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영화 <거인>입니다.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한 영화가 신인 남우상에 신인 감독상까지 챙긴 것입니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보기 전까지 이 영화가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저예산 영화를 만든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받았을까, 또 주인공 최우식은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문라이트>와 닮았습니다. <문라이트>가 작은 영화로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 배우가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면 <거인> 또한 첫 장편 데뷔작으로 신인감독상을, 그리고 첫 주연작으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환경에 놓인 소년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는 면에서도 유사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점은 <문라이트>가 어른의 시각에서 그 힘든 시기에 대한 통찰과 의미를 찾는다면, <거인>은 가장 힘든 그 시절을 뚝 잘라내서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문라이트>가 관객이 얻어갈 것을 미리 제시한다면 <거인>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소년의 힘겨운 삶을 그저 지켜보는 일만을 관객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한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거인>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그 시절을 털어놓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객이 이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주인공 소년의 성장통에 공감하고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거인>의 영재(최우식)는 그룹 홈에서 살아가는 17살 소년입니다. 그룹홈인 ‘이삭의 집’은 구청과 카톨릭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위탁기관인데, 이곳에서 아이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영재는 더 이상 ‘이삭의 집’에 머물 수 없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래서 원장은 영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는데 집은 영재가 돌아갈 만한 상황이 못 됐습니다. 알콜 중독 증세가 있는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동생 민재까지 영재에게 떠넘기려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삭의 집’에 남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재는 꽤 영악하게 굴었습니다. ‘여우같이’ 교활한 면도 있지만 영재의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영재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면서 하느님을 체험할 정도로 영성 있는 소년의 역할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는 편지를 써서 작은 선물과 함께 주고, 그리고 원장 부부의 비위를 맞추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며, 어른들의 호감을 사는 아이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영재의 이런 모습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의도하고 보여주는 모습일 뿐입니다.

영재는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신발을 훔쳐서 학교에서 돈을 받고 팔았으며, 친구가 그 누명을 쓰고 ‘이삭의 집’에서 쫓겨나게 됐을 때도 친구의 누명을 벗겨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알아챈 친구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걸 걱정해 친구를 신고하는 야비한 행동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영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는 신부님이나 원장 부부에게 신부가 되고 싶다고, 신학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의 진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영재는 온 힘을 다해서 ‘이삭의 집’에 남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영재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영재는 자신은 비록 ‘이삭의 집’에 머물지만 동생까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영재가 그토록 ‘이삭의 집’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가족을 지키고 싶어서였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집에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까지 ‘이삭의 집’에 맡기게 되면 아버지와 엄마는 곧 이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돌아갈 집을 잃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재는 동생이 ‘이삭의 집’으로 오는 것을 기필코 막으려고 했습니다.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삭의 집’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고, 그런 일련의 행동의 최종 목표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영재가 가장 바라는 것은 그의 가정이 온전하게 보전되고,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꿈을 자꾸만 부셔버리려 했습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동생 민재를 영재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동생과 아버지가 함께 왔습니다. 민재가 ‘이삭의 집’에 살기로 기정사실화한 상황이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영재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자신도 모르게 벗게 됩니다.

원장 부부에게 언제나 예의 바르고 신앙심 깊은 소년이었던 영재는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들고 나와 자신의 손목을 긋고, 옆에 서있던,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과외 선생님을 인질로 잡아 협박까지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제발, 저 사람들 내보내요!”

영재의 발작은, 그의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은, 가정이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보호본능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집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이삭의 집’에 의탁하고 있지만 언젠가 돌아갈 곳을 남겨놓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재가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탁가정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나이가 많았는데 이런 문제까지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 영재는 ‘이삭의 집’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영재가 가면을 쓰면서, 친구까지 배신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그는 결국 그곳에서 내몰리게 됐습니다. 지방에 있는 어떤 도시로 떠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당하는 고통에 무관심했으며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도 부모로서 책임감 같은 건 없었으며, 원장 부부 또한 아이들에게 사랑이 없었습니다. 아침을 챙겨주고 옷을 깨끗하게 입히고 나름 돌본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없었으며,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성당의 신부 또한 너무나 행복한 세계에 머물고 있어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아이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현실성이나 진성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어른들보다 성숙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거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생 민재는 아직 중학생이지만 언제나 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형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형에게 무어라도 주고 싶었는지 아끼는 상품권을 주고, 형이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이 ‘이삭의 집’에 오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동생은 형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데리고 얼른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형이 지방으로 가면서 옷가지를 챙겨 찾아왔을 때는, 나중에 돈 벌면 우리끼리 살자고 말하면서 형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이해를 보였습니다.

형이 자신을 거부하면서 칼을 들고 소동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어린 민재만은 이해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 그런 가정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둘이서라도 가정을 만들자고 형에게 약속했던 것입니다.

같은 방을 사용했던 범태 또한 영재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 처했지만 영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영재가 도둑질한 것 때문에 자신이 누명을 써서 이삭의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아야 했고, 또 아무것도 없는 거리에서 도둑질밖에는 할 것이 없어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영재가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도 범태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범태는 성당에서 영재를 마주쳤을 때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하고 이해하는 얼굴이었습니다.

반면에 영재는 성당에서 범태를 마주쳤을 때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마더>에서 엄마가 자신의 아들 대신 감옥에 들어간 좀 모자라는 아이 앞에서 흘렸던 그런 눈물이었습니다.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친구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영화 내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여우처럼 교활하게 살던 영재가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거인>에서 영재는 비록 아이지만 어른과 다름없습니다. 어른처럼 가면을 쓰고 사니까요. 동생 민재나 친구 범태가 이런 가면을 쓰지 않은 것과 달리 영재는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고군분투했습니다. 영재의 이런 모습은 성직자의 가면을 쓴 신부나, 위대한 자선사업가인 척 하는 원장 부부, 그리고 무능을 위장한 아버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민재나 범태는 가면을 쓴 영재를 알아보지만 그것 또한 이해합니다. 범태와 민재와 같은 아이들은 영재가 가면을 쓰던 그렇지 않던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거인의 풍모를 지닌 이들 앞에서 영재는 비로소 가면을 완전히 벗고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처절하게 고통스러웠던 한 시기가 끝났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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