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황제가 보낸 그림 보고 모란에 향기 없음을 알아채
나비 ‘장수’ 뜻해 …당 태종 모란도 보내 선덕왕 우롱
 

진평왕은 왕비를 마야부인으로 개명한 것을 시작으로 선덕여왕이 즉위할 대의명분을 착착 쌓아갔을 것이다. 마야부인의 아버지 복승갈문왕의 이름 역시 ‘복이 수승하다’고 하여 ‘복이 많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어 즉위한 선덕여왕이 용궁 북쪽의 분황사와 용궁 남쪽의 황룡사, 아도(阿道)가 과거칠불(過去七佛) 중 제5 구나함불(拘那含佛)이 머물렀던 영묘사 등 전불 칠처가람 가운데 세 곳의 중창불사를 단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마야부인의 아들 석가모니와 같은 존재로 즉위한 선덕여왕의 치세는 당연히 신통력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야 했다. 까닭에 그 아버지의 그 딸로 진평왕에 이어 선덕여왕은 그야말로 신통력과 혜안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지기삼사를 연출해 냈다.

그러고 보면 신라 삼보 중 하나인 황룡사 구층목탑 역시 선덕여왕이 아닌 진평왕이 기획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큰딸을 불보살 즉 신성화하려했던 진평왕은 할아버지이자 전륜성왕과 같은 진흥왕의 장육존상이 모셔진 황룡사를 더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죽기 전에 황룡사 구층목탑능 조영할 것을 선덕여왕에게 조언했을 것이다. 따라서 신라 삼보는 진평왕이 자화자찬하며 자작해서 만든 ‘상징물’은 아니었을까?

첫째는 당 태종이 홍색·자색·백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다. 왕이 그림의 꽃을 보고 말하기를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 하며 이에 씨를 정원에 심도록 명하였다. 꽃이 피었다가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당시에 여러 신하가 왕에게 어떻게 그렇게 될 줄 알았는가 물었다. 왕은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는 바로 당제(唐帝)가 나의 짝이 없음을 희롱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꽃을 삼색으로 보냄은 아마도 신라에 세 명의 여왕이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니 선덕(善德)·진덕(眞德)·진성(眞聖)이 바로 이들이다. 당제도 헤아림의 밝음이 있었다.

목단(牧丹)이라고도 하는 모란의 줄기는 높이 2∼3m까지 자라며, 꽃말은 ‘부귀’이다. 송나라 염제 주돈이를 인용한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모란꽃은 쉽게 잘 떨어지는데 아침에 곱게 피었다가 저녁이면 그만 시들기도 하니 부귀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다. 모양은 화려하나 냄새가 좋지 않아 가까이 할 수 없으니 부귀란 참다운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비유한다”고 한 바 있다.

모란은 부귀의 상징이며 모란은 향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기가 없다고 한 것은 당시에 아무도 모란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있었다면 무향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기의 거짓말은 당 태종이 보내준 모란을 심고 나서 얼마 후에 탄로 났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냄새가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되는 ‘지록위마’가 가능한 카리스마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알아서 모두들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쇼를 했을 것이니 부처님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선덕여왕도 비염이나 축농증이 심해서 냄새를 못 맡았을 가능성도 있다. 혹시 고귀한 몸이라서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려서 냄새를 못 맡았을까?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향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중국인들은 모란도에 나비를 그렸는데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나비는 80세라는 장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나비가 없다는 것은 장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 태종이 ‘모란도’를 모르는 신라 여왕을 우롱한 것이 된다.

특히 중국인들은 모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명대 탕현조의 희곡 《모란정황혼기》에는 “모란꽃 아래에서 죽어 풍류를 다한다”라는 시가 나온다. 그런 뜻에서 지금 부귀를 잘 누리고 있지만 하루만에도 지는 모란처럼 얼른 죽으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다. 홍색·자색·백색 역시 색을 밝히는 홍색, 부처님의 색인 자색, 순결의 색인 백색으로 선덕여왕의 밤 생활이나 남자 편력을 비꼰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르게 부처님인 척, 순결한 척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희롱한 것이 더 당 태종다운 해석일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태종이 마치 선덕(善德)·진덕(眞德)·진성(眞聖) 세 여왕이 나올 것을 예견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각국존 일연 스님이라면 이런 수준으로 해석했을 리가 없을 듯싶다. 아니면, 굳이 해야 될 필요가 있었을까? 여하튼 지기삼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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