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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 특집] 차(茶)와 선(禪)
차와 선의 공통점 ‘정신의 정화와 승화 추구’
2017년 05월 06일 (토) 11:05:50 양흥식 tearoad@naver.com

“가만히 살펴 듣건대 성상께서 공덕재를 세우시고 혹 몸소 차를 맷돌에 갈고, 혹은 친히 보리도 간다 하온즉, 신은 성체의 근로하심을 심히 근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고려사》에 나온 이 내용은 제6대 임금인 성종(재위 982~997)이 연등회나 팔관회 때 부처님께 올릴 차나 공양물을 직접 준비했다는 것이다. 신하인 최승노가 임금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해서 올린 <시무이십팔조>의 두 번째 조항이다.

이 내용에 나타난 것처럼 차를 맷돌에 갈았다는 것은 고려 차 문화가 말차를 중심으로 하는 점다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 초기에 차가 국가의식에 중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왕이 직접 공덕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이다.

고려시대 국가의식에는 ‘진다의식(進茶儀式)’이 행해졌는데, 진다란 술과 과일을 임금께 올리기 전에 임금이 먼저 차를 청하면 신하가 차를 올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궁중의식차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진다의식은 이때 행하는 제반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왕이 행하는 별도의 의식으로서 다례가 행해졌다는 것은 차가 진상(進上)하는 중요음식으로서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요한 의례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기관이 있었다. 그 관청이 ‘다방(茶房)’이었다.

고려에 중요한 국가행사인 연등회 내용에 나타난 일부분을 살펴보자.

“임금이 먼저 차를 올리라고 명하시면 시신(侍臣)이 나아간다. 이때 집례관은 임금을 향해 국궁 재배(再拜)하며 차를 올린다. 어주(御酒)와 수라를 올릴 때에도 역시 집례관이 국궁 재배하며 권한다. 이때 임금께서 반드시 태자 이하 시신제관(侍臣諸官)에게 차를 하사한다.”

이것은 《고려사》 <상원연등회의조>에 나타난 연등대회일의 진다의식의 일부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條)>중에 팔관회와 연등회를 국가의 의식으로 거행토록 했다. 그 중에 연등회는 2월 또는 정월 보름에 행해지다 뒤에는 나라의 풍속이 되어 전국적으로 거행된 불교행사가 되었다. 연등회 때 진다가 있었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궁중뿐만 아니라 각 사원에서도 차의 쓰임새가 더욱 많아져 차를 재배하고 제다까지 해 사원에 공급하는 ‘다촌(茶村)’이 생겨났다. 《통도사 사리가사사적약록》에 따르면 “통도사 불쪽 동을산에 다촌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귀족과 문인, 학자들이 차를 즐겨 마셨다.

초기에는 주로 귀족 중심으로 차 문화가 번성했지만, 중기부터는 문인과 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직접 차를 내고 무아의 경지를 맛보고, 차를 마시며 선(禪)을 행했다.

사찰에서도 차 문화가 매우 융성했다. 사찰에서 차 문화가 의례화된 것은 당나라 때 <백장청규>가 제정되고 나서 부터다. 차 문화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화두의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차를 즐겨 마셨다. 그리고 연등회나 재를 올릴 때 그리고 고승의 제사 때에도 차를 올렸다. 사원에서는 차를 내는 것을 겨루는 ‘명전(茗戰)’이라는 풍속이 행해졌을 정도이다.

다음은 고려 중기의 문신인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있는 <안화사의 당선사를 찾으니 선사가 시 한 편을 청하다>의 내용이다.

“…매미들은 잎 속에서 울고 /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싸운다 / 승려들 제 손으로 차 달여 / 나에게 향기와 빛을 자랑하네 / 나는 말하노라. 늙고 병든 몸이 / 어느 겨를에 차 품질 따지랴고…”

이규보는 고려 무신 정권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살다간 문인으로 훌륭한 선시와 다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시가 290여 수, 불교 산문이 127여 편, 차와 관련된 시가 40여 수 있다.

다음은 이규보가 차 끓이는 일에 숙달된 솜씨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삼매로 표현한 내용의 시로, 그가 무쇠로 만든 주자(注子) 탕관을 선물 받고 건계차를 손수 끓인 솜씨를 자부하고 있다.

“… 차가운 우물물 길어와 / 내 손수 스스로 화로불에 달이노니 / 밤 누각엔 등불만 찬란하더라 / 물 끓이는 소리 처음엔 쉰 목소리 같더니 / 점점 은은한 피리소리 되는구나 / 삼매의 솜씨는 이미 익숙하였으니…”

차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조화롭게 해 주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차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제거하여 올바른 마음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차를 마시는 순간은 세상의 복잡한 일도 잊을 수 있으며, 어떠한 욕심도 사라져 깨끗함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선일미(茶禪一味)에서 차와 선이 상통하는 점은 정신적 경지의 정화와 승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차를 마실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맛을 음미한다. 참선을 할 때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생각을 끊어야 한다.

이규보의 다시에 차와 선이 한맛으로 융화된 의미가 나타난다.

“… 마음 씻고 절에 들어 같이 은거한다면 / 물 긷고 차 끓이는 일도 감당하리 / 혹 화두에 음미할 곳이 있으면 / 때로 이 늙은이 불러 참여시킴도 무방하리”

그리고 <장원방 연보의 화답을 보고 운에 이어 이에 답하다>라는 다시의 의미가 고요한 선방의 죽비소리 같다.

“… 다른 날에 그윽한 암자 찾아가 / 이 몸 늙었으나 오히려 물 길을 수 있으니 / 한 사발의 찻물은 이것이 바로 참선의 시초라네”

이규보는 승려들과 교류를 통해 불교와 차 문화를 배웠으며, 차가 선에 상통한다는 것을 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로써 이규보의 다선일미(茶禪一味)의 다도관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차와 선의 다도관을 융화적 관점에서 승화시킨 사람은 조선시대 초의 선사(1786~1866)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초의는 어떤 선(禪)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가. 초의 선사의 저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사상과 정신세계에 대한 내적 만족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내고 일체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선의 생활화와 일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다음은 초의 선사의 선관을 나타낸 《초의선과(草衣禪課)》에 언급된 내용이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 바로 한 마음(一心)의 극치를 가리킨다. 육조는 안으로 자기의 마음을 살펴 움직임이 없는 것을 선이라고 하였고, 구곡 선사는 이를 교외별전의 일미선(一味禪)이라고 하였다.”

초의 선사는 차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그에게 차는 무엇인가. 초의 선사의 《동다송》, 《다신전》의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동다송》은 해거도인 홍현주의 청으로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밝히는 내용으로 저술하였다. 그리고 《다신전》은 1828년 지리산 화개동 칠불암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여가에 《만보전서》에서 22개 절목을 초록하여 1830년에 정서하였다. 이 책의 발문에 처음 등초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는데, 많은 승려들 중에 조주차(趙州茶)를 알고자 하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초(抄)하여 보이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초의 선사는 《초의시고(草衣詩藁)》에서 “차는 군자와 같아서 삿됨이 없다. 그러므로 성현이 모두 차를 사랑하였다.”고 하였다. 성현이 차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차가 깨끗하고 투명하며, 맑기 때문이다.

차는 인간의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부처님의 법은 세상 사이에 있으니 세상을 떠나서는 깨침이 아니다.”라고 한 그의 선관(禪觀)과도 상통하는 맥락이다. 그리고 초의의 일심(一心)은 유(有)와 무(無) 두 가지 경계가 없는 중도(中道)이며 불이(不二)이다.

차를 대하는 마음도 선과 같아서 순수함 그 자체이며 피차의 경계가 없고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 다루어야 차의 현묘한 이치가 드러나게 된다고 한다. 그는 《동다송》에서 “그 가운데 현묘함 있어 그 묘함을 말로 나타내기는 어려운 것. 참다운 정기는 체(體)와 신(神)을 분리시키지 않는 데 있네”라고 하였다.

차를 만드는 일은 다도(茶道)의 첫걸음이다. 차를 만드는 것이 은밀하여 그 오묘함을 표현할 수 없다는 그의 인식은 자연의 순리 속에 다문화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體)과 차(神)를 둘로 나누지 말라는 것은 불교의 핵심사상인 중도의(中道義)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초의의 제자 허련(1808~1893)이 말하는 초의의 차 생활이다.

“을미년(1835)에 나는 대흥사에 가서 초의 선사를 뵈었습니다. … 향불을 피워 향내가 은은히 퍼질 때에 차를 반쯤 마시다 문득 일어나 뜰을 거닐면서 스스로 취흥에 젖어들곤 했습니다. 정적에 잠긴 작은 난간에 기대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 새들과 상대하고 깊숙한 오솔길을 따라 손님이 찾아올까봐 살며시 숨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차를 통해 자연과 하나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었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의 선열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추사 동생 김명희(1788~?)의 편지를 받고 초의는 <산천도인이 차를 사례함을 받들어 화담하여 짓다>란 시를 지었다.

“… 사람이 풀과 차의 차이를 맛보게 된 것은 / 멀리 설령(雪嶺)에 들어 찻잎을 따면서라네 / (중략) / 지니고 영산에 돌아가 여러 부처님께 바치려니 / 달이고 점다(點茶)할 때에 자세히 불가 법도에서 상고하리라 / 알가(閼伽)의 참된 몸으로 오묘한 근원을 궁구하니 / 오묘한 근원에 집착 않으면 바라밀이로다…”

초의 선사는 차생활이 수행을 통해 하나로 이루어져 또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였다. 상징의 의미에서 되새겨볼 내용은, 인간의 마음은 그 경험의 어떤 구성 요소가 다른 구성 요소에 관한 의식, 믿음, 정서 및 용도 등을 이끌어 낼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게 신비하고 초월적인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는 통상적인 언어나 논리적인 학문적 용어로 표현해 내기 어렵다.

마음을 자신의 선세계, 곧 본원의 궁극 경지로 삼고 체득한 마음이 중도(中道)이다. 초의 선사의 치열한 수행, 차에 대한 발전된 논리, 차와 선의 조화를 이룬 마음이 차와 선의 경계를 한 맛으로 융화한 것이다. 선을 하면서 차맛에 집착하지 않고 차를 마심에 선에 물들지 않아 일미(一味)인 것이다.

   
글쓴이 | 양흥식

차 칼럼리스트. 차 문화사상연구원 원장. 2011년 동국대학교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융화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금강대학교, 목포대학교 등에서 불교와 차를 주제로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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