠시 비우더라도, 누구도 감히 와서 앉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종자의 비유이다. 과일을 얻기 위해 종자를 심는데 종자를 심고 거름 주고 물을 주면 종자는 없어지지만 여기서 과일을 얻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재산의 비유이다. 어떤 부자가 있어서 많은 재산이 있는데 외아들이 죽고 손자가 멀리 살았다. 이 부자가 죽자 손자가 기별을 받고 와서 그 재산을 모두 차지하게 되니, 손자는 부자의 속성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도 무아이고 무상하다고 하거나, 일체법이 다 공(空)하다고 하여 수행을 멈출 수 없다. 우리의 수행력은 서로 이어져 계속되기 때문이다. 마치 등불이 순간순간 멸하지만 계속 어둠을 파하고 비추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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