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사회자 박인석 박사, 발제자 유지원 연구원, 토론자 전재강 안동대 교수.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시문창작에 있어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한국선학회(회장 ·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23일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 빌딩 5층 한국포교사단강당에서 ‘북송시대 공안집의 출현과 선사상’을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두 번째 발제자로 나온 유지원 연구원(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소동파 시문과 공안(공안)의 비유적 수사 용법-《경덕전등록》 용전(用典) 중심으로’란 주제에서 이같이 밝혔다. 유 연구원은 “불교에 있어서 비유의 상징성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불립문자를 기치로 하고 직관과 깨달음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면서 “공안은 고인이 응대한 기연(機緣)기록으로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 주제가 되기도 하고 참구 대상이 되기도 하며 공부 정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유 연구원은 “소동파는 시 창작에 있어서 비유에 뛰어났다”면서 “특히 ‘공안’ 전고(典故)를 활용한 작품은 그 뜻을 되새기게 하는 여운이 있었고 선불교의 활구(活句)와 같은 효과를 주었다”고 강조했다. 비유에 비유를 거듭하는 ‘박유(博喩)’의 수사방법은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치면서 해학적이고 웅변적이었다는 것이다. 또 소동파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풍부한 인생경험,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재주와 학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유 연구원은 “인생 전반에 걸친 선승들과의 폭넓은 교유 및 탁월한 불교이해와 체험적 참선수행은 그의 정신세계를 한층 더 완성시켰을 뿐 아니라 그의 시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피력했다.

유 연구원은 소동파가 불교와 교유했던 시대적 상황도 언급했다. 소동파는 ‘동파거사’라는 호가 대변하듯이 송대 거사불교를 일으키는데 크게 활약했던 문단의 영수로서 선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재가불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문인보다 불경을 깊이 탐독했고 선체험자로 ‘이선유시(以禪喩詩)’의 시문창작을 적극 지향했다. 소동파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정계에 진출하고 왕안석(王安石)과의 당파 싸움이 일어남을 계기로 대장부로서의 포부가 꺾이면서부터 심경변화가 크게 일어난 데 기인했다. 그는 정치적 불우로 제방을 돌아다닐 때 수행과 덕이 높은 선사들을 찾아 끊임없이 불법을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황주 유배시절에는 선 실참자로서 ‘공안’을 타파하고 후에 자신도 《전등록》에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유 연구원은 무엇보다 소동파의 비유가 탁월하여 고전시가 가운데 ‘비유의 왕’이라 불려진 데 주목했다. 그의 비유법은 신선하고 기발하고 다채로운 것으로 전대 시인들에게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송대 문인들은 ‘박유’라는 수법을 즐겨 썼는데 ‘박유’란 다양한 비유 수법으로 여러 가지 비유어를 써가며 어떤 하나의 ‘시의(詩意)’를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숨돌릴 겨를 없이 비유에 비유가 꼬리를 물고 전개되는 ‘박유’의 사용은 단연 소동파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 한국선학회가 23일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광경.

유 연구원은 동파 나이 50세 때 장방평(張方平 1007~1097)집에서 지은 ‘증안의왕언약(贈眼醫王彦若)’을 예로 들고 “이 시는 ‘안질’ 현상을 ‘허공 꽃’에 비유하여 깨우침을 준다”고 했다. 왕언약은 장방평의 문하생이면서 안과 주치의다. 장방평은 소동파가 구금되었을 때 구명운동을 했던 인물로 눈에 숙병이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다. 유 연구원은 이 시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 내린 결론에서 “우리 몸은 티끌이라 초목과 다르지 않으나 사람들은 외형을 옥처럼 아낀다”면서 “그러나 이 눈과 안질을 둘로 나눌 수 없듯 마음의 눈이 열리면 육체의 병도 스스로 낫게 된다는 요지다”고 고찰했다. 이 시에 나오는 ‘허공꽃’은 《능엄경》과 《전등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확실히 했다.

선가의 공안은 깨달음을 주기 위한 기연의 수단이란 점에서 시문 창작 또한 본색처럼 교화나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한 유 연구원은 “예시된 소동파의 산문체의 장편시는 시의 흐름이 거침없고 군더더기나 잡다함이 없다”면서 “그의 뛰어난 비유적 수사 방법을 통한 ‘공안’ 전고 활용은 비판적인 패러디 효과와 생산적 패러디 효과를 가져다주는 창조적 힘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토론을 맡은 전재강 교수(안동대 국어교육과)는 △논제에서 소동파의 시문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논문에서 시 두 수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 점 △소동파의 시기별 창작활동과 대표적 작품을 제시해 그의 삶이 문학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드러내야 한다는 점 △사용된 문맥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 교수는 또 유 연구원이 소동파에 대해 ‘그의 뛰어난 비유적 수사 방법을 통한 공안 전고 활용은 비판적인 패러디 효과와 생산적 패러디 효과를 가져다 주는 데 창조적 힘이 되었다’는 주장과 관련 “소동파 작품의 어디에 그런 측면이 있는지 구체적 논의를 통해 이를 확장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장만 있고 근거 제시를 통한 세밀한 논의가 없으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날 한국선학회 춘계학술대회는 신규탁 교수가 ‘북송시대 철학의 주제와 방법’이란 주제로 기조발제했다. 이어 김호귀 박사(동국대)가 ‘단하자순송고 고칙의 구조와 그 내용 고찰’을(토론=황금연/동국대 불교학술원), 박영록 교수(한국교통대 중국어과)가 ‘선어록 언어의 몇 가지 측면’을(토론=조영미/성균관대 강사), 명법 스님(은유와 마음연구소 소장)이 ‘공안집의 등장과 참구’를(토론=오용석/원광대 HK연구교수) 각각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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