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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화선의 효시 : 지눌과 혜심 ②
지눌, 선·교 대립 극복하고 개혁안 제시 노력
2017년 08월 30일 (수) 18:01:28 이덕진 01081101@hanmail.net

대혜 종고(大慧 宗杲, 1089∼1163)는 송대(宋代) 선(禪)이 이전의 형식만을 답습한 결과, 당대(唐代) 조사선(祖師禪) 이후,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채 문자선화(文字禪化) 되면서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 그대로가 하나의 공안으로 이루어지는 현성공안(現成公案)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상황을 대단히 개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당한 공안선(公案禪)인 간화선(看話禪)을 제시해 조사선 본래의 전통을 계승하고 송대 선의 분위기를 일대 혁신하려고 한다.1)

조사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돈오해탈(頓悟解脫)을 구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즉 견문각지(見聞覺知)의 한 생각 중에 공성(空性)을 단박에 깨달아 일시에 해방되는 일념해탈(一念解脫)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이때 조사선에서 표방하는 일념해탈이 일념 가운데 바로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돈오적(頓悟的) 의미의 일념성불(一念成佛)사상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육조 혜능(638∼713)이 “그러므로 알아라. 깨닫지 못한다면 부처조차도 중생이요, 한 생각에 깨달으면 중생이라 할지라도 부처이다. …… 그러므로 마음을 알아 자성(自性)을 본다면 스스로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있다.”2)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3)

대혜가 체계화한 간화선의 화두 공부법은 일찍이 조사들이 행했던 기연(機緣)과 문답(問答)에 그 방법적 단서들이 이미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한 조사선의 종지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조사들이 활용한 수단에 근거하여 대혜가 고안해 낸 틀이 바로 ‘화두(話頭)’라는 관문(關門)이다.4) 다시 말해서 ‘화두를 간(看)하여 본래 성품자리를 바로 보는 선(禪)’이 바로 간화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들의 깨달음의 기연을 화두로 결택하여 그것을 참구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 번뇌를 탕진하고 바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적극적 선수행방법인 간화선은 조사선의 핵심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5) 그렇기 때문에 간화선은 조사선이 강조하는 견성체험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조사들이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보였던 말길이 끊어진 말씀을 화두라는 형태로 잘 정형화해서 이 화두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깨치게 하는 탁월한 수행법이다.6) 그런 의미에서 조사선과 간화선은 동일한 함의를 가진다.

신라 말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智山門, 821)에서부터 고려 초 긍양(兢讓)의 희양산문(曦陽山門, 935)에 이르기까지 115년에 걸쳐 세워진 구산선문(九山禪門)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선문이자, 현재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원류이다. 신라 후기에 선법을 개산한 각 산문의 개조들은 거의 모두가 다 조계 혜능(曹溪 慧能)의 법을 이은 남종선(南宗禪, 祖師禪) 계열의 홍주종(洪州宗) 마조 도일(馬祖 道一, 709∼788)의 손제자이다. 고려 초에 개산된 수미산문(須彌山門)과 희양산문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산문은 9개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모든 산문이 조계혜능을 종조로 삼고 그 남종선의 법을 참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선법은 남종선, 즉 조사선을 그 원류로 한다.7)

그러나 다른 한편 구산선문의 선사들은 화엄불교(華嚴佛敎)에 바탕을 두고 조사선을 수용하고 전개하였다. 다시 말해서 구산선문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은 교학불교의 모순과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중국의 조사선 사상을 우리나라의 상황에 연계해서 주체적으로 수용한 점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때 화엄학의 대가들이었고 당대 불교의 풍토나 민중의 의식 또한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비록 조사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 땅에 심었지만, 한국불교의 독특한 가풍 속에서 중국과는 달리 조사선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말여초의 선풍은 선과 교를 원융(圓融)하는 구조 속에서 조사선을 선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사선을 중심으로 선과 교를 아우르는, 심지어는 선의 여러 가지 다른 가풍들마저도 수용하는 융화의 특징은 이후 간화선 도입 이후 고려조나 조선조에도 계속 이어져 오늘날 한국불교만의 독특한 선풍이라고 회자(膾炙)된다.8)

12∼3세기의 고려불교는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사이의 불필요한 분열로 가득 차 있었다. 교가(敎家)들은 제 마음이 깨달아 들어가는 비밀한 법인 선이 있음을 믿지 않고 번쇄하게 광혜(狂慧)와 건혜(乾慧)만을 추구하였고,9) 선승(禪僧)들은 문자나 교설을 무조건 불필요하다고 여겨 선수행의 이론적 기초를 분석한다는 시도를 일체 배격하고 치선(癡禪)과 광선(狂禪)에만 골몰하였다.10) 따라서 지눌은 선종과 교종 사이의 대립과 불일치를 극복하고 그 대안으로서의 개혁안을 제시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눌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원했다. 그리고 그러한 개혁이 번잡한 세속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경(開京)이라는 정치적 중심지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곳에 은둔의 장소를 구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평생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보살행을 추구하였다. 지눌이 현실세계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지양한 이유는 청정성을 상실한 세간 불교에 대한 실망도 원인이겠지만, 그의 태생적 성향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

지눌은 이론적인 면에서 자성(自性)의 돈오(頓悟)와 오후수(悟後修, 漸修)를 설파하고, 실천적인 면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라는 수행공동체를 조성하고 운영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 즉 하나의 모범적인 불교적 도덕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혼란한 세상과는 다른 하나의 불교적 이상세계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보살행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11)

지눌은 외향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내성적이며 지적인 인간이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그의 선적 세계는 외향적이고 단순하며 직설적이고 호방한 모습을 지니는 조사의 모습보다는, 내성적이며 복잡하고 고독하며 세밀한 학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의 선적 사유체계는 호방하기보다는 세밀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조 도일이나 임제 의현(臨濟 義玄, ?〜867)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조사선사들과는 많이 다르다.

임제가 말하는 바의 무위진인(無位眞人, 無依道人)에게는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닦을 것도 없으며, 증득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것이다. 오직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일체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재함을 얻고자 하는 주인공만 있을 뿐이다. 임제는 마치 전쟁에 임하는 영웅적인 무사와 같다. 따라서 교학도 조사도 만나면 단칼에 잘라 버린다. 하지만 지눌은 임제나 다른 조사들처럼 교학을 만나면 교학을 죽이고, 선사를 만나면 선사를 죽이지는 않는다. 그는 임제의 할(喝)이나 덕산의 방(榜) 대신에 고요하게 공부하고 수용하며 비판하고 분석함을 통하여 융합한다.

주) -----
1) 이덕진, <간화선의 ‘구자무불성’에 대한 일고찰>, 《한국선학》 1호(서울: 한국선학회, 2000), p.189.
2) 종보(宗寶) 편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대정장(大正藏)》48권, pp.340b∼340c. “故知不悟卽是佛是衆生, 一念若悟卽衆生是佛, …… 識心見性 自成佛道.”
3) 월암, 《돈오선》(서울: 클리어마인드, 2008), p.492.
4) 김영욱, 《진각국사어록 역해 1》(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4), p.11.
5) 월암, 《간화정로》(서울: 현대북스, 2006), p.229.
6)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 《간화선》(서울: 조계종출판사, 2008), p.32.
7) 이덕진, <한국 선불교의 효시, 구산선문>, 《오늘의 동양사상》6호(서울: 예문동양사상연구원, 2002), pp.192〜211.
8)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조계종사》(서울: 조계종출판사, 2006), pp.131∼133.
9)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보조전서(普照全書)》(서울: 보조사상연구원 편, 1989), p.117우. “予見敎學者 滯於權敎所說 眞妄別執 自生退屈 或口談事事無碍 不修觀行 不信有自心悟入之秘訣.”(이하 《절요》로 표기)
10) 《절요》, 《보조전서》, p.103우. “予觀今時修心人, 不依文字指歸, 直以密意相傳處爲道則溟涬然, 徒勞坐睡, 或於觀行, 失心錯亂. 故 須依如實言敎, 決擇悟修之本末, 以鏡自心, 卽於時中觀照, 不枉用功爾.”
11) 이덕진, <보조 지눌의 선사상 연구>(서울: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9), p.41.

이덕진 |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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