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은 설봉산 밑의 설봉장(雪峰莊)에서 여장을 풀었다. 운문은 설봉선사를 뵈러가는 한 승려를 보고 “오늘 한 질문을 의존대화상에게 올려보시라. 대중이 모인 자리에 화상이 상당하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 화상의 팔을 잡고 ‘이 늙은이, 머리 위의 철가(鐵伽)를 왜 벗지 않는가’하고 추궁해 보시라.”하곤 가르쳤다. 이 승려는 운문이 일러 준대로 실행했다. 그랬더니 화상이 자리에서 내려와 느닷없이 승려의 멱살을 잡고 “말하라, 말하라.”고 역습해 왔다. 물론 운문이 시키는 대로 실행했을 따름이었기 때문에 이 승려는 대답하는데 궁색했다. 화상은 이런 승려를 보고 “자네 배짱에서 나온 것이 아니지. 말하라.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가”하고 추궁했다. 자기 생각이라며 승려가 계속 버티자 설봉은 “시자야, 밧줄과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벌봉(罰棒)을 먹여주리라.”했다. 결국 승려는 자초지종을 모두 고백하고 무례함을 사과했다. 이를 들은 설봉은 “장상(莊上)에 500명의 선지식이 있다.”고 말하곤 대중을 시켜 운문을 산상에 맞이하게 했다.

이튿날 운문은 산에 올라와 설봉선사를 상견했다. 설봉선사가 “귀승(貴僧)은 어떤 인연이 있어 이곳으로 왔는가?”물었다. 운문은 도명선사와 있었던 인연을 들려주었다. 이에 설봉은 운문의 입실을 허락했다. 마침내 설봉선사와 운문 양웅(兩雄)의 마음과 마음이 완전히 계합하여 수행을 증득한 결과 운문은 설봉의 법을 잇게 되었다. 운문은 그 뒤 여러 곳의 명장들을 역방하였고 본격적인 수업을 정령했다.

▲ 삽화=강병호 화백

운문은 위산대안(潙山大安)의 법사인 소주 영수사(靈樹寺)의 여민(如敏)을 뵙고 제 1조가 되었다. 여민이 천화한 뒤에 남한(南漢)의 성왕(晟王)이 운문선사에게 귀의하여 영수사에 살게 하고 광진선사(匡眞禪師)란 시호를 주었다. 뒤에 성주 운문산의 광태릉(光泰陵)으로 옮겨 종요(宗要)를 제시하기에 이르러 천하의 용상들이 바람을 바라고 모여들어 운문종의 이름이 퍼지게 되었다. 운문종은 한마디로 홍기섬삭(紅旗閃爍)이라 평가되고 있었다. 청산의 정상에 붉은 깃발이 팔랑거리고 있었지만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언어가 교묘하여 쉽게 짐작할 수 없는 특색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한 승려가 묻는다. “불법의 참뜻은 무엇입니까?”하면 “봄이 오면 풀이 스스로 푸르다.”하고 또 “부처란 어떤 것인가?”하면 “똥 묻은 마른 막대기”라 하며 또 “제불출신의 땅은 어디입니까?”하면 “동산(東山)이 물 위를 간다.”하였다. 또 묻기를 “옛사람들의 면벽의 뜻은 무엇입니까?”하면 “염칠(念七)”이라 하고 또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물으면 “날 저물고 산을 본다.”는 식이었다.
건화(乾和) 7년에 입적했다. 뒤에 송 태조가 대비운광진홍명선사(大悲雲匡眞弘明禪師)란 시호를 내렸다. 법을 이은 사법제자가 25명이었으며 유저로는 《광록(廣錄)》 3권이 있다.

운문일일호일(雲門日日好日) [운문십오일 雲門十五日]
15일 아침 소참 때 운문화상이 수시하기를 “15일 이전의 일은 너희에게 묻지 않는다. 15일 이후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해보라.”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운문이 말하였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비가 오고 가뭄이 들고 태풍과 홍수에 관계없이 우주의 본체와 진리를 파악한 사람에게는 날마다 좋은 날인 것이다.” 《벽암록》 제6

운문일대시교(雲門一代時敎) [운문대일설 雲門對一說]
한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일대시교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운문화상은 “곧 때와 장소에 따른 가르침이므로 저것은 저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모두 좋다.”하고 대답했다. 《벽암록》 제14

운문도일설(雲門倒一說)
일대시교를 물은 스님이 이번엔 “만약 설법을 듣는 사람도 없고 설법을 할 곳이나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했을까요?”하고 물었다. 운문화상은 “그야 아무 설법도 하지 않으면 되지.”하고 대답했다. 《벽암록》 제15

운문체로금풍(雲門體露金風)
한 스님이 운문화상을 찾아와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운문화상은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하였다. 《벽암록》 제27

운문각전양수(雲門卻展兩手)
운문화상이 찾아온 스님에게 “요즘 어디 있다 왔나?”하고 물으니 그 스님이 “서선화상에게서 왔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운문화상은 “서선화상은 요즘 무슨 말을 하던가?”하고 다시 물었다. 스님이 대답대신 두 손을 불쑥 내밀었다. 곧 운문화상은 한 대 때렸다. 스님이 “제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하니까 이번에는 운문화상이 두 손을 불쑥 내밀었다. 스님이 그만 아무 대꾸도 못하므로 운문화상은 다시 한 대 때렸다. 《벽암록》 제54

운문화약란(雲門花藥欄) [운문금모사자 雲門金毛獅子]
한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청정법신이란 어떤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운문화상은 “약초밭의 울타리다.”고 대답했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하니 다시 “황금털 사자”라고 대답했다. 《벽암록》 제39

운문육불수(雲門六不收)
한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부처님의 본체란 어떤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운문화상은 “너무 커서 6대[地 水 火 風 空 識]로도 담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벽암록》 제47

운문진진삼매(雲門塵塵三昧)
한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물었다. “진진삼매가 무슨 뜻입니까?” 운문화상은 “바리때 속의 밥, 통 속의 물”이라고 대답했다. 《벽암록》 제50 《종용록》 제99

운문주장화룡(雲門拄杖化龍) [운문주장자 雲門拄杖子]
운문화상이 제자들에게 주장자를 불쑥 내밀면서 “이 지팡이가 변해서 용이 되어 우주를 삼켜버렸다. 자, 산하 온 대지는 어디 있느냐?”하고 말했다. 《벽암록》 제60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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