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은 참으로 기쁜 날인 동시에 슬픈 날이기도 하다. 그 까닭은 부처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탄생게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귀하고, 누구나 다 평등함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자주적, 민주적 평등선언이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현직 대통령 탄핵 가결과 구속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5월 9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인 만큼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극복하고 온 국민의 화합을 도모하고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우리 사회가 화합하고 행복한 미래를 건설할 수 있을까?

《보살내계경(菩薩內戒經)》이라는 경전에는 상인의 매매에 대한 윤리가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남의 재물을 훔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무거운 저울이나 가벼운 저울을 가지고 남을 속이지 말라’, ‘커다란 말이나 작은 말을 가지고 남을 침해하지 말라’, ‘작은 자를 가지고 남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위 내용에서 ‘저울’이나 ‘자(尺)’라는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울은 공정성의 상징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와 권력, 명성을 얻은 사람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보살내시경》의 내용은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위기에 놓인 이유는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와 경제 지도자들이 탐(貪), 진(瞋), 치(癡) 삼독심(三毒心)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권력과 부와 명성을 독차지하려다 보니 정경유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한 채 자신에게 충일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비우는 삶’, 즉,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많은 대중이 왕자로서의 영화를 버리고 일의일발(一依一鉢)만 지니신 채 살아가신 부처님의 무소유 정신에 공감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항거이기도 할 것이다.

욕망의 엔트로피에 만족은 없다. 욕망을 성취하면 더 큰 욕망을 갖게 된다는 게 불교의 입장이다. 그래서 예부터 불가에서는 지족(知足)을 강조했던 것이다.《법화경(法華經)》‘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에는 “욕심(欲心)이 적고 족(足)함을 아는 이는 능히 보현(普賢)의 행(行)을 닦으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탐, 진, 치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은 곧 ‘소욕지족(少欲知足)’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은 무엇보다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많은 사람이 탐, 진, 치에 빠지는 이유는 연기의 법칙을 모르고 오로지 나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영원한 나도, 내 것도 없다. 이 세상은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만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저절로 동체대비심을 갖게 되고 육바라밀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사바세계가 정토화로 진행될 것이다. 환희장의 세계는 그래서 열리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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