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2 靑原下)

복주설봉(福州雪峰)의 의존(義存)선사는 천주남안(泉州南安)사람으로 속성은 증(曾)씨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부처님을 신봉하는 독실한 불자집안으로 어릴 적부터 종소리를 듣거나 깃발이나 꽃을 보면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열 두살 때 아버지를 따라 포전(蒲田)의 옥간사(玉澗寺)를 참배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경현율사(慶玄律師)를 보고 문득 예배하고 말하길 “나의 스승이십니다.”하곤 그 자리에 머물러 율사를 사사했다. 17살 때 삭발하고 부용산(芙蓉山)의 홍조대사(弘照大師)를 배알하였다. 홍조대사는 설봉을 보고 기특한 듯 어루만지며 큰 법기가 될 것으로 여겼다. 뒤에 유주의 보찰사(寶刹寺)에 가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그로부터 여러 곳을 역참하다 드디어 덕산선감과 인연이 계합하였다. 덕산과의 만남은 동산양개선사의 소개에 의해서다. 설봉이 한 때 동산에 있으면서 밥을 짓는 소임을 맡았었다. 하루는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있는데 동산이 물었다. “그대는 쌀을 씻으면서 모래를 골라서 버리느냐, 아니면 쌀을 버리느냐.”하자 “모래와 쌀을 일시에 버립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 대중들은 무얼 먹지?” 동산이 묻자 설봉은 쌀 항아리를 땅에 엎어버렸다. 이를 보고 동산은 “너의 인연은 덕산에 있어야 합당하리라.”하곤 덕산에 보냈던 것이다.

설봉의 수행은 정말 피나는 정진이었다. 어느 때 암두(巖頭)와 함께 예주의 요산에 갔는데 폭설로 인해 산을 내려올 수 없었다. 그때 암두는 매일 잠만 자고 있었으나 설봉은 일념으로 좌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암두가 매일같이 자고만 있자 어느 날 설봉은 암두를 깨워 “금생에 일대사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사형은 잠만 자고 있으니 어떻게 할 작정인가?”하고 충고했다. 그러자 암두는 “멍청한 소리 말라. 매일 돌처럼 좌선만 하고 있다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잖는가. 도리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원인이 될 뿐이다.”라면서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다. 설봉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이 속이 또 평온하지 않으리.”호소했다. 암두의 자만을 내세우기 보다 자신 심중의 고민을 알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암두는 “그대는 언젠가 고봉정상에 올라가 초암을 짓고 법력을 드높일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직도 그따위 말을 믿고 있는가? 만약 마음이 정말로 편치 않다면 그대의 소견을 하나하나 얘기해보라. 그렇게 하면 내가 옳고 그른 것을 증명해 보이리라.”하였다.

▲ 삽화=강병호 화백

설봉: 처음 염관(鹽官)에 갔을 때 색공(色空)의 뜻을 가리키는데 얼마간 깨닫는 바 있었다.
암두: 그것은 두 번 다시 말하지 말라. 더럽다.
설봉: 다음에 동산에 갔을 때 과수의 게(동산이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깨우침을 읊은 게)를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암두: 그 게의 꼴로 보아서는 동산 자신도 매우 미심쩍다.
설봉: 덕산에 갔을 때는 ‘종전의 종승 가운데의 일을 학인이 알 수 있을 것인가’물었을 때 덕산을 한방 때려주면서 ‘무엇을 말하는가’ 했는데 그때야말로 물통 밑이 빠지는 것 같은 심경이 되어 유쾌하였다.
암두: 그대 듣지 못하였는가. 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이미 가진(家珍)이 아니다.
설봉: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암두: 그대 후일에 대법을 더 높이고자 한다면 그 흉중에 있는 일체의 잡물을 끄집어내어 내 앞에 싸놓아 보라.
이 한마디에 설봉은 크게 깨달았다. 설봉은 암두에게 절하고 “사형! 비로소 오늘 오산진에서 도를 이루었소.”하며 기뻐했다.
당 함통 11년 설봉은 복주부 서쪽 2천리의 상골산(象骨山)에 암자를 짓고 그 곳을 설봉이라 부르며 살았다. 그의 명성은 승속 간에 널리 알려져 가르침을 청하여 배우려는 자들이 항상 1천 5백여 명에 이르렀다.
대순(大順)2년, 그곳을 나와 단구사명을 여행하여 다시 민(민종족이 사는 지방)으로 들어갔다. 양태조의 개평(開平)2년 5월에 입적하였다. 세수 87세였다. 《설봉록(雪峰錄)》이 있으며 문하에는 운문문언(雲門文偃) 현사종일(玄沙宗一) 보복종전(保福從展) 장경혜릉(長慶慧稜)등의 용상을 배출하였다.

 설봉화상이 대중들에게
 "남산에 코브라가 있는데 잘 봐두라"
 운문화상이 주장자로
 "여기 그 독사가 있다"

설봉속립(雪峰粟粒)
설봉화상은 대중에게 수시하기를 “이 우주는 한없이 크고 넓어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손가락으로 집어보니 좁쌀알 만 한 크기 밖에 안 된다. 그것이 우리 눈앞에 던져져 있는데 범부들은 깜깜 무소식으로 알지 못한다.”하곤 북을 치면서 모두 나서서 찾아보도록 했다. 《벽암록》 제5

설봉별비사(雪峰鼈鼻蛇) [설봉간사 雪峰看蛇]
설봉화상이 대중들에게 “남산에 한 마리의 코브라가 있는데 그대들 모두 잘 봐두라.”고 했다. 그러자 장경(長慶)이 “오늘도 온 절 안이 그 독사 이야기로 겁에 질려 떨고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한 스님이 현사(玄沙)화상에게 독사 이야기를 했다. 현사화상은 “장경같이 담대한 사람이면 가보겠지. 하지만 내까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다시 물었다. “스님께선 왜 안가십니까?” 이 말에 현사화상은 “남산까지 갈 필요가 있는가.”하였다. 또 운문화상은 주장자를 설봉 앞에 내던지며 ‘자 여기 그 독사가 있다’고 겁주는 시늉을 해보였다. 《벽암록》 제22 《종용록》 제24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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