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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아라한, 초기불교의 최고 성인 ①
아라한은 열반·해탈 이룬 이
2017년 08월 31일 (목) 11:47:57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한국불교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전통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대승불교는 대승 이전의 최고 수행자상인 아라한(阿羅漢)을 소승(小乘)의 성자(聖者)로 비판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라한을 예경한다. 예를 들면, 아침저녁으로 매일 독송하는 예불문(禮佛文) 가운데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을 부촉(咐囑)한 10대 아라한, 16대 아라한, 500아라한 그리고 1,200 여러 아라한을 예경한다. 그리고 아라한을 나한도(羅漢圖)나 나한상(羅漢像)으로 조성하여 나한전(羅漢殿)이나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또는 응진전(應眞殿)에 모시고 신앙(信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나한신앙은 한국불교 역사에서 명부전(冥府殿)이나 산신각(山神閣) 또는 칠성각(七星閣)과 같이 대중 신앙적 차원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우(祈雨)와 적(敵)을 물리치기 위해 오백나한재(五百羅漢齋)를 자주 지냈고, 태조 이성계는 나한기도를 했다. 나한신앙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현재 다양한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아라한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라는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사상 또는 전통 신앙에서 아라한 개념의 연원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먼저 초기불교의 맥락에서 아라한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1. 아라한의 정의

고대 인도어에서 문법적으로 남성 주격인 아라한은 어근 arh(arhati)로부터 유래한다. 산스끄리뜨로 arhat, 빠알리(Pāli)로 arahant이다. 어원에 따른 기본적인 의미는 ‘가치 있는(to be worthy)’ 이나 ‘대접받을 만한(to deserve)’ 또는 ‘공덕이 있는(to merit)’ 등이다. 한문 아라한(阿羅漢)은 범어(梵語 : Sanskrit)로부터 음역(音譯)된 것이다. 지금은 아라한을 줄인 ‘나한(羅漢)’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몇 가지 음역어들을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역(意譯)으로는 ‘응공(應供)’·‘살적(殺賊)’·‘응진(應眞)’·‘불생(不生)’·‘무생(無生)’·‘이악(離惡)’·‘무학(無學)’·‘진인(眞人)’ 등이 한역 경전에 두루 나타난다. 모두 아라한의 의미를 담아 옮긴 것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응공(應供)’이란 아라한의 어원을 염두에 둔 번역으로 ‘상응(相應)한 이’란 뜻이다. 사람과 하늘(天)로부터 존경받는 이로서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둘째, ‘살적(殺賊)’이란 번뇌라는 적을 모두 죽였다는 뜻으로 모든 번뇌를 멸한 경지를 이룬 사람을 뜻한다.

셋째, ‘응진(應眞)’은 진리에 계합(契合)했기 때문에 사용된 말이며, 넷째, ‘불생(不生)’과 ’무생(無生)’은 더 이상 고통 받는 생사윤회의 세계에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어 열반․해탈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다섯째, ‘이악(離惡)‘은 미혹·미망의 그릇된 것으로부터 떠나 있다는 의미이며, 여섯째, ‘무학(無學)’은 더 이상 닦고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수행을 완성하여 세상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고 존귀한 성자(聖者)이기에 ‘진인’이라 부른다.

이처럼 경전에서 아라한을 설명하는 용어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것은 아라한이 불교가 목표하는 최고의 경지인 열반(涅槃)․해탈(解脫)을 이룬 인격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현재 서구 불교학자들은 아라한 연구에서 아라한을 인격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완전해진 인격체(man perfected/perfected person)’를 의미하는 것으로 옮겨 표현하였다. 그래서 정형적인 여래십호(如來十號)에서도 처음에 거론되듯이 아라한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을 칭했던 가장 중요한 이름 중 하나이다. 불교적 의미에 있어 최초의 아라한은 다름 아닌 불교의 교조(敎祖)이다.

아라한이라는 말은 본래 불교 흥기 이전의 시기에 최고의 수행자를 이르는 말이었다. 특히 고대 인도종교를 바라문교와 사문종교(沙門宗敎) 두 가지로 구분할 때 바라문교의 바라문 수행자나 사제(司祭)에 대응되는 사문종교의 이상적인 수행자를 아라한이라 칭했다. 그래서 불교보다 이전에 있었던 자이나교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시대인이면서 자이나교의 중흥조(中興祖)인 니간타 나따뿌따(Nigaṇṭha Nātaputta)와 그 밖의 다른 띠르탕까라(Tīrthaṁkara)도 아라한이라고 지칭하였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2. 아라한의 종류

불교에서 성스러운 삶의 길에 들어선 사람을 복전인(福田人)이라 한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복을 심는, 그리고 복 되게 하는 터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복전인은 다른 이로부터 좋은 대접(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을 뜻한다. 여래나 아라한 등 공양을 받을 만한 법력(法力)이 있는 이에게 공양하면 복(福)이 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다음에 결실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라한은 두 종류의 복전인 가운데 하나로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아라한을 아홉 종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중아함의 《복전경(福田經)》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급고독 거사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복전인(福田人)이 몇이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세상에는 대략 두 종류의 복전인(福田人)이 있나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학인(學人)이요, 둘째는 무학인(無學人)이다. 다시 학인에 열여덟 종류가 있고 무학인에 아홉 종류가 있으니, 거사여, 어떤 것이 18학인인가? 신행(信行)·법행(法行)·신해탈(信解脫)·견도(見到)·신증(身證)·가가(家家)·일종(一種)·향수다원(向須陀洹)·득수다원(得須陀洹)·향사다함(向斯陀含)·득사다함(得斯陀含)·향아나함(向阿那含)·득아나함(得阿那含)·중반열반(中般涅槃)·생반열반(生般涅槃)·행반열반(行般涅槃)·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상류색구경(上流色究景)이니, 이것을 18학인이라 한다. 거사여. 어떤 것이 9무학인인가? 사법(思法)·승진법(昇進法)·부동법(不動法)·퇴법(退法)·불퇴법(不退法)·호법(護法)·실주법(實住法)·혜해탈(慧解脫) 그리고 구해탈(俱解脫)이니, 이것을 9무학인이라고 하느니라.”

흔히 이 경을 근거로 불도를 닦는 데 있어 ‘18유학(有學), 9무학(無學)’이 논의된다. 유학이 아직 닦아야 하는 단계인데 반해 무학은 앞에서 말한 대로 더 닦을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른 아라한의 별칭이다. 아홉 무학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단계는 단연 구해탈(俱解脫) 아라한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아홉 무학인은 아홉 종류 또는 아홉 단계로 아라한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다시 간략하게 아홉 종류의 위계(位階) 또는 종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퇴법(退法)이란 질병 등의 특별한 인연이 닥치면 곧 얻었던 과(果)를 잃어버리는 자이니 아라한 중 가장 근기가 둔한 자이다.

둘째, 사법(思法)이란 얻은 아라한과를 잃게 될까 두려워 자살하여 얻은 과를 지키려는 자이다.

셋째, 호법(護法)이란 얻은 법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키지만 만일 조금만 나태해도 곧 물러나고 잃어버리게 되는 자이다.

넷째, 실주법(實住法)이란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물러나지 않고, 또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자이다.

다섯째, 승진법(昇進法)이란 수행을 능히 감내해 움직이지 않는 경지를 빨리 증득하는 자이다.

여섯째, 부동법(不動法)이란 어떤 역경계를 만나더라도 수행의 의지와 갖가지 삼매의 인연이 부서지지 않는 자이다.

일곱째, 불퇴법(不退法)이란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얻은 법의 공덕을 잃지 않는 자이다.

여덟째, 혜해탈(慧解脫)이란 지혜를 방해하는 번뇌를 끊어 지혜의 자유를 얻은 자이다.

아홉째, 구해탈(俱解脫)이란 선정과 지혜를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끊어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모두 성취한 자를 말한다.

이같이 아라한을 아홉 종류의 위계나 종류로 구분하는 것은 초기경전인 한역 아함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 같은 종류와 위계가 처음부터 설해졌는지, 아니면 초기경전에 속해 있더라도 후대 부파불교의 아라한 사상이 더해진 것인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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