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스님.

만해 한용운 스님의 사상은 서구 근대사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다면 스님은 서구 근대사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갔을까?

《불교학연구》 제51호(불교학연구회 간)에 게재된 정혜정 원광대 HK연구교수의 논문 <만해 한용운의 불교유신사상에 나타난 ‘주체적 근대화’와 마음수양론>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정 교수는 이 논문에서 “만해 스님은 한국불교의 전통적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서구 근대사조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토착적 근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만해 스님은 자유주의, 평등, 박애, 구세주의, 세계주의, 사회진화론, 사회주의 등 서구 근대사조에 주목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해 스님에게 자유는 정치적, 종교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 진리와 깨달음에 이르는 근원적 자유를 내포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만해 스님에게 자유는 개인적 자유와 공유적(公有的) 자유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것은 ‘공유적 진아(眞我)’와 ‘각구적(各具的) 진아’의 동시성을 의미하고,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 총칭된다. ‘유아독존’은 전체를 아우르는 독존이기에 걸림 없는 자유요, 자타가 없는 평등의 진아라는 설명이다.

사회진화 또한 서구 근대사조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만해 스님에게 사회진화란 우승열패,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진화가 아니라 ‘해탈의 힘’에 의한 사회진화를 의미했다. 스님은 우승(優勝)이란 강식(强食)이나 독식(獨食)이 아니라 ‘만물을 애육(愛育)하는 자’이며, 열패(劣敗)란 사회에 대하여 ‘힘을 제공할 의무를 소실한 자’이다.

불교사회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정 교수는 “마르크시즘의 경제혁명과 달리 만해 스님의 불교사회주의는 생명의 우주혁명이자 불국토의 실현을 통한 사회진보이며, 불교의 민중화와 공익을 향한 사회참여가 특징”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만해 스님이 서구 근대사조를 받아들이면서도 ‘선(禪)을 통한 마음수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았다고 강조했다.

만해 스님이 일체법이 모두 불법(佛法)이기에 박학다식(博學多識), 다문광학(多聞廣學)하여 법장을 수호할 것을 주장하며, 근대 동·서양의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보통학을 겸비한 인문학의 창도로서 불교학을 강조하면서도 마음수양을 우선할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심적 수양이 없는 자는 학문의 사역이 되고, 지식만 있고 수양이 없는 자는 지식의 사역이 된다”며, 마음을 수양해 자득할 것과 모든 행동의 실천이 수양의 산아(産兒)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끝으로 만해 스님을 “불교학의 학문적 재정립을 시도하고 보통학의 겸비와 더불어 마음수양을 우선시하면서 주체적 근대화를 도모한 새로운 문명의 창도자”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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