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안보 시절(1980~1985)의 장욱진 화백. <사진=인사아트센터>

장욱진 화백(1917~1990)은 박수근, 이중섭 화백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중 한명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소박하지만 그 속에는 가족과 아이가 있고, 산과 나무가 있으며, 소와 돼지, 개, 까치가 있다.

장욱진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들을 만나는 전시회가 열린다.

가나문화재단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은 서울 종로 인사동 소재 인사아트센터에서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전시회를 이달 27일까지 개최한다.

덕소 시절(1936~1975), 명륜동 시절(1975~1979), 수안보 시절(1980~1985), 신갈 시절(1986~1990)로 나누어 구성한 이번 전시회에는 유화, 먹그림, 목판화, 도화 등 장 화백의 작품 100여 점이 관람객들을 만난다.

▲ 진진묘, 33x24cm, Oil on canvas, 1970(왼쪽). 팔상도, 35x24.5cm, Oil on canvas, 1976.(오른쪽) <사진=인사아트센터>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불교를 소재로 한 장 화백의 작품들이다. 장 화백은 61세 때인 1977년 경봉 스님에게 ‘비공(非空)’이라는 법명을 받은 불자로서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서울화랑을 경영하던 김철순 대표의 권유로 선(禪) 목판화를 남겼고, 불교학자 백성욱 박사와 함께 사찰을 자주 찾던 1976년 무렵엔 부처님 일대기인 ‘팔상도’를 그렸다. 이듬해에는 법당 건립 기금을 마련하려고 백자에 도화를 그려 비공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70년 부인 이경순 씨가 독경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진진묘’는 그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은 그림이다.

‘진진묘’는 불교를 소재로 한 장 화백의 첫 작품이다. 명륜동 집에서 부인이 여느 날처럼 독경하는 것을 본 장 화백이 곧장 덕소 화실로 내려가 1주일간 먹고 마시지 않으며 그린 작품이다.

부인을 광배를 상징하는 타원형 공간 안에 서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간결하고 압축된 선으로 사람의 형태를 표현한 것은 내면의 본질과 믿음을 표현하고자 한 의도다. 부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수행에 힘쓰는 부인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장 화백은 이 그림을 그린 뒤 몇 달 간 몹시 앓았는데, 그것을 불길하게 여긴 부인이 다른 이에게 팔았다고 한다.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한 화가는 두고두고 아까워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 작품은 장 화백이 직접 그림에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작품이다. 작품명 ‘진진묘(眞眞妙)’는 부인 이순경 씨의 법명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장 화백의 선 목판화 24점도 선보인다.

▲ 장욱진 선 목판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김철순 서울화랑 대표는 한국 선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판화집을 구상하는데, 이 기획을 전해들은 장 화백은 판화 제작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장 화백은 1973년부터 3년간 50여 점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중에서 25점을 골라 김영균에게 판각을 맡겼다. 그러나 목판화집은 판화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출간되지 못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김철순 대표가 1990년 늦가을 다시 출간을 준비하지만 장 화백이 갑자기 별세해 다시 무산됐다. 5년 뒤 유족과 장욱진기념사업모임이 다시 사업을 추진해 완성했다.

장욱진 화백의 먹그림도 소개된다. 장 화백은 수묵화를 ‘먹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림에는 동·서양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유화와 함께 먹그림 작업을 병행했는데 일필휘지로 먹그림을 그려내면서도 먹물의 농담, 붓의 움직임, 결의 모양 등 모필의 일회성을 잘 표현해냈다고 한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는 장 화백에게 감화를 입은 최종태 조각가, 오수환 서양화가, 윤광조 분청작가가 선배를 기리는 ‘방외 후배 삼인전’을 전시회 기간 동안 함께 개최한다. 이들은 조각, 도자, 평면 작품 40여 점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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