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워싱턴 법과대학에서 교환학생 2년 과정을 10개월만에 이수한 불자 윤희원 양이 교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한 독재정권의 북한 주민 권리침해와 정치범 억압, 식량 불평등 개선 등 북한 주민의 권익향상과 관련된 일들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미국 북한인권위원회(The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인권위원으로 선임된 윤희원 양(31)은 세계인권과 환경문제가 갈수록 중요시되는 현 시점에서 국제적 안목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매우 기뻐했다.

희원 양은 전주 상산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법학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간 수재다. 그녀는 같은 대학 로스쿨 졸업 1년을 남겨두고 지난 해 워싱턴 법과대학교(American Univercity Washington College of Law)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들어갔다. 2년 과정을 불과 10개월 만에 이수할 정도로 그녀는 놀라운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먼저 국제법 실무를 익히고자 문을 두드린 곳이 북한인권위원회. 이곳의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Greg Scarlatoiu)가 최근 북한인권실태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현할 정도로 북한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곳에 지원서를 내자 북한인권위원회는 그녀를 적극 반기며 당초 6개월 정도 일하려는 그녀에게 1년간 활동을 주문했다. 그녀의 뛰어난 학업성취도와 자신감을 관계자들이 높이 샀다는 전언이다. 국제법을 연구하거나 국제변호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겐 경쟁률이 치열한 곳이다. 더욱이 교민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북한인권위원회에 선발된 것은 희원 양이 최초다. 이렇듯 어려운 관문을 뚫고 희원양은 지난 20일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희원 양이 담담할 역할은 법률연구지원이다. 이를테면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협약을 태만히 하거나 어겼을 경우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국제법과 이해당사자국간의 법률을 검토해 북한인권위원회에 보고하는 역할이다. 북한인권위 이사들의 구성은 대부분 미국 CIA 정보기관 출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배울 것이 많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다.

돌이켜보면 희원 양이 교환학생으로 가는 데에는 충주 흥령사 주지 도완 스님의 보이지 않은 입김과 손길이 작용했다. 희원 양의 어머니 전선옥 여사는 원래 기독교 모태신앙인이었다. 희원 양이 성균관대 재학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다. 중간중간 어려움도 있었던 터에 로스쿨 제도 시행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희원 양에게 혼란을 부추겼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전 여사에게 한 지인(知人)이 도완 스님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도완 스님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자 9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열었던 영월 법흥사 주지로 있었다.

도완 스님은 전 여사를 보자 대뜸 “복 짓는 일을 하라”고 했다. 기독교 신자로 교회를 다니며 나름 복 지을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씀이 전 여사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는 가르침이자 화두로 남고 있다. 복 짓는 일이란 단순히 거지를 도와주라는 게 아니라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라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전 여사는 욕심이 가득 차 있는 자신에게 도완 스님이 깨우침을 줬다고 생각한다.

전 여사와 희원 양은 사법시험을 앞두고 조계사에서 처음으로 3천배를 했다. 1천 배, 1천 배, 너무 힘든 나머지 마지막 1천 배는 내일 해야 되겠다고 주저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격려했다. “주저앉지 말고 오늘 마쳐라. 용맹정진에 불퇴전은 없다”란 말에 희원 양은 입을 앙다물고 3천배를 채웠다.

이 덕분일까. 희원 양은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2차에서 떨어졌다.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이런 즈음 법흥사 주지직 소임을 마치고 충주시 앙성면 보련산 자락에 있는 흥령사(구 성주사)에 주석하고 있는 도완 스님을 찾았다. 이곳에서 두 모녀는 날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는 한편 도완 스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희원 양에 대한 인생상담이었다. 도완 스님은 희원 양에게 흥령사가 한반도 중원에 자리한 사찰로 국제적 인물을 배출할 지세(地勢)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흥령사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그 정기를 받아 세계적 인물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충주 출신이라고 했다. 처음엔 스님의 이런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곤 무심히 시간은 흘러갔다.

다만 분명한 것은 흥령사에서의 기도와 도완 스님과의 인생상담 이후 희원 양의 삶이 기쁨과 자신감으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로스쿨에 합격하면서 국제법 연구로 진로를 결정했다. 매사 자신감을 갖게 되자 성적도 최우수를 찍었다. 이 때 지도 교수가 워싱턴 법과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추천했다.

▲ 평화로운세상만들기 이사장 도완 스님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인 지난 해 8월 5일 희원 양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완 스님과 상의했다. 스님은 “희원이는 국제적 인물로 커야 한다. 흥령사 불자로서 이 절의 정기를 받아 국운을 위한 큰 인물이 돼야 한다”면서 교환학생으로 무조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해 8월 5일 스님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평화로운세상만들기 이름으로 장학금 2백만원을 전달했다. 당시 전 여사로선 비행기표도 끊어주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다.

희원 양은 낯선 미국 땅에서도 잘 적응했다.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면서 도완 스님은 희원 양에게 틈틈이 《금강경》을 읽을 것을 주문했다. 그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힘들 때마다 삼천배와 금강경을 떠올린다. 요즘엔 국제적 인물이 될 것이라는 도완 스님의 말씀이 실감된다.

그녀는 북한인권위원회 활동과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국내로 돌아와 로스쿨을 졸업할 예정이다. 북한인권위원회 활동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노하우’로 남아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인권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그녀는 다짐한다. 어머니 전 여사 또한 지금은 하는 사업이 술술 풀려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다. 지금도 틈만 나면 흥령사를 찾아 기도하고 있다. 희원이가 역할을 마치고 귀국하면 가장 먼저 흥령사 부처님을 찾아 큰 절을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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