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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초기불교의 차별금지법 Ⅱ
불이(不二)의 중도는 차별 타파 의미
2017년 05월 06일 (토) 11:43:51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이번 호는 지난 호에 이어서 초기경전에 나타난 차별금지의 가르침을 좀 더 구체적인 전거를 통해 살펴보자. 《구루수무쟁경》은 중도의 사회적 실천을 각 지방마다 달리 이름 되는 사발그릇의 비유를 통해 제시하는데 다음과 같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이 같은 한역경전에 비해 빠알리 상응경전인 《Araṇavibhaṅga Sutta》는 지방마다 다른 이름의 그릇을 3개 더한 8개를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같은 그릇이라 할지라도 지방마다 달리 불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만을 들어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라고 한다면 옳고 그르다는 이변의 시비에 떨어진 법으로 설하고 있다. 즉 언어와 풍습, 그리고 법에 있어 지방마다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독단의 고집을 말한다. 이같은 태도는 바라문들이 그들의 성전을 신(神)의 계시서(śruti)이기에 ‘이것만이 진리이고 나머지 다른 가르침들은 모두 진리가 아니다’라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이분(二分)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주장해 시비가 계속되고 싸움으로 발전한다.

마치 기독교 등이 주장하는,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이고 구원이 있는 반면에 다른 종교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배타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기서 ‘이것만이 진리이다’라는 것은 그들의 베다를 가리킨다. 이렇게 이변의 극단은 그 자체로 상대를 배제하고 배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일(唯一)의 신념은 다른 것과의 가치적인 면에서 우열의 위계가 전제된 차별을 담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바라문교는 다시 붓다에 의해 예외 없이 중도의 가르침으로 파기된다. 유무(有無) 또는 단상(斷常)중도는 베다에 근거한 바라문교의 상주론(常住論)이 그것이다.

계속 경전에서 특정한 한 가지 그릇의 이름만을 인정한다 한 것은 언어와 관련한 사물의 실재를 고집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때문에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경전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고집 또는 집착이라는 뜻을 가진 ‘abhinivesa’와 설사나 피똥을 의미하는 ‘atisāra’라는 말을 각각 사용하여 그 폐해를 비판한다. 즉 하나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다른 것을 배타하는 폐해를 불러들여 결국 대립과 갈등 그리고 다툼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은 계속해서 “다툼[諍]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이 있다”를 설명하면서 다툼이 있는 법은 ‘탐욕과 서로 호응’하는 ‘하천한 범부의 행’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법은 괴로움과 슬픔 등을 있게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변의 불이(不二) 가운데 낙행으로 파기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하며, 다시 고행 또한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아 다툼’이 있는 것으로 괴로움 등이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락(苦樂)의 이변을 떠나면 곧 중도이며 이러한 중도로써 결국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다툼이 없는 법이라 한다.

경전은 반복해서 차별로 유발되는 화와 분노로 인한 다툼으로 괴로움이 있는 법과 그렇지 않는 법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언어와 풍습과 법 등에서 차별하지 않는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사회 실천적 중도를 닦을 것을 권한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행은 흥미롭게도 대승의 《금강경》으로 이어진다. 즉 이러한 초기경전은 대승경전에서 붓다와의 공사상을 대론하는 수보리(須菩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 대승의 수보리는 초기경전에서는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수보리가 중도의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이 경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수보리가 훗날에 이러한 다툼이 없는 법(araṇa-dhamma)과 다툼이 없는 도(araṇa-paṭipada)로써 법을 법답게 알게 되었다는 경구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중도의 “행은 진실한 공(空)”이라는 마지막 게송은 초기경전에서 이미 중도를 공(空)사상으로 연결하여 전개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중도와 공사상이 이후 대승의 공관(空觀)은 물론 동아시아의 모든 불교에도 일관되게 회통될 수 있는 근거임을 나타낸다. 한국불교에서도 중도와 공을 동의어로 보는 것이나 ‘중도공(中道空)’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유한다.

한국불교에서 분별(分別)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이나 분별망상(分別妄想)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면서 부정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기불교 맥락에서 분별은 ‘차이(差異)’와 ‘차별(差別)’을 두 가지 모두를 나타낸다. 차이를 제대로 아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아는 반야지혜를 의미한다. 때문에 차이의 이해에 따른 배려가 가능하다. 이 같은 차이를 아는 지혜는 기본적으로 너와 내가 수평적이고 평등한 세계관과 인간관에 바탕하고 있다. 즉 연기적 분별이나 세계관을 말한다.

이에 반해 차별은 번뇌이고 폭력이다. 차별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따른 위계적 분별이다. 특히 이해(利害)나 우열 또는 미추에 따라 상대를 평등하지 않게 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너와 나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우열로 파악하는 세계관과 인간관에 바탕하고 있다. 흔히 세계의 최고 정점을 상정한 유신종교(有神宗敎)의 세계관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창조신과 천사 그리고 인간, 인간에서도 남녀, 그리고 동물이라는 수직적 위계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는 존재 간 주종(主從)의 종속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종속과 주종관계는 우열이라는 이변에 바탕한다. 같은 인간에서도 셈족의 종교에서 민족적 우열관계로서의 선민주의나 붓다 시대의 바라문교의 사성계급이 바로 그것을 말한다. 세상과 인간을 우열에 따른 위계로써 차별하는 것이 내재해 있는 세계관이다. 이와 관련해 남녀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 외모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지역차별 등의 수없는 말이 이야기된다. 모두 인간사 세상사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문제인가? 차별은 차별당하는 존재로부터 화와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중도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다툼이 있는 법으로 똑같이 설명한다. 차별하는 사람의 이기심과 탐심(貪心)에 의한 불공평한 대우를 당하는 존재의 진심(嗔心)을 말한다. 갖가지의 폭력은 차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인류 사회를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차별은 또한 역차별로 악순환된다. 일례로 유태민족의 ‘선민주의’에 따른 배타적 결속은 역으로 유럽 등지에서 끊임없는 역차별을 유발하게 하였다.

조준호 |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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