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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끌려온 짐승"이라던 스님, 결국 정신병원
조계종 승려 등 13명에 폭행당한 뒤 제적, 떠돌이
하루 세 끼 한움큼씩 약 안먹으면 아프고 불안, 불면
적광 스님 "요즘 재가불자들이 나서니 30년 후 희망”
2017년 06월 21일 (수) 15:54:21 불교닷컴 이혜조 기자 budjn2009@gmail.com
   
▲ 경북 한 정신병원에서 4년만에 조우한 적광 스님. 스님은 질문과 대답 내내 거의 고개를 떨구고 촛점 없는 눈빛이었다.

토요일 오후 2시 전날 폭염주의보 때와 비슷한 섭씨 30도. 경북 한 정신병원에서 4년만에 스님을 만났다.

햇볕과 담을 쌓은 듯한 하얀 피부, 부어 푸석거리는 얼굴, 퀭한 눈 속의 동자는 초점이 흐렸다. 반가움도 분노도 슬픔도 모두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한국불교 개혁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들고 눈동자에 힘을 주곤 빙그레 웃었다. 그 때 뿐이었다.

"어디 감히 사미밖에 안된 주제에~종단을 비판해" 한 조계사 신도가 호법부 직원들에게 끌려가는 이 스님을 향해 내지른 한마디였다.

폭행, 제적 4년 사이 송담 스님 탈종 등

그로부터 4년 사이 송담 스님과 제자들이 조계종단과 수행가풍이 다르다며 탈종을 선언하고 제적원을 제출했다. 돈 선거로 시끄러웠던 용주사 주지와 내연녀 사이에 쌍둥이 아들이 있다는 의혹제기가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자승 총무원장 등 5명이 동국대 총장을 호텔로 불러내 차기 총장 선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촉발된 사태는 고공농성과 50일간의 단식, 이사 교수 교직원 동문들의 동조단식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포함한 16명의 상습고액 도박을 폭로한 장주 스님에 이어 종단을 비판한 도정 스님과 영담 스님이 공권정지와 법계 강급을 당했다. 용주사 주지의 돈선거를 폭로한 스님들은 조카뻘되는 후학에게 폭행당한 것도 모자라 중징계에 처해졌다. 올들어 4월 초에는 명진 스님마저 내쳤다. 그 사이에 음주운전을 하건 혼인증명서가 나오건 가벼운 징계나 문서견책에 그친 자승 원장의 측근들과 대조적이었다.

이런 내용들을 보도하며 종단과 자승 총무원장을 비판한 <불교닷컴>, <불교포커스>는 21일 현재 596일째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있다. 심지어 <불교닷컴>과 업무제휴를 했다는 이유로 <불교저널>에 대해서도 출입금지 등의 탄압을 자행했다. <주간불교>는 문을 닫았으며, 자신의 발언을 유출했다는 황당한 이유로 <BTN불교TV>에 대해 한 때 출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작년 통계청은 10년 사이에 불자인구 300만 명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 스님이 종단에서 쫓겨나 민가와 정신병원을 전전해온 지난 4년 동안 조계종단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일부다.

"도살장 끌려온 짐승이었어요... 1,200만원에 합의시도도"

2013년 8월 21일에도 오후2시였다. 10여 명의 스님과 종무원들이 자승 총무원장의 비리를 밝히려던 적광 스님을 우정총국 앞마당에서 자료를 빼앗고 번쩍 들어 총무원청사(국고 190억원을 들여 지은 것으로 현재 박물관 건물에 총무원이 슬그머니 들어와 살고 있으면서 특정한 언론사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지하로 끌고 간 것은 2시 10분. 무전기를 든 종로서 형사들은 물끄러미 처다 보며 철저하게 관찰자를 자임했다.

때 마침 조계종 총무원을 나오던 한 스님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듣고 자승 총무원장과 통화했다. "적광 스님이 강제로 끌려간 것 같은데 신체에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고 하자 총무원장은 "알아보겠다”고 분명히 답했다는 것이다. 또 호법부 한 스님이 "한 놈 정도 확실히 조져놔야 다시는 종단을 비방하는 사람이 안 나타난다. 그래서 때리기로 윗선에서 방침을 정했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적광 스님은 주장했다. 적광 스님이 자승 스님을 폭행교사혐의로 고소한 이유다.

오후 4시 총무원 호법부는 브리핑을 통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폭행을 하냐"며 폭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다만 "해종행위 조사차 연행했으며, 오후3시 20분 적광 사미가 스스로 제적원을 제출하고 제발로 걸어 나갔다"고 발표했다. 하긴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피습을 당한 다음날인 2015년 3월 6일 "어떠한 이유와 목적이라도 폭력적인 방법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연기(緣起)의 세계관과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을 통해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나와 같은 하나로 여겨 모든 대상에 대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발표했던 조계종 아니던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폭행하느냐?"고 했던 조계종

적광 스님에 따르면 그 사이에 "목이 졸리고 숨을 못 쉬게 해 죽음을 느꼈다. 그렇게 잔인한 폭행을 겪을지 몰랐다."고 한다. 목을 짓누른 흔적이 역력했다. 머리, 허벅지, 팔, 가슴 등이 멍으로 파랗게 뒤덥혀 있었다. 며칠 뒤 동국대일산병원에서 만난 스님은 이 말과 함께 "나는 도살장에 끌려온 한 마리 짐승이었다"며 그날 오후 2시10분부터 이어진 고문에 가까운 집단 폭행을 설명하면서 파르르 떨었다.

“연행돼 불교중앙박물관 지하 1층에 들어선 직후 10여 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박물관 지하 2층 호법부 조사실에 가기도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누군가 ‘옷을 찢어’라고 소리쳤고, 옷을 모두 찢긴 뒤 팬티만 입은 채로 집단폭행을 당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됐다. 한 사람이 목을 조르고 다른 사람들이 무치별적으로 폭행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사실상 살인미수였다.” 적광 스님은 짐승만도 못한 호모사케르가 됐다.

지하실에서 다시 호법부로 끌려 올라간 그는 호법부가 작성한 환속제적원에 지장을 찍었다. 훗날 증거로 남기기 위해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제적원에도 묻혔다. 스님은 “호법부 스님들이 물수건으로 피를 닦아준 뒤 준비해 준 옷을 입히고 어딘지 모를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걸을 수가 없어 스님들의 부축을 받았다. 식당에 갔지만 음식을 먹지는 못했다."며 "식당에는 호법부 스님 넷과 자신, 그리고 종로서 형사 2명이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00 정보관은 내가 폭행을 당하기 전 수차례 도움을 청했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적광 스님은 현재 이 종로서 경찰관들을 직무유기혐의로 고소키로 하고 법률자문 중이다.

스님은 이날 오후 6시 조계사 인근 여관에 호법부 스님들과 함께 있었다. 호법부가 건네준 진통제를 잔뜩 먹었으나 오후 9시께 호흡곤란과 통증을 호소하자 호법부 스님들은 그를 동국대일산병원에 입원시켰다.

적광 스님은 1주일 입원기간 동안 호법부가 “돈을 주겠다” “자장암 주지를 보장하겠다” “환속제적원을 없던 일로 해주겠다” 등 갖은 제안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댓가로 “잘못을 반성한다. 자승 원장 체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5만원 신권으로 1,200만원을 합의금조로 받으라고 했으나 적광 스님은 거부했다.

폭행 직후 CCTV하드웨어 교체 "호법부에서 하드 갖고 가"

총무원은 사건 직후 호법부 지하조사실 2곳과 호법부 2곳 등 4곳의 CCTV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 당시 교체 작업을 한 업체 관계자는 <불교닷컴> 인터뷰에서 "호법부라는 곳에서 시스템이 고장났다면서 새 하드를 구비해서 총무원에 들어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들어가서 하드를 교체했다. 그랬더니 호법부 직원이 기존 하드를 들고 가버렸다. 당시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고 현금으로 수리비를 주길래 받고 왔다. 호출한 직원과 하드디스크를 갖고 간 직원 이름도 알고 있다."고 실토했다. 폭행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작업으로 추정된다.

총무원은 "폭행은 계획되지 않았다. 집단폭행은 없었다. 생활고를 호소하기에 병원비를 대납해 준 것일 뿐 금전을 대가로 회유한 사실이 없다. 호법부의 일상적인 업무수행을 총무원장 선거와 연계하지 마라." 등의 답변서를 언론사에 보내 해명했다.

4년 만에 기자를 만난 스님은 "동국대 일산병원에 있을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온 몸이 병들었다. 얼른 갔으면(열반했으면) 좋겠는데..."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노보살 얘기와 자신을 폭행한 13명의 승려를 용서했다는 대목에서 스님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적광 스님과 일문일답이다.

- 현재 가장 마음 아픈 건 뭐예요?
"많지요. 한마디로 힘들었어요. 후회는 안 해요."

- 4년 동안 뭘하고 지내셨습니까?
"오갈데 없어 청송에 조그마한 민가를 얻어 살았습니다. 3년가량. 정신과 통원 치료를 하면서 입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종단에서 폭행당한 직후 동국대일산병원에 있다 포항 자장암에 내려와 1년 동안 있었어요. 비워있었어요."

스님은 원래 자장암 감원이었으나 불국사 스님들에게 쫓겨났다. 당시 SBS '궁금한이야기Y'를 통해 쫓겨난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불교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방송 직후 불국사 측에서도 꺼려했던지 한동안 절을 비웠던 모양입니다. 자장암에 있으면서도 동국대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증세가 심해져 결국 입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종단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그러니 마음의 병이 심해진 겁니다. 종단 상황이 4년 전과 똑같아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종단의 구조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네요.”

- 당시 종로서 경찰들을 왜 고소하지 않았습니까?
"돈도 없었고, 혼자서 하다 보니 활동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 스님이 고소한 승려와 재가자에 대한 재판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이 결정됐는데, 형량을 어떻게 보세요?
"형랑이 낮습니다. 부족해요."

- 자승 총무원장은 폭행교사 관련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만.
"억울합니다. 폭행교사자인데 아무런 처벌 안 받으니까 억울합니다."

- 자승 원장이 폭행을 지시했다고 확신하시죠? 현장에서 한 스님이 지하실로 끌려가는 것을 목격하고 자승 원장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당장 조치해야 한다고 하자 자승 스님이 "알아보겠다"고 하고는 조치하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재판에서 다 밝혔는데 호법부에서 '내가 활동하는 것을 자승 스님이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스님이 내 문제를 목격한 직후 자승 스님과 통화한 사실 등에 대해 제대로 내가 진술하지 못했습니다. 법원 스님과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 두 사람을 주로 수사를 하느라, 검찰에서도 아주 힘들어 했어요. 검찰이 업무가 많은지 다른 데에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 혼자 싸우다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매우 서운했습니다."

- 총무원측에서 이후 스님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무슨 관계입니까?
"추 대표가 한양대 법대 선배입니다."

- 당시 경찰 측에는 미리 얘기 했습니까? 신변보호 요청요.
"미리 신변보호요청 했고, 현장에 종로서 경찰들 5명이 와 있었습니다."

- 경찰들 보는 앞에서 끌려가 폭행 당한 뒤 호법부 직원들과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 끌려갔고, 그 자리에 종로서 경찰들이 두 명 있었는데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 김ㅇㅇ 정보관이라고 아십니까?
"그러니까 기억납니다. 그 사람 그 자리에 있었어요."

- 폭행 후 저녁 식사자리에서 경찰과 호법부 직원간 주고 받은 대화는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스님은 예전 인터뷰에서 식사자리에 동석한 경찰에게 자신이 구타당한 사실을 말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 장소는 어딘지 아세요?
"모릅니다. 고급 식당이었어요."

- 평소 스님 기억력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기억력이 많이 감퇴했습니다."

- 정신과 관련 약을 4년 동안 계속 드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 현재 진단명은 무엇입니까?
"우울증과 불면증입니다."

- 사건 이후 조계종에서 제적되고, 선학원에서 이사장 법진 스님의 상좌로 재수계했는데, 법명은 기억하십니까?
"2015년 4월 부산 금정사에서 수계했습니다. 법명은 운정. 구름 운, 고요할 정. 어떤 일이 있어도 성직은 끝까지 지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선학원 사찰에서 기거하라고 제의가 두어번 왔는데, 몸이 좋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몸이 무척 안 좋아요."

- 당시 지켜보기만 했던 경찰들에 대해 직무유기 등으로 처벌할 생각은 있으신지요?
"처벌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내 힘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 지금도 폭행당한 당시 기억이 나십니까?
"악몽을 꿉니다. 그럴 때면 놀라고 힘들어요. 폭행당하는 장면이 생생합니다. 많이 아팠어요. 악몽에서 깨면 불면으로 밤을 하얗게 샙니다."

- 스님을 집단폭행한 13명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까?
"폭행가담자 가운데는 평소 아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 폭행 후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스님들은 있었습니까?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어서 가담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스님은 '나중에 만나면 묻어버리겠다고 했고, 승려 중에서는 그 사람만 고소했습니다."

- 앞으로 한국불교가 어떻게 변했으면 생각하시는지요?
"시대에 맞게 새롭게, 과감하게 거듭나야 합니다. 스님은 절대적 존재가 돼 있고, 신도들이 기복에 기대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 현실 불교의 부조리, 스님들 책임이 더 큰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스님은 이후 다소 복잡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단답형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루 복용하는 약은 얼마나 되십니까?
"아침저녁으로 한주먹씩 먹습니다. 고통스러우니까 주는 대로 먹습니다."

-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불교가 좀 바뀌면 고통이 훨씬 덜해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감으로 오늘 인터뷰에도 나섰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 때 다잡는 방법은 관세음보살 염불을 통해서입니다.”

- 자승 총무원장에게 해주고 싶은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나보다 훨씬 잘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 조계종 승적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몸이 많이 아파요. 오죽하면 입원했겠습니까. 사실 정신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 노보살(모친)은 스님 상태를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89세의 모친,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마음이 어둡습니다."

-추가로 밝힐 비리나 부조리는 없나요?
"비리를 밝히려다 봉변을 당했습니다. 봉변당한 자체가 현 체제의 부조리를 나타내는 겁니다."

- 폭행 가담한 13명 등 용서했나요?
"마음속으로는 다 용서했습니다. 이게 종교적인 힘입니다."

-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죄가 아니라 한국불교 변화에 대한 지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 용서했다지만 법원 스님은 그 직후에 중앙종회의원에 출마했으나 저지는커녕 당선됐고, 본사급인 선암사의 주지를 맡았습니다. 이세용 실장은 지금도 한국불교 가장 큰 사찰 중 하나인 조계사의 종무실장입니다.
"많이 부당하고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는 찾아가서 골목에서 패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 여러 번 했어요. 1~2년이 지나고 용서했습니다. 다 중생인데 성직자가 돼서 복수를 해선 안 된다. 이런 마음을 굳히려고 애를 먹었습니다."

- 이들에 대한 민사소송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입니까?
"절차도 복잡하고 힘이 달립니다. 주변에서 변호사 등이 도와주면 (진행)하겠습니다."

-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몸이 안 아팠으면 합니다. 몸이 나으면 여행을 하고 싶어요. 약 내성이 생겨서 점점 많이 먹어야 됩니다.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퇴원하고 싶은 데 의사가 퇴원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재가불자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 후 한국불교는 희망이 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동국대일산병원 입원 당시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내가 잘못했다. 사미 밖에 안 되는 내가 .. 앞으로 종단 문제 끼어들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보도했던데 그런 말 한 게 사실인가요?
"그런 말 안했어요. 조작된 겁니다. 너무 속상합니다. 어ㅇㅇ 기자가 사정을 하길래 몇마디 했는데 말을 바꿔서 인성을 상실한 사람으로... 아주 화가 났어요. 인터뷰 자리에는 나를 폭행했던 호법부 상임감찰 두 사람이 붙어 있었습니다."

4년 만에 언론에 첫 모습 드러낸 적광 스님

적광 스님이 폭행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의지한 지난 4년 대한민국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급기야 비선실세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촛불정국에 이어 마침내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지혜의 종교인 불교가 촛불을 든 일반국민보다 더 지혜롭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몇몇 언론과 공동으로 이뤄진 인터뷰를 마치고 상경해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조계사 옆 우정총국 마당에 도착한 것은 새벽2시. 4년 전 적광 스님의 외마디가 생생하다.

"대한민국에서 이건 아닙니다~"

<이 기사는 본지 제휴사인 불교닷컴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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