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스님께서는 불교, 문학, 논설 등 그 저술의 범위와 활동 영역이 넓으셔서 선사(禪師)로, 문학가로, 항일 독립투사로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스님께서 열반하신지 73주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의 기쁨을 누려보시지도 못한 채 해방 한해 전인 1944년 입적하셨습니다. 만약 광복(光復)의 순간을 목도하셨다면 또 다른 한용운 스님의 생명력 넘치는 글들과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행적들을 만나뵐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은산철벽 같은 암울한 식민지 상황 속에 인고의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스님은 이 나라, 이 민족이 해방되어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될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른 봄 적은 언덕
쌓인 눈을 저어 마소
제 아무리 차다기로
돋은 엄을 어이 하리
봄옷을 새로 지어
가신 님께 보내고저
새 봄이 오단말가
매화야 물어보자.
눈바람에 막힌 길을
제 어이 오단말가.
매화는 말이 없고
봉오리만 맺더라

봄동산 눈이 녹아
꽃뿌리를 적시도다.
찬바람에 못견대는 어엽분 꽃나무야
간 겨울 나리는 눈이
봄의 사도(使徒)이니라.
(早春, 1936. 4. 4. 조선일보)

조춘(早春)이라는 시조에서도 보이듯이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는 당면한 현실의 시린 고통과 아픔은 결국 해방될 조국의 전령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격동의 시기를 보내신 스님은 당신이 뿌리내리고 있던 전통의 터전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시고, 또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을 이론의 틀 안에 가두지 않으시고, 역사의 현장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앎과 삶의 조화를 이루며 수행자(禪師), 종교인으로서 삶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셨던 한용운 스님의 행적은 다문화, 다종교 상황이라는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 가치관의 혼돈과 현실적 어려움 등 또 다른 제국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묵은 것과 새로운 것, 뿌리 내리고 있는 것과 새롭게 이식되는 것이 어떻게 조화롭게 만나 당대 문화에 합당한 몸짓으로 거듭나 창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학원은 재단 설립조사 가운데 한 분이신 만해 스님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매년 추모행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희망의 날들, 만해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추모일을 즈음하여 학술제와 예술제에 이어 오늘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치열한 자기 쇄신의 숭고한 정신과 뜻을 받들어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61(2017)년 6월 29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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