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선남자야, 사람에 둘 있으니 하나는 믿는 이요,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이라. 믿는 이는 착하고 믿지 않는 이는 착하다 말할 수 없으니1) 마땅히 보살은 알아야 하느니라. -열반경(涅槃經)2)

316. 선지식을 가까이하면 믿는 마음[信心]을 갖게 된다. 믿는 마음이란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믿고, 선한 업과 선한 과보를 믿고 악한 업과 악한 과보를 믿으며, 생사의 괴로움이 무상하며 파괴됨을 믿는 마음이니, 이를 가리켜 ‘믿음[信]’이라 하니라. 믿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깨끗한 계율을 닦으며3) 항상 보시를 행하고 지혜를 닦는 것이니라. -열반경(涅槃經)

317. 믿음은 모든 근을 청정하고 밝게 하며 그 힘은 견고하여 깨어지지 않는 것이니, 번뇌의 근본을 완전히 멸하고 부처님 공덕 향하게 하네.4)  -화엄경(華嚴經)

318. 사람은 손이 있기에 보산(寶山)5) 가운데 들어 마음껏 보배를 취할 수 있으니 믿음이 있는 사람도 역시 이러하여 불법 가운데 들어가 마음대로 더러움 없는 보배를 취하게 되느니라. -화엄경(華嚴經)6)

319. 삼세의 의심 그물[疑網]을 이미 없애고 여래께 청정한 믿음을 내어 믿음으로 부동지(不動智)7) 를 성취하면 지혜가 청정한 까닭에 진실을 깨닫게 된다.8)  -화엄경(華嚴經)

320. 믿음을 이루어 마음에 물러섬 없고[心不退轉] 산란하지 아니하며[心不雜亂] 깨뜨릴 수 없고[不可破壞] 물들 수 없으며[無所染著] 항상 근본이 있어 성인을 따라 여래의 집에 머무른다.9)  -화엄경(華嚴經)

[각주]
1)이해를 위해 《대지도론》 권69를 살펴보면 다음의 내용이 있다. “법을 들을 이나 설할 이가 신심(信心)도 없고 파계(破戒)와 악행(惡行)을 한다면 바로 악마의 일인 줄 알아야 한다.”
2)《대반열반경》 〈범행품〉의 ‘무엇이 사람의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에 대해 자답(自答)한 부분이다. 대반열반을 닦는 마음가짐의 시작은 ①믿음[信] ②곧은 마음[直心] ③계행[戒] ④선지식을 친근함’[親近善友] ⑤많이 아는 것[多聞] 등의 다섯이다. 자신을 포함한 일체중생의 불성에 대한 확신이라 할 ‘믿음’에 대해 〈범행품〉의 설명 가운데 요긴한 가르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살마하살이 3보를 믿고, 보시에 과보가 있음을 믿고, 제일의제를 믿고, 두 가지 진실한 이치[二諦]를 믿고, 좋은 방편을 믿고, 중생을 위해 부처님과 보살들이 분별하여 3승을 만든 것을 믿는다.”
3)《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의 내용이다. 《불교대전》에서는 ‘깨끗한 계율을 닦으며[修習淨戒]’와 ‘항상 보시를 행하고 지혜를 닦는 것[常樂惠施]’ 사이의 ‘受持讀誦書寫解說(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를 생략하고 있다.
4)당역 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 권14권의 〈현수품〉 게송 가운데 한 대목이다. 믿음은 때가 없고 마음이 깨끗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교만을 없애고 공경의 근본이 된다.
5)대부분의 일반적인 경우 ‘보산(寶山)’은 수미산 · 수미산을 둘러싼 큰 산 · 서방의 부처님 등을 의미하거나, 수승한 경지 내지 법장(法藏)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보산(寶山)’의 의미는 “불법 무루의 근(根) · 역(力) · 각도(覺道) · 선정(禪定) 등”을 지칭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이는 마치 손이 없는 것과 같아서 보배산에 들어가더라도 아무 것도 취할 수 없다. 따라서 믿음이 없는 이는 불법에 들지 못한다. 불법의 바다는 결국 믿음으로 들어가고 지혜로 건너는 것이다. 《대지도론》 〈초품여시아문일시석론〉에서 이르기를 “경전의 서두에 ‘이와 같이’라고 하는 것은 곧 ‘믿음’을 의미한다.”고 하였고, “경에서 ‘믿음은 손과 같다’고 한다.”고도 하였고, “마치 손이 있는 사람은 보배산에 들어가 마음껏 보물을 취하는 것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6)송대 사문 자선(子璿)의 《기신론소필삭기》에서 《화엄경》을 언급하고 있는데 ‘無漏法財’를 ‘無漏寶財’로 바꾸어 《불교대전》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해당 원문 : “華嚴云 如人有手 入寶山中自在取寶 有信亦爾 入佛法中自在取於無漏法財.”)
7)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말하는데 여기에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52계위는 10신(十信: 過量凡夫), 현위(賢位: 十住, 十行, 十廻向), 성위(聖位: 十地), 불위(佛位: 等覺, 佛)로 구성 되어 있다. 견성하여 과(果)를 증득해야만 성인이라 지칭하는데, 10신의 경우 사실상 성인이 아닌 범부의 지위다. 그런데 《會釋》에 의하면 “理와 事가 자재한 묘용에 의지하여 믿음을 낸다.”고 하였고 “하나의 행이 일체의 행을 행하여 능히 순수하고 능히 복잡하면서 믿음을 내는 것”이라 하였다. 《대지도론》 권30에서는 “모든 번뇌가 파괴되면 곧 열반의 문이 열린다.”고 하였으니,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나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智) 그리고 자연유입묘각지해(自然流入妙覺智海)라는 법문에서 보듯이 심심(心心: 前心과 後心)이 적멸하면 그대로 묘각의 바다에 들어간다. 〈여래출현품〉에서 “하나의 념(念) 가운데 시방제불이 평등한 정각을 이루어서 바른 법륜을 굴리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하니 부처님의 마음과 자기 마음이 둘이 없기 때문이다.”라 하였는데, 참고로 이 적멸한 자리는 요동이 없고 성위에 들어가는 보살들의 자신의 견지(自見)에서는 찰나사이라도 과거, 현재, 미래의 성불을 보지 않는다. 즉 3세에 성불하는 것에도 마음이 쏠려서 흘러가지 않는다. 상기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부처님의 진성(眞性)과 더불어 성(性)과 상(相)이 평등하여 바야흐로 무성(無性)을 자각하게된다. 혼잡한 자타(自他)의 정리(情理)가 없어지고, 오로지 부처님의 지혜만이 시방세계에 두루 밝게 사무치는 까닭에 의지함도 없고 다만 여래의 집[佛家]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래의 법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으나 문맥에 입각한다면, 바로 평등한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짓는 바를 따라 법으로서 조복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업을 제거하고 일체 안락의 법을 모두 다 좋아하는 것이라 하겠다.
8)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 권17권의 〈초발심공덕품〉에 언급된 게송 가운데 한 대목이다. (원문 : “三世疑網悉已除 於如來所起淨信 以信得成不動智 智清淨故解真實.”) 원문 ‘解真實’의 ‘解’는 ‘이해하다’ 혹은 ‘제거하다’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깨달음’ 혹은 ‘깨닫다’는 의미를 수용하여 ‘진실을 깨닫게 되다’로 번역하기로 한다.
9)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 권21권의 〈십무진장품〉에서 언급된 부분이다. 〈십무진장품〉에는 10종의 장(藏)이 있다. ①믿는 장[信藏], ②계행 갖는 장[戒藏], ③남 부끄러운 장[懺藏], ④제 부끄러운 장[愧藏], ⑤들은 장[聞藏], ⑥보시하는 장[施藏], ⑦지혜로운 장[慧藏], ⑧기억하는 장[念藏], ⑨지니는 장[指藏], ⑩말하는 장[辯藏] 등이다. 이 보살이 부처님 지혜에 들어가 그지없고 다함없는 신심을 성취하며, 이런 신심을 얻고는 여래의 집에 머무르며 모든 부처님의 종성을 지니며, 모든 보살의 믿고 앎을 증장하며, 일체 여래의 선근을 따르며, 일체 부처님의 방편을 낸다. 이것을 가리켜 보살마하살의 믿는 장이라 한다. 이 믿는 장에 머문다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들어 지니고 중생에게 말하여 깨닫게 한다. 문맥에 해당하는 첫 번째인 믿는 장[信藏]의 내용을 살펴보면, 보살이 일체 법이 모양 없음, 일체 법이 원이 없음, 일체 법이 짓는 일 없음, 일체 법이 분별없음, 일체 법이 의지한 데 없음, 일체법이 헤아릴 수 없음, 일체법이 위가 없음, 일체 법이 초월함, 일체법이 남이 없음을 믿는 것이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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