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 작가가 모처럼 은둔을 깨고 장편소설 《하루코의 봄》(실천문학사 간)을 발표했다.


《하루코의 봄》은 퇴물 호스트들이 여자들을 상대하는 유흥주점인 ‘아빠방’을 중심으로 모여든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당시 심사위원들은 유응오 신인작가를 향해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강력하다. 하이틴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는 에너제틱한 모습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유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거침없고 패기 있는, 그러면서도 탄탄하고 내공이 깊은 작가 특유의 문장은 책장이 넘어가는 줄 모를 만큼 매혹적인 가독성을 뿜어낸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속사포처럼 등장하는 이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별적으로는 하나의 단편소설이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장편소설이 된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꽃과 꽃이 어우러져 꽃밭을 이루는 화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어딘가에 하나씩 중독돼 있는 ‘루저’들이다. 일본의 룸살롱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하루코는 속도광이고, 불새는 한때 호스트바의 에이스였지만 도박에 중독돼 인생을 말아먹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한 형의 기억을 안고 사는 판돌이는 레코드판을 즐겨 듣는 편벽이 있다. 고아 출신 깡패 승룡은 마음이 적적할 때마다 산사를 찾는다. 게이인 떨이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난주는 홍콩에 가서 화보집을 살만큼 장국영의 팬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본명이 아닌 별명이나 가명으로 불린다. 특히 고아원에서 지어준 가명인 준수 대신 조직의 보스가 지어준 또 다른 가명을 쓰면서 살아가는 승룡의 모습은 한 번도 중앙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주변인의 초상이다.

소설 제목은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인 ‘하루코’의 ‘봄날’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루코’에서 ‘봄이’로 이어지는 저릿한 생의 유전을 의미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를 읽으면서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높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 떨이의 모습과 상처입은 몸으로 찾아간 산사에서 무상 스님으로부터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의미에 대해 듣는 승룡의 모습에서는 종교적인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나락 끝에서 만났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구효서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들짐승 같고, 그 들짐승의 배를 갈라서 꺼낸 시뻘건 간 같고, 그 간을 굵은 소금에 찍어먹는 백정 같다. 이 작품에는 그런 야생적이고 즉물적인 사람들이 도심의 밤거리를 활보한다. 크게 보면 서사는 사람들이 만나서 만드는 사건이거나 그 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인데, 소설 속 인물들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찧고, 까불고, 피터지게 싸우는 게 고작이다. 대신 작가가 천착하는 것은 인물들이 만날 수밖에 없는 내력이다. 이 대목에서 글(文)이 아닌 말(語)로 전승(口傳) 되었기에 외려 더욱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속요(俗謠) 속 인물들의 처절한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다.

유 작가의 등단 당시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성석제 작가도 추천사에서 “작가가 등단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내게는 이번 작품이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은 등단작 <요요>의 10대 아웃사이더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40대 루저가 되어서 아빠방으로 모여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대의 가출 팸에서 40대의 대안가족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거리를 유랑하는 무리이다. 비록 꽃과 꽃이 어우러져 꽃밭을 이루는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나, 꽃피는 시간마저 지나버린 꽃들의 이야기여서 애처롭고 처연하다. 한없이 낮은 밑바닥의 사람들만 모인 이 인생의 파장에는 주객이 따로 없다. 낮아질수록 외려 높아지는[向上一路] 역설만 있을 뿐”이라고 평했다.

작가 유응오는 불교계 언론사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조계종 시골 큰 절에서 시봉하는 일을 거들며 힐링의 삶을 살고 있다.

유응오 장편소설/하루코의 봄/실천문학사/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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