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통계청은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한국에서 불교신자 수가 300만 명이 줄어 들었다고 발표했다. 반면 꾸준히 신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서 제1의 종교 지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해결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계의 적폐청산이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교수불자연합회(회장 · 심익섭 동국대 교수, 이하 교불련)는 지난 17~18일 진각종 총인원에서 불기 2561(2017)교수불자대회를 ‘전환기 한국불교’를 전체주제로 개최했다. 한국불교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식에서다.
이러한 의식을 반영해 17일 입재식을 마친 교불련은 오후 3시부터 박광서 서강대 명예교수<사진>를 초빙해 ‘오늘의 시대정신과 불교지도자의 역할’을 주제로 특별강연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이루어진 박광서 명예교수의 발제문을 요약해 지상중계한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달라져야 하는 부문으로 먼저 양극화(불평등)를 꼽았다. 금·은·동·흙수저론에 이어

이젠 다이아몬드 수저론까지 등장했다는 우리나라의 양극화 현상은 대졸자 실업률과 고용불안률 1위에 더욱 불안하다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척결도 중요한 요소로 내세웠다. “부패는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독소다”는 박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전 세계적으로 54위로 역대 최악이었고, OECD 34개 국가 중 29위로 부패국가로 낙인찍혀 있다”고 밝혔다. 이대로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어려우므로 사회 신뢰도 회복을 위한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는 공공성 제고가 절실하다고 했다. 고질적 은폐문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미래세대에 전가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고유한 사회기능을 해내야 할 종교계의 종교지형을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개신교가 제1의 종교가 된 사실을 상기하고 종교의 권력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례로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동원하는 심리상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정치에 뛰어든 종교, 종교에 뛰어든 정치. 부도덕한 정권과 탐욕스런 재벌 간의 유착에 신정을 꿈꾸는 기독교가 가세해 서로 숙주가 되어 빚어낸 정경교 삼합의 기묘한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민낯이라는 박 교수는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어지럽히면서 종교인과세의 유예 등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조계종단 내에 ‘적폐청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박 교수는 종단개혁연석회의가 제시한 적폐사례를 소개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마곡사 금권선거, 용주사 주지 범계행위, 적광 스님 폭행과 인권유린, 종단 비판 스님 제적과 범계 행위자 사면 남발, 불교언론 탄압, 동국대 사태, 총무원장의 범계비호와 인치주의 운영, 정교유칙과 총무원장의 권력 및 제도의 사사화(私事化) 등을 들었다. 이들 적폐의 청산을 위해 12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중 사부대중의 바람대로 순조롭게 해소될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 교수는 “보신에만 능해 교단 내 권력 잡기 놀이에 취한 사람은 지도자 위치에 있어선 안된다”면서 “선대의 유산만 끌어안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유유자적 삶을 이어가는 부류들이 물러나도록 해야 하는 게 불교계 적폐청산 제1호다”고 주장했다.

“한국불교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박 교수는 ‘맑고 따듯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기꺼이 마중물이 되겠다는 불자의 초심과 원력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재가자의, 재가자에 의한, 재가자를 위한 불교는 가능한가”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불교사에서 불교와 사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신불교운동의 큰 바람을 일으켰던 만해 한용운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새로운 불교운동에 보태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오랜 원력사업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 싱크탱크로 연구소라는 것. 세계 최강국일수록 각 분야의 고급 두뇌들이 모인 연구소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불교가 미래사회의 종교라는 확신이 있다면, 적어도 한국사회를 어떻게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할지, 반대로 한국불교를 어떻게 분석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흐름으로 유도할지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전임연구원은 다양한 분야의 박사급 전문가 20~30명 정도로 구성되어야 하고, 매년 수십 건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어 사회 각분야 또는 불교계가 관심을 가질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인재양성을 꼽았다. 이제라도 불교적 세계관 · 인생관으로 무장하고 공공의식과 사회참여 의식이 높은 재가지도자를 다양한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것만이 불교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불교학자가 되라거나 평생 불교공부만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오히려 정치 · 행정 · 기업 · 언론 · 교육 · 의료 · 복지 · 과학 · 문화 · 예술 · 연예 · 체육 · 종교 · NGO활동, 심지어 군대까지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10대부터 30대까지 미래지도자가 될 만한 인재 수백 명을 찾아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훈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던 1993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을 빌려 “부처님 가르침 빼고 다 바꾸자”는 박 교수는 “사회를 보듬고 선도하는 불교가 되기 위해 ‘변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우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던 전 일본 민주당 간사장 오자와 이치로의 좌우명이 불교계에 새바람으로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이대로는 안된다. 불자는 달라져야 하고, 불교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산중에 갇혀 있거나 경전 속에 묻혀 있어서는 안된다. 가르침 따로 행 따로, 종교 따로 삶 따로라면 그 가르침이나 종교는 이미 개인이나 사회를 이끌어 갈 힘이 없는 죽은 가르침이며 종교이다. 불국정토의 구현, 즉 사회의 불교화는 불교의 사회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중략) 우리는 재가이기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재가이기에 더 효율적으로 해 낼 수 있는 불사(佛事)를 폭넓게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여야 한다. 삶의 현장이 곧 수행의 장이라는 투철한 결사정신으로 세계인이 함께 하는 불교, 21세기를 책임지는 불교, 시민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불교,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불교로 새롭게 힘차게 펼쳐질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한다.”

박 교수는 1991년 재가결사모임인 ‘우리는 선우’ 결사문(結社文)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날 발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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