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이 수필집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됩니다(마음의숲)》를 출간했다.

스님은 이미 세 권의 책을 낸 문장가이다. 그래서일까? 문장이 짧고 부드럽다. 일기 편한 것은 물론이다. 행간에 담긴 행기도 녹록치 않다. 가벼우면서도 절제하려는 뜻이 담겼다. 70여 편의 글에 담긴 스님의 뜻은 따뜻하게 전해진다. 사회의 어두운 담면에 대한 인식과 대안을 차분히 써내려간다.

유행처럼 퍼지는 자살에 스님은 먹먹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말을 전한다. 평상심을 잃은 이들에게 살아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역설한다 한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스님은 기본에 충실한 답 속에 죽비를 숨겼다. 꾸벅꾸벅 졸다 어깨를 죽비로 탁 맞는 그 순간처럼 답은 분명하다. ‘당당하고 거침없이 부딪혀라’ 스님의 답이다.

스님은 인과에 집중한다. 스님답다. 오늘 공부가 내일의 성과로 드러나고, 살아온 10년이 앞으로의 10년을 결정하듯, 지금 우리 생의 삶의 답을 다음 생에 낳는다 는가르침에 스님은 충실히 접근한다. 오늘 숙제를 내일로 미룰 수 없고,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내일을 기약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그 자체로 완벽하게 끝맺음될 때, 우리는 내일 그늘이 없는 새롭고 청량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실패와 성공은 한 쌍입니다. 실패 뒤에는 반드시 성공이 오고, 성공 뒤에는 반드시 실패가 따릅니다.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이 인과의 법칙을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너의 인생이 전생에 네기 지은 결과이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노력과 의지가 너의 내생을 만들 것이다. ”-본문 중에서

스님은 서산 부석사에 산다.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다. 주경 스님에게 부석사는 한국선불교의 부흥자 경허 스님의 주석처여서 더욱 남다르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과 행동으로 유명했던 경허 선사의 삶을 스님은 뒤쫓는다.

스님은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로, 산중에서 피고 지는 꽃과 나무의 어머니로 11년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주경 스님의 글은 산사의 새벽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조용하고 맑으며,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처럼 깊고 그윽하다. 때론 나태한 삶을 호통하듯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매섭고, 자식을 옳은 길로 이끄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단호하다.

스님은 희망을 말한다. 삶이 인과관계란 것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생을 스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생이 없어도 전생이 없어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면 충분하다.

바보의 시간은 늘 새롭습니다. 바보들의 눈은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합니다. 그저 순간순간을 느끼고 즐길 뿐입니다. 옛 스님께서 참선하는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 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 사람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벗어던져서 걸림 없이 자유롭고 즐거운 상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본문 중에서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행간에 넌지시 전할 뿐이다. 대학 시절 수련회에서 겪은 누룽지 사건에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다. 절집에서 조차 찾기 힘든 가마솥을 스님은 마음에서 찾았다. 도심의 밝은 불빛에 가려진 밤하늘의 별빛을 스님은 좇는다. 거리의 불빛을 줄이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며 스님은 별빛을 가슴에 품자고 말한다. 말없는 다수의 뜻이 상식 밖이지 않음을 전하는 스님은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순행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다시 온다면 지금의 생보다 더 많이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품격 있는 영혼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시서 많이 공부하고,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해야겠지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알지요?”

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을 말한다.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스님은 네가티브한 생각과 말과 뜻을 버리고 긍정과 관심, 웃음을 좇는다.

주경 스님/마음의 숲/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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