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이란 몸과 마음을 강압적으로 구속하거나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적으로 보자면 중생들이 업(業)과 번뇌의 과보로 몸과 마음을 장애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곳을 우리는 삼계 육도윤회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곧 해탈은 번뇌와 장애로부터 벗어나 몸과 마음이 자유로움을 말하는데, 이런 육도의 고해로부터 벗어나므로 도탈(度脫)이라 하고, 안락한 경지이므로 열반(涅槃)을 얻었다고 한다.

《열반경》에서는 이러한 중생의 모습을 등불과 기름으로 비유하고 있다.

“선남자여.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기름이 다하기 전에는 밝은 빛이 꺼지지 않지만, 기름이 다하면 등불이 꺼질 것은 의심할 바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여기서 기름은 번뇌를 비유하고 등불은 중생을 비유하니, 일체 중생들은 번뇌의 기름과 같으므로 열반에 들어 갈 수 없으며, 만일 번뇌를 끊는다면 열반에 들어가느니라.

중생들이 갖가지 번뇌로 생사고해에 빠진 것을 기름이 타오르는 등불로 비유하였다. 곧 중생이라는 등불은 번뇌의 기름에 의해 유지되고 있어서, 중생이 곧 번뇌이고 번뇌를 말하면 곧 중생을 상정한다. 실제로 등불과 기름은 서로 다른 성품인데 중생이 곧 번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중생을 고행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비유의 설법방식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비유설법은 여덟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여덟 가지 비유는 중생들이 생사고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열반)을 얻는 여덟 가지 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법문인 셈이다.

먼저 여덟 가지 비유란 수순의 비유[順喩], 거스르는 비유[逆喩], 현재에 있는 비유[現喩], 실제가 아닌 비유[非喩], 먼저 하는 비유[先喩], 뒤에 하는 비유[後喩], 앞과 뒤에 하는 비유[先後喩], 두루하는 비유[遍喩]이다.

첫째 수순의 비유란 하늘에서 큰 비가 오면 도랑이 넘치고, 도랑이 넘치므로 샘이 넘치고, 샘이 넘치므로 못이 넘치고, 못이 넘치므로 강이 넘치고, 강이 넘치므로 바다가 넘치니 여래의 법우(法雨)도 이와 같다. 중생의 계행을 만족하니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만족하므로 환희한 마음을 만족하고, 환희한 마음을 만족하므로 멀리 여읨을 만족하고, 멀리 여읨을 만족하므로 편안함을 만족하고, 편암함을 만족하므로 삼매를 만족하고, 삼매를 만족하므로 바른 지견을 만족하고, 바른 지견을 만족하니 싫어함을 만족하고, 싫어함을 만족하므로 꾸짖음을 만족하고, 꾸짖음을 만족하므로 해탈을 만족하고, 해탈을 만족하므로 열반을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중생이 열반을 얻는 순차적인 방식을 뜻한다. 우리 중생은 열심히 계행을 닦아야 하고, 계행을 닦아 만족하면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환희심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멀리 여윔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안온함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삼매를 만족하고, 이를 닦아 바른 지견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세간을 싫어 여읨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가책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해탈을 만족하고, 이를 닦아 열반을 만족한다는 것이다.

둘째, 거스르는 비유는 첫째의 반대로 닦는 것이다. 곧 열반의 근본은 해탈이요, 해탈의 근본은 가책함이요, 이와 같이 하여 계행을 가지는 근본은 여래의 법우를 들었기 때문임을 설한다.

셋째는 현재에 있는 비유이다. 곧 중생의 마음은 현재 앞에 있는 원숭이와 같아서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가지는 것과 같다. 중생의 마음도 이와 같이 대상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취착하여 잠시도 멈추지 않음을 깨우친 것이다.

넷째는 실제가 아닌 비유이다. 부처님이 파사익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네 개의 큰 산이 사방에서 와 백성들을 해치려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설사 그런 일이 있어도 도피할 곳이 없으니 다만 전심으로 지계하고 보시할 뿐입니다.” 이에 부처님이 말했다. “대왕이여. 네 산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뜻합니다. 항상 이 네 가지가 침노하건만 어째서 지계와 보시를 하지 않습니까.” 대왕이 말했다.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 안락을 받지만, 니구타나무가 지계하고 보시한다 해도 인간이나 천상의 안락을 받겠습니까.” 니구타나무는 현실적으로 지계하고 보시할 수가 없고 그렇게 하기만 하면 쾌락을 받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비현실적인 내용의 비유를 통하여 해탈의 길을 설하고 있다.

다섯째, 먼저 하는 비유이다. 먼저 비유를 말하고 다음에 법의 진실을 깨우쳐 주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꺾다가 물에 떠내려갔으니,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오욕락을 탐하다가 생사의 바다에 떠내려간다고 깨우쳐 주는 것이다.

여섯째, 뒤에 하는 비유이다. “작은 악을 가벼이 하여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결국 큰 그릇을 가득 채우는 법이다.”라고 하여 진실을 먼저 말하고 그 뜻을 비유로 설하는 것이다.

일곱째, 앞과 뒤에 하는 비유이다.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이양(利養)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 노새가 새끼를 배면 생명을 오래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고 하여 먼저나 뒤에나 모두 비유를 쓰는 것이다.

여덟째, 두루하는 비유이다. 파리질다나무를 통해 출가 수행자가 두루 득도하는 것을 비유로 깨우친다. 나뭇잎이 누렇게 됨은 출가함을 비유하고, 잎이 떨어짐은 머리와 수염 깎음을 말하고, 빛이 변함은 백사갈마의 구족계 받음을 뜻하고, 꽃의 눈이 생김은 아뇩보리에 발심함이고, 꽃봉오리는 십주보살이 불성을 봄이며, 꽃이 핌은 보리 얻음을 가리키고, 향기 나는 것은 시방 중생들이 계를 받아지님이고, 광명이 나는 것은 여래 명호가 시방에 널리 퍼짐이며, 천인들이 3개월 동안 천락을 받음은 세 가지 삼매 얻음이며, 33천이 안락을 받음은 부처님이 열반에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수행자가 두루 발심하여 불도를 얻어 열반락을 얻음을 말한다.

이상 여덟 가지 비유는 이와 같이 속박에서 해탈 열반을 얻는 여덟 가지 길을 가리킨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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