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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빛과 어둠 Ⅱ, 장미의 이름
두려움의 상징 ‘엄숙’, 자유에의 의지 ‘웃음’
2017년 05월 06일 (토) 11:29:06 김문갑 meastree@naver.com

1. 웃음의 미학, 공포로부터 해방

   
▲ 영화 <장미의 이름> 포스터.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추리소설이다. 역사적 사실(fact)에 근거하여 당시의 시대와 사회상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소설(fiction)적 재미를 더한 팩션(faction)의 원조와도 같은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외피에 신학과 철학을 녹이고, 저자의 사상을 담았다.

소설에서는 당시에 희극(喜劇, comedy)을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詩學)Ⅱ》가 실재했다는 가정 하에 사건이 전개된다. 주지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悲劇, tragedy)을 다룬 책이다. 따라서 당연히 희극을 다룬 책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비극이 눈물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희극은 웃음의 예술론일 것이다.

공허한 말, 웃음을 유발하는 언사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1)

아델모 수도사가 채식(彩飾)한 그림들을 보며 모처럼 웃음꽃이 핀 작업실에 찬물을 끼얹듯 날아든 말, 눈 먼 늙은 수도사 호르헤의 일갈(一喝)이다. 과연 엄격한 규율과 복종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수도원에 어울리는 질책이다.

호르헤 수도사 : 웃음이란 육체를 뒤흔들고 얼굴의 형상을 일그러뜨리게 함으로써 인간을 잔나비로 격하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윌리엄 수도사 : 잔나비는 웃지 않습니다. 웃음이란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이성성의 기호입니다.
호르헤 수도사 : 말은 인간이 지닌 표징일 수 있으나, 인간은 말로써 하느님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 온당한 것이라는 법도 없지요.
2)

호르헤 수도사의 말이 아주 틀린 말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듯 웃음이 인간의 특징을 드러내는 기호라 하여 꼭 온당한 것은 아니다.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허약함, 부패, 우리 육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웃음이란 농부의 여흥, 주정뱅이에게나 가당한 것이오. 지혜롭고 신성한 교회도 잔치나 축제 때는 이 일상의 부정을 용납하여 기분을 풀게 하고 다른 야망과 욕망을 환기시키는 것을 용납하고 있기는 하오. 하나 웃음이 원래 천박한 것, 범용한 자들의, 제 진심을 얼버무리는 수단, 평민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어요. 3)

호르헤 수도사의 말처럼 과연 웃음은 인간의 허약함과 육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중세 시대 경망과 천박의 징표인 웃음은 아마도 금지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정해진 때가 아니면 함부로 웃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입가에 미소를 띠어 스스로 너무 경박한 게 아닌가 싶은 사람에게 중세는 살기 힘든 시대였을 것이다.

엄숙과 경건, 절제와 침묵이 칭송되었다. 다만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기 전 사육제(謝肉祭) 기간에는 마음껏 웃고 떠들고 노는 것이 허락되었다. 바보와 병신은 축제의 주인공들이었고, 인간의 어리석음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었다. 이는 곧 이어지는 사순절의 절제와 금욕과 대조되며 인간의 죄와 악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지만, 어찌되었던 웃음을 통제당한 중세 사람들에게 축제기간은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옴짝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축제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웃음은 범부를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킵니다. 왜? 바보의 잔치에서는 악마 또한 하찮은 바보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서책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져요. 이 서책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을 ‘지혜’라고 부르고 있어요. 4)

사람들은 악마를 두려워하고, 지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공포야말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영생을 갈구하고, 교회를 찾게 만드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새로운 파괴적 겨냥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우리 죄 많은 인생이 두려움에서, 일종의 선견지명이자 천상적 은혜 중에서도 가장 은혜로운 그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해방되면, 그럼 우리는 뭐가 되겠습니까? 5)

두려움은 신이 내려준 가장 큰 은혜이다. 다만 그 은혜가 성직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게 유감이라면 유감일 따름이다.

우리의 진중하신 교부들은 달리 생각하셨으니, 웃음이 범부의 낙이라면, 이 범부의 낙은 마땅히 엄격한 규율 아래서 질책과 조정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었소. 범부들에게는 웃음을 제어할 무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을 영생으로 이끌고 배와 엉덩이와 먹을 것과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이들을 구하자면 마땅히 목자들은 이를 엄격한 규율 아래에다 두어야 하는 것이오. 6)

중세 시대 “하느님의 백성은 양치기(즉 성직자)와 수양견(守羊犬, 즉 군대)과 양(즉 대중)으로 나뉘”7)었다. 교부들은 양치기가 양을 몰 듯 사람들을 제어하였다. 엄한 규율 아래 사람들을 묶었다.

2. 무지몽매와 독단의 시대

5세기 말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고트족-게르만족의 일파-들은 진짜 야만족이었다. 무식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다만 먹고 살기 위해 로마를 함락시켰을 뿐, 문화가 뭔지, 문명은 어떤 건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로마를 계승할 줄도, 그런 생각을 할 줄도 몰랐다. 이런 점은 중국을 접수하고 당(唐)나라를 세운 선비(鮮卑)족-5호(五胡) 중의 하나-과는 확실히 달랐다. 선비족의 당나라가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가장 활기 넘치는 문화를 창조하였음에 비하여, 게르만족은 식량을 얻고는 돌아갔다. 그들은 다만 한 끼의 먹거리를 위해 서로 싸웠다.

전쟁과 무지가 만연하는 세상에 질병이 창궐하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게르만족의 유럽엔 온갖 전염병이 넘쳤다. 특히 흑사병은 당시 서유럽 인구의 절반을 감소시켰다. 아이들의 태반은 두세 살을 넘기지 못하였고, 10살을 넘긴 아이들의 다수는 부모 품에서 성인이 되지 못하였다. 극심한 인구 감소는 중세의 유럽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 유럽은 오랜 겨울잠에 빠진 것 같았다. 그렇게 200~300년을 공포와 두려움이 유럽 하늘을 덮었다.

이 시기 사람들의 유일한 안식처는 교회였다. 기독교는 무지몽매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 속에서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 시기 거의 유일한 지식인들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었다. 수도원은 지식의 보고이며 지식의 생산지였다.

8세기 후반 프랑크 왕국을 통일한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도 문맹이었다. 당시 왕들은 모두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들은 그저 싸움에만 능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껏 전사에 불과하였다.

왕들이 그럴진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성직자나 수도자들 말고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상의 권력이 세속까지 지배하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런 것이었다. 세계 지성사에서는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지만,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보이는 것이든 아니 보이는 것이든, 모든 피조물은 빛의 아버지에 의해 존재로 형상화한 빛입니다. 이 상아, 이 마노뿐만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돌은 빛입니다. 8)

하지만 이 빛의 세계는 무지와 몽매, 미신과 독단으로 점철된 세계였다. 이런 세계를 깨는 진정한 빛은 외지에서 왔다. 십자군 전쟁은 무지몽매와 독단이 빚은 비극이었으나, 동방의 선진 지식이 수입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중세의 가장 ‘빛나는 어둠’은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의 사이에 존재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가 플라톤의 철학에 기반하여 기독교의 교리보편화에 혼신의 열정을 다 할 때는 로마가 망하기 전, 그리스로마문화가 살아있을 때였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Th. Aquinas, 1224〜1225)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신학에 적극 수용될 때는 동방에 여전히 동로마가 존재할 때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논리학이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가 십자군의 손에 들려 서유럽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 사이, 즉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이 가장 어두웠고, 하느님의 빛은 가장 밝을 때였다. 빛의 하느님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지로부터의 해방은 천상과 지상의 권력을 모두 쥐고 있었던 교회로부터 지상의 권력을 되찾아 오는 쪽으로 나아갔다. 카노사의 굴욕은 이런 해방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에피소드였다. 사건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세속 군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도리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파문당하고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 내부적으로는 개혁운동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돌치노, 사도 형제단, 소형제회, 엄격주의파 등등의 이른바 이단들 또한 이런 개혁운동의 일환 내지는 변종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엄숙과 경건, 무지와 독단의 두꺼운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할 때, “지식이 우둔한 자를 밝히는 데 쓰이지를 않고 다른 지식을 은폐하는 데 쓰이고 있었”9)던 것이다.

이 영감아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 당신은 속았어.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이런 게 바로 악마야!…… 영감이 바로 악마야! 봐라, 영감은 악마답게 이렇게 어둠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아! 10)

악마는 가장 밝은 빛으로 나타난다.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맹인. 그게 중세의 기호였다.

3. 웃음, 그 해방과 자유의 기호

   
▲ 명대 당인(唐寅, 1470〜1523)의 호계삼소도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천하가 극도의 혼란 속으로 들어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동진(東晉)의 혜원(慧遠, 334~416)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머물며 염불삼매(念佛三昧) 정토법문(淨土法門)을 실천수행하고 있었다. 스님이 만든 백련결사(白蓮結社)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이후 불교 신앙운동의 모범이 되었다.

이즈음 야심만만한 젊은 권력자 환현(桓玄, 369~404)이 혜원에게 편지를 썼다. 비록 탈속한 스님이라 해도 왕에게는 경의를 표하여야 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당대 최고의 고승으로 대중의 존경을 받는 혜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황제의 자리가 훨씬 가까워진다는 계산이었다. 혜원의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가사(袈裟)는 조정에서 입는 옷이 아니고, 발우(鉢盂)는 종묘에서 사용하는 그릇이 아닙니다. 사문(沙門)은 속세 바깥의 사람이니 왕에게 공경을 표하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속세 바깥의 사람. 혜원은 “영불출산 적불입속[影不出山 跡不入俗]”,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죽는 그 순간까지 지켰다.

한편 혜원은 시인 도연명(陶淵明), 도사 육수정(陸修靜) 등과 깊은 교류를 맺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유(儒)・불(佛)・도(道) 삼교(三敎)의 만남, 문학과 사상과 종교의 융합을 상징하는 징표와도 같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세 사람이 만나 회포를 풀었다. 헤어질 때가 되어 혜원은 도연명과 육수정을 배웅하며 동림사 앞의 계곡까지 내려갔다. 세 사람은 이야기에 빠져 다리를 건너는 줄도 몰랐고, 여산의 호랑이가 울었다. 혜원은 이 계곡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서약한 몸. 서약이 지켜지지 않음을 호랑이가 알려준 것이다.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이른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전설이다.

호계에서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무수히 많은 그림이 그려졌고, 시에 읊어지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호계에 울려 퍼진 호탕한 웃음은 세속과 탈속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호이다. 그 어떤 권력이나 질서에도 얽매이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 통쾌함, 그리고 자유에의 의지, 이것이 수많은 예술가와 시인묵객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한바탕 웃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며 자유를 향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주) -----
1)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2) 위의 책.
3) 위의 책.
4) 위의 책.
5) 위의 책.
6) 위의 책.
7) 위의 책.
8) 위의 책.
9) 위의 책.
10) 위의 책.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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