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나라가 시끄럽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그와 연루된 이들이 구속되었고,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공석(空席)인 위급상황에서, 북의 김정은 집단은 핵무기로 위협하고 미중일 삼국 역시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 든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주자들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과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어떻게든 상대를 공격해 정권을 쥐려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연휴를 맞아 외국여행을 계획한다. 이 모든 게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일들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매우 혼란스럽고 통탄스러운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그런 암흑의 혼돈을 우리 국민은 촛불로 빛을 밝혀 몰아내고, 헌법을 유린한 이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애국시민들은 더 이상 ‘세월호’나 ‘최순실 사태’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상적 삶으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정치인들이 서로 협의하면서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닥치자 정권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 듯 상대방 비방과 허황된 공약으로 또다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몇 차례의 대통령후보토론회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명색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의 무식과 무례와 무치(無恥)였다. 그들은 전(前) 대통령의 ‘불통(不通)’을 공격하면서도 자신은 상대후보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시정잡배에게나 어울릴 막말과 비속어로 국민을 불쾌하게 했다. 저녁 늦은 시간 TV를 보면서 영명(英明)한 지도자를 발견하는 기쁨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정치꾼의 모습을 재확인하면서 절망한 국민들이 훨씬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올해는 원효대사가 태어난 지 1400년이 되는 해다. 잘 아는 것처럼 원효대사는 민중과 함께 생활하며 ‘화쟁(和諍)’을 강조했다. 화쟁이란, 공소한 말싸움[諍]을 피하고 서로 화합[和]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때로 순응하고, 때로는 순응하지 않아야 한다[順不順說]. 왜냐하면 상대의 말에 순응하면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면 바른 믿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 듯, 또는 그와 반대로 말하는 것[非同非異而說]이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상대 후보를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상대의 의견은 무조건 반대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울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이렇게 진행된다면,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불신과 대립이 심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지난겨울 매주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대다수 국민들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5월 3일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지 불멸기원(佛滅紀元)으로 2561년 되는 날이다. 부처님은 무엇보다 자비(慈悲)를 강조했다. 자비란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돌보듯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든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듯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통령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권력’을 쥘 욕망으로 국가의 위기나 국민의 열망은 모른 척하고 있다. 그들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절[寺刹]을 찾을 것이다. 그 순간만이라도 표를 얻으려는 탐욕을 접고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이제까지의 설전(舌戰)이 얼마나 누추하고 비루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동국대 문창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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