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성이 있어서 수행하면 불퇴전에 들게 되고, 더욱 정진하여 불도에 들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불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퇴전하고 심지어 악도에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퇴전하게 만들고 보리심을 파괴해 버리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열반경》에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퇴전하게 하는 13가지 법을 밝히고, 보리심을 무너뜨리는 여섯 가지 법을 설하고, 보리심에서 물러나게 하는 다섯 가지 법과 두 가지 법을 아울러 설하고 있다.

먼저, 불성에서 퇴전하는 13가지가 있다.

첫째, 믿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있지만, 마음속에 부처님 교법에 대한 믿음을 내지 않으면 자연히 퇴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곧 삼보에 대한 믿음,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계율을 지키지 않고 나태해지면 선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선정을 이루지 못하고 산란한 마음에서는 지혜가 나오지 않아서 불성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짓지 않음이다. 스스로 보리에 대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수행에 나아가지 않으므로 퇴전한다는 것이다.

셋째, 의심하는 마음이다. 만약 의심을 내면 바른 선정을 어그러뜨려서 보리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몸과 재물을 아낌이다. 아무리 불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아껴서 수행하지 않고, 재물을 아껴 집착하면 욕심과 집착이 늘어나 불성을 얻지 못하고 퇴전한다.

다섯째, 열반에 대해서 크게 두려워함이다. 스스로 열반을 얻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여의고 영원히 멸도(滅道)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섯째 마음에 참아내지 못함이다. 불성이 있더라도 어려움을 참아내고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으면 퇴전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마음이 조복되지 못함이다. 마음을 조복받지 않아서 조화롭지 못하고 부드럽지 않으므로 퇴전한다.

여덟째, 근심 걱정[愁惱]이 많음이다. 근심 걱정으로 항상 수심에 잠겨 있으면 퇴전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즐거워하지 않음[不樂]이다. 마음에 차지 않아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퇴전한다는 것이다.

열째, 방일함이다. 마치 원숭이가 과일을 탐착하여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듯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움직이면 도에 나태하여 퇴전하여 일체종지를 얻지 못한다.

열한째, 가벼이 여김이다.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음을 자신하지 못하고, 성인을 높이 추앙하면서도 자신은 동떨어져 있다고 여겨서 받들어 수행하지 않는다. 곧 자기 몸을 스스로 가벼이 여기고 대법(大法)을 배우지 않으면 퇴전한다는 것이다.

열두째, 스스로 번뇌를 보고 깨뜨릴 수 없다고 함이다. 스스로 번뇌를 깨뜨리지 못한다고 여기면 수행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열셋째, 보리에 나아가는 법을 좋아하지 않음이다. 깨달음에 나아가는 법을 좋아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므로 퇴전한다는 것이다. 비록 앞의 12가지를 좋아하더라도 만약 나아감이 없다면 또한 퇴전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보리심을 무너뜨리는 여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 법을 아낌이다. 법을 아끼고 설해 주지 않으면 삿된 지혜가 생기게 되어 보리심을 무너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중생들에게 선하지 못한 마음을 일으킴이다. 선하지 못한 마음을 내면 중생들에게 법륜을 굴릴 수 없게 되어 중생들이 악도에 들어가게 되니 성인의 종자를 멸해 버린다. 또한 스스로도 악업을 지어 악도에 떨어지므로 작은 법도 성취할 수 없는 데 어떻게 큰 법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보리심이 무너진다고 하였다.

셋째,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함이다. 나쁜 친구들을 가까이 하면 착한 친구들을 멀리 하게 되며, 그 마음이 쾌락을 좋아하여 악업을 짓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매일 매일 선근이 줄어들고 악법이 늘어나니 선정심을 잃어버리고 악한 사견만이 치성하여 법도 없어지고 부처도 없어지고 열반도 없어지므로 보리심도 무너진다고 한다. 여러 경론에서도 악한 친구를 가까이 하는 일은 갖가지 악업을 짓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하고 있다. 번뇌와 산란심이 늘어나서 오욕락을 인연하여 악행이 일어나도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니 악업을 짓게 된다.

넷째,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음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으면 생사윤회에서 쉬는 날이 없으니, 욕구가 표출되어 육도 사생의 악취에 떨어진다. 정진하지 않으므로 신업 구업 의업으로 일체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선근을 심지 않아서 악한 친구들을 만나고, 나태해지고, 수행에 진전이 없으며, 선교방편의 지혜가 없어지니 부처님 법을 믿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워지므로 보리심을 무너뜨리게 된다고 한다.

다섯째, 스스로 교만함이다. 이런 사람은 갖가지 일을 자기 공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깔보며,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해서 방자하게 화내는 마음을 품고 있다. 스스로 지혜롭고 공이 높다고 알고, 의복과 음식으로 공양하여 자기의 지계와 지혜공덕을 과시하려고 한다. 특히 어지러운 오탁악세에는 대교만심을 내어 자신의 공이 높다고 여겨 여래법을 비방하므로 지옥 아귀 축생의 악도에 떨어져서 보리심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인욕의 덕을 베풀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여섯째, 세상 사업을 경영함이다. 세상의 이익이 되는 사업을 널리 경영하다보면 탐욕 등 오욕락에 집착하게 되고 세간의 복잡한 일에 얽매이게 되어 보리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또한 보리심에서 물러나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 외도에 출가하기를 좋아함이다. 외도에 출가는 사견법에 떨어져서 마음에 애착하므로 진실하지 않다. 또한 정법을 파하고 믿지 않으므로 속히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 외도들은 욕애(欲愛)는 끊었지만, 법애는 끊지 못하여 오욕락에 집착한다. 이에 비해서 불교는 욕애와 법애를 모두 끊는다.

둘째, 대자대비의 마음을 닦지 않음이다.

셋째, 법사의 허물 보기를 좋아함이다.

넷째, 항상 생사에 있기를 좋아함이다.

다섯째, 십이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다.

끝으로 보리심에서 물러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오욕락을 좋아하고 탐착하는 일이요, 둘째는 삼보(三寶)를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음이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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